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화방] 0. 왜 부활인가?

by 자러다니는3 posted Nov 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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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조했습니다.

칼럼을 맡아야 하는데, 자꾸 이것저것 생기고, 저도 미루다보니 약속드린 것보다 한참 늦었군요. 약조드렸던 그대로 -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만 - 르네상스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려 합니니다. 지각에 대해서 다시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연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임시로 연재물 명을 무대 뒤 화방으로 바꿔보았습니다 :) 

 

이번 글은 연재의 첫번째입니다.

한 시기에 대해 짚고 넘어가려면, 그 시기에 붙여진 정의와 이면을 짚고 넘어가야 하기에, 이번 시간은 간단한 인트로가 될 듯 합니다.

최대한 국사책 미술사책 세계사책 등등의 사자로 끝나는 책들의 딱딱함을 집어던져보려 노력하고 있으니,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

,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0. , 누가 renaissance라는 말을 붙였을까?

 

대개 역사는 지나간 것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르네상스 역시 그러했지요. 그런데, 조금 늦었습니다. 17세기 들어 모두들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대항해시대'가 지난지 한참 뒤에 연구가 시작되었으니까요. 르네상스에 대한 정의는 19세기, 스위스에서 시작됩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라는 남자가 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는 책에 의해서요.

역사적으로 보자면, '사건만 나열해서 외우는 식에서 그 당시 사람들의 문화도 보자!' 라는 이 학자의 책은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국가의 사건을 기억하며 외우는, '정치사'적인 측면에서의 사관이 아닌, '문화사'라는 새로운 관점이 시작된 것이니까요.

 

르네상스의 의미는 부활입니다.

이탈리아가 주 무대이니, 사실은 'rina scenza'라고 명명되어야 하지만, 프랑스어인 'Renaissance'가 학술적인 용어로 정립이 됩니다.

그러면, 왜 부활일까요? 하고많은 단어중에서 왜, 부르크하르트는 이 시기를 '부활의 시대'라고 명명했을까요?

 

 


이 그림을 볼까요 먼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가장 전형적인 이집트의 벽화입니다.

이집트 회화의, 그리고 고대그리스도 어느정도 갖고 있던 특징을 정면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단면적으로 사람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우리가 즐겨보는 웹툰이나 그림과는 이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당연하죠. 왜냐면 저건 딱 2차원적으로만 그려져있으니까요. 크레타문명의 그림까지는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다음 그림을 보죠.



크레타에서 넘어온 그리스의 회화, 조각은 처음에는 이집트와 같게 갑니다.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는 미메시스 이론을 뒷받침하듯, 열심히 그리스는 이집트를 베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번이지, 라고 생각한 어느 예술가는 어느날 파격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새벽 4시에 자던 사람이 밤 9시에 자려 한다고 바로 되겠어요? 웃는듯 마는듯, 이상하게 웃는 조각 양식이 나타납니다. 아르카익 양식이라고 합니다만, 알아두시면 어디가서 '나 이정도는 알아!' 라고 자랑하고 다닐수 있겠죠? :D 


 

그런데, 저 어색하던 그림들이 조금 더 지나면 이런 박진감 넘치는 조각들로 바뀝니다.

참고로 위의 그림은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이후 그리스와 인도의 간다라 문화가 합쳐져 헬레니즘 문화가 꽃핀다라는 그 헬레니즘의 이전입니다.

이제부터가 고대 그리스라고 할때 대표적으로 불리는 '고전시대'입니다. 

이러한 예술의 발전은 느릿느릿하지만 혁명적입니다. 동무 거 날래날래 바꾸라우!의 그 혁명은 아닙니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발전이니까요. 미술에서 볼 때의 고대 그리스는 놀라운 도약을 이루어낸 시기입니다. 영화로 치면 무성영화에서 아바타와 같은 3D 영화까지의 발전이니까요.

 

수학, 그리고 과학으로 넘어가볼까요.

기하학의 유클리드가 있었고, 원자론의 데모크리토스가 있었습니다.

왠 삼각형을 이용한 증명법이 100가지도 넘는다는 그의 정리, 피타고라스 역시 고대 그리스의 위인이었습니다.

탈레스로부터 시작된 4원소설은 세상을 규명하려 했던 그리스 학자들의 시도였습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라는 질문은 철학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학과 과학의 영역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사이래 그리스에게 도전장을 내민 단 하나의 학설>


철학으로 가볼까요.

?’ 라는 물음은 서양 문명을 규정짓는 하나의 출발점입니다.

흔히 동양은 자연에 순응하고 서양은 자연에 항거했다고 표현하지요. 가장 대표적인 표현으로 꼽는 자연의 순응은 바로 여백의 미 되시겠습니다.

?’라는 질문에서 철학은 시작됩니다. ‘사람은 살지?’ 주변의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순간, 그들은 진리에 한발짝 가까워지려는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지요.

 

문학으로 가볼까요.

알렉산더 대왕이 한시도 떼지 않았다는 일리아드의 호메로스가 있고,

오늘날 대학로에 즐비한 연극이 디오니소스의 제전에서 출발합니다.

신화를 바탕으로한 비극이 아테네에서 상연되고, 문명 5 그리스 테마곡으로도 삽입되었던,

기록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노래인 '세이퀼로스의 비문'이 작곡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숱한 이들을 괴롭혀온 그리고 현재에는 문창과 학생들을 아직까지도 괴롭히는 희대의 사제가 등장합니다.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죠.

가끔 수업에서 교수님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다들 읽어보셨죠?’ 라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 유럽의 정신을 지배한, 그리고 끊이지 않은 분쟁을 만들어낸 희대의 사제입니다

.

<아테네학당, 라파엘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사제지간이면서도 나중에 완성한 자신들의 학문의 위치는 전혀 정반대였습니다. 정반대이니 어느 때에는 플라톤이 재조명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재조명되기도 합니다. 수학, 문학, 철학, 정치등, 모든 학문이 철학에서 갈라져 나와, 마침내 이 두 사제로 인해 꽃을 피우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라 하면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이 두 사람의 시대까지가 그리스의 전성기로 보시면 됩니다.


 

왜 부르크하르트는 왜 중세가 끝나가고, 근대로 넘어가기 이전의 사회에서 나타난 예술운동을 부활이라고 칭했을까요?

부르크하르트는 심지어 중세와는 별개인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으로 보아야한다고 주장합니다.

호이징가라는 학자는 이에 반해 중세의 끝무렵으로 규정하고요.


부활이라는 것이 시행되려면, 먼저 죽은 이가 존재해야합니다.

중세시대, 종교의 무거운 공기에 눌려 마침내 사라진 문화가 고대 그리스의 그것 [ 넓게 쳐줘서 로마까지로] 라고 본다면, 르네상스는 바로 이 고대 그리스 정신의 부활입니다. 중세시대의 철학은 '교회의' 철학이었고, 예술은 '교회를 위한' 예술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지식은 '교회에 의한' 지식이었습니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살아간 시대를 전후로 놓고 보면, 미술은 더이상 교회에 묶이지 않게 됩니다.

파트너의 어원이 되는, 패트런 (= 후원자) 들은 돈을 주고 그들을 고용하고, 라틴어로, 한 언어로써 지배되던 지식은 각자의 언어로 번역되어 배포됩니다.

이는 통제되던 시스템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다음에는 어떤 이들이 각 분야에서 '교회로부터의 해방'을 주도했는지를 먼저 짚고 넘어가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