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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아우성들, 연극 <dOnut> 리뷰

by 규규규규 posted May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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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아우성들

연극 <dOnut> 리뷰

 

 

 

  스산한 분위기의 무대 위에는 몇 개의 원형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고, 연극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도넛 가게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판매대가 한켠에 서있다. 무대 배경을 꾸미고있는 별다른 장치라든가, 특별한 배경 소품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종일관 미소를 띤 아르바이트생은 판매대에 서서 ‘매뉴얼’에 있는 멘트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도넛 가게 안 테이블에 앉은 인물들은 제각각 본인이 하고싶은 이야기만을 반복한다.

  이토록 낯설고, 충격적인 연극이라니! <dOnut>은 내가 작가로부터, 혹은 연출가로부터 받은, 피에로 인형이 불쑥 튀어나오는 선물 상자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 <dOnut>을 보게 된 것은 놀랍고 당혹스럽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스토리부터 배우들의 연기, 조명과 음향의 연출까지 연극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들이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스크린샷 2016-05-30 오후 8.53.53.png

이미지출처 : http://blog.naver.com/2014hue/220661438767

 

 

  우선 <dOnut>의 스토리가 가지는 매력은, ‘짐작 불가능한 전개’의 방식을 시종일관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관객들에게 아주 평범한 도넛 가게에서 얼마나 많은, 또 얼마나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모조리 보여주고 싶었던 것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포톤벨트’를 연구하는 교수와 조교의 이야기, 사랑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 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의 이야기, 도넛 가게의 매뉴얼에 갇힌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 배고픈 도둑의 이야기, 범죄자를 잡아야하는 경찰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들이다.

  인물들의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시작되는데, 예를 들어 도넛을 본 교수와 조교가 도넛에서 포톤벨트를 떠올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장면 등이 있다. 이렇듯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낯설지만 흥미롭고, 갑작스러워서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각각의 인물들은 에피소드 형식의 연극에서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기묘하게 맞물려서 하나의 큰 고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던 인물들이 작품의 결말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라는 결론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결말부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랑’이 가장 적절한 해결 방식이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하나의 결론 안에서 묶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구성해낸 작가의 아이디어와 힘만큼은 참 탁월하고 훌륭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을 보고 나서, 그것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해보아야만 했다. 사실 <dOnut>이라는 연극은 단 한 번의 관극으로 완전하게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품이었다. <dOnut>은 리얼리즘 사조에서 어느 정도 빗겨나있는 연극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의 배경 이미지부터 인물들의 행동까지,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품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요소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분석과 추측이 필요했던 것 같다.

  주로 중점을 두고 고민했던 것은 아무래도 인물들의 특징과 특성이었다. 나는 그들이 보이는 독특한 행동이라든지 반복적으로 뱉는 대사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인물들을 지켜보며 그들 모두가 어떠한 류의 결핍을 하나씩 안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에 대한 결핍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싶어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어린 시절 버림받았던 기억을 가지고 부모에 대한 애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도 있었다. 이렇듯 결핍을 가진 인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그들이 가진 결핍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도둑, 고시생, 실연당한 남자로 표방된 인물들을 보면서는 작가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의 약자들을 어느 정도 조명하고 있다는 것도 추측해볼 수 있었다. 곤란한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매뉴얼’에 따라야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모습과 경찰의 억지로 인해 없는 죄를 뒤집어쓰고 폭행을 당하는 도둑의 모습을 보면서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잘 보여졌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인물을 눈여겨 보았기 때문에, <dOnut>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도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었나 싶다. 인물의 성격이나 캐릭터의 특성에 맞는 걸음걸이를 소화하면서 안정된 발성과 발음으로 소극장 안을 가득 채우는 대사 연기는 아주 훌륭했다. 다양한 배우들이 어우러져 내는 시너지가 관객들을 연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리라.

  교수가 포톤벨트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으며 몽환적인 음악이 깔리고, 배우들이 마치 무중력을 경험하는 것 같은 동작을 취할 때 안무와 같은 연기를 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배우들 모두가 연출적으로 설정해놓은 각 인물 특유의 걸음걸이를 리듬감있게, 또 경쾌하게 잘 살려낸 점 또한 정말 인상깊었다. 몇 번의 연극 공연에서 연기를 경험한 입장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으로 감정 표현을 하는 대사 연기만 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는데, 대사는 물론 동선과 움직임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표현해내는 배우들을 보며 절로 박수가 나왔다. 그분들의 연기가 존경스러웠고, 한편으론 그들을 닮고 싶기도 했다.

 

 

  사실 <dOnut>을 보고나서, 이렇게나 어려운 공연에 대한 비평을 써야 한다는 게 많이 당혹스러웠지만, 글을 쓰기 위해 몇 번이고 그 내용과 이미지들을 곱씹어보며 연극의 참맛을 알게 된 것 같다. <dOnut>은 젊은 극작가의 작품답게 젊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시대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빛나는 작품이었다. 희곡을 보고 연극으로 상연된 모습이 궁금해진 경우는 많이 있었지만, 연극을 보고 나서 원작 희곡이 궁금해진 경우는 처음이어서 신선했다. 또 오랜만에 배우의 연기를 보며 좋은 자극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관객들에게 좋은 자극과 충격을 줄 수 있는 <dOnut>과 같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오고, 공연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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