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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과 고뇌에 관하여, 연극 <에쿠우스> 리뷰

by 규규규규 posted Sep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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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과 고뇌에 관하여

-연극 <에쿠우스> 리뷰

 

 

  사람들은 간혹 주변의 인물이나 사회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자신이 바라는 어떤 모습 간에 괴리를 느낄 때가 있다. 타인의 기대와 자신의 본능적인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린 인간은 고뇌에 빠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억압된 상황에 갇힌 인간은 그의 욕망을 표출하지 못해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하며, 욕망의 대상에 대해 과도한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연극 <에쿠우스>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과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에쿠우스>가 가장 근본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은 첫째로 극의 배경이 되는 사건의 주인공인 알런의 욕망이며, 둘째로는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고뇌라고 할 수 있다. 피터 쉐퍼는 알런과 다이사트라는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그 대상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는지, 그리고 사회적 책임과 지위를 가진 인간이 어떠한 이유로 그의 일에 대해 고뇌하게 되는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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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쿠우스>는 기본적으로 다이사트가 그의 경험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인물들과 인물들을 둘러싼 이야기가 작품의 주가 되는 만큼 여기에는 다양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곤 했다. 가장 먼저 살펴볼 다이사트는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작품의 주인공이 되면서 과거와 현재의 일을 설명하고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해설자로서의 역할도 겸한다. 다이사트의 해설은 관객들이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을 이해하거나 극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에 대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이사트의 해설은 작품이 진행되는 데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린 소년 알런은 억압된 상황 속에서 언제나 욕망을 품고, 그 욕망의 대상이 되는 ‘말’에 대해 병적으로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작품의 초중반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며 마치 정상인이 아닌 것 같은 행위를 일삼는다. 말을 하나의 신으로 취급하고 그들에게 제 의식을 올리는 행동이나 스스로 재갈을 물고 옷걸이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전라로 말에 올라타 그와 한 몸이 되고 싶다는 식의 대사를 하는 장면이나, 질과의 정사를 앞둔 상태에서 말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장면에서는 말이라는 대상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그의 모습이 잘 그려진다. 관객들은 그런 알런을 자칫 ‘말’에 대해 집착을 보이는 정신이상자로 보기 쉽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행동들은 그의 어머니 도라와 아버지 프랑크에게서 받은 억압이 드러나면서는 어쩌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행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알런의 부모인 프랑크와 도라, 그리고 알런의 본능을 일깨우던 질이라는 여인은 알런을 이해하기 위해 함께 살펴보아야 할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알런의 어머니인 도라는 특정 종교에 미쳐 아들에게까지 그것을 강요하며 알런에게도 신도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에 반해 알런의 아버지 프랑크는 무신론자로, 도라가 광적으로 종교에 집착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인쇄공으로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혐오하며 그의 가족들이 텔레비전이 아닌 인쇄물을 보기를 고집하는 고지식한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특히 자신의 아들인 알런이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하고, 책을 읽을 것을 강요하며 억압한다. 이러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각기 다른 억압은 알런이 말에 대해 가지는 욕망을 억제했을 것이며, 이러한 억압은 알런이 남몰래 쌓아오던 욕망에 스스로 지배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리라.

  알런을 억압하는 그의 부모와 달리, 질은 알런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성적 본능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알런을 유혹함으로써 그가 성적인 본능에 충실하도록 만들지만, 알런은 그녀에 대한 감정에의 충실과 자신이 가장 갈구하고 욕망하는 말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 사이에서 갈등하다 끝내 그녀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알런이 말에 느끼는 욕망이 얼마나 광적이고 열렬한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대목으로 볼 수 있으며, 그 긴장을 최고조로 이끌어낸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연극 <에쿠우스>는 회상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번갈아 나타나며 잦은 회상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작품의 특성으로 인해 무대에서는 꽤나 빈번하게 시간과 장소의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했다. 이 극이 총 35개의 장으로 나뉘게 된 것은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많은 장으로 극이 구분되어 있으나 실제 무대에서는 장의 변화마다 암전을 하지는 않고 조명의 변화와 인물들의 이동 등을 통해 장면의 분위기를 바꾸는 정도로 장의 변경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작품의 연출은 잦은 회상과 현재로의 복귀로 자칫 공연이 산만해질 수 있는 점을 온전히 보완해냈다고 할 수 있겠다. 무대의 분위기에 변화를 주어 시공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어색하지 않게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배경을 잘 꾸려냈다. 

  이러한 회상과 현재의 교차 속에서 다이사트는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하고 그들을 ‘정상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회적 책임, 그리고 그의 치료가 인간의 욕망을 망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그에 따른 회의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게 된다. 다이사트는 알런과의 대화, 그리고 알런을 치료하는 행위를 통해 그의 일에 회의를 느끼고 결국에는 알런의 욕망, 그가 가진 열망을 동경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는 연극 <에쿠우스>의 가장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다이사트의 대사를 통해, 그리고 작품 전반에서 다이사트와 알런이 대화하는 장면들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한 인간이 가진 욕망을 그리고, 회의감과 고뇌에 허덕이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연극 <에쿠우스>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아주 솔직하게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작품의 등장인물이 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 그들을 잘 표현해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중요한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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