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끝추격전 02 - 2학기가 내내 이렇게 말캉말캉할 수 있다면

by 저니스 posted Aug 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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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가 내내 이렇게 말캉말캉할 수 있다면


―습하고 뒤숭숭한 2학기의 시작 즈음, 다시 꿈꾸는 《Day Off》




 


 



  2학기 시작 준비는 잘 되시는지요? 저는 일찍 와서 사실 이런저런 것들을 좀 준비해볼까 했습니다만, 밥솥에 피어난 곰팡이에 놀라고 벌레들의 시체를 제거하고 이웃사촌 방청소에 동원되어 종일 숨 막히고 나니 오늘이네요. 비가 멋대로 와서 찝찝한데 그 비 때문에 빨래도 제대로 못해서 같은 팬티만 사흘째 입고 있는 현실에 지금 허리를 못 펴는 판이고 방바닥은 먼지와 모래들로 넘쳐 확 쓸어버리고 싶지만 허리도 쫙 못 펴는 제 몸뚱이는 그저 나른함에 절어 있으니, 날씨 그대로 찝찝하게 보내는 형편이에요. 월요일 수업 없이 주4일로 시간표를 맞춰서 다행이지, 이렇게 하루를 끝내고 바로 월요일에 강의실로 갔다면? 어우. 생각하기 싫네요. 여러분의 월요일은 어떤가요?


 



  두 달 반 동안 방학을 보냈음에도 이렇게 뒤숭숭하고 가라앉아 있습니다. 저만 이런 거였으면 싶네요. 다른 분들도 정말 이렇게 개강을 맞이한다면 좀, 온 세상이 곰팡이가 슨 것 마냥 갑갑하고 슬프지 않을까요? 이런 차에 생각나는 음반이 있네요. 나른한 분위기는 지금의 우리와 그렇게 다르진 않습니다만 조치원 날씨처럼 우중충한 느낌은 거의 없이 따스한 햇볕 아래서 방학을 참 잘 누린 것만 같은 노래들이 담겼어요. 베란다 프로젝트가 2010년 5월에 발표한, 이름도 ‘휴식’이라는 뜻의 《Day Off》입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발라드 가수 김동률과, 최근 홍대여신 요조와 열애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된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 이상순이 모여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 ‘베란다 프로젝트’는 둘이 함께 유럽으로 날아가 사진을 찍으며 만든 노래 열 곡을 엮어서 음반을 내놓았어요. 올해 초에 알게 된 누나에게 이들의 노래를 추천받아서 들떠 있다가 이번 여름방학 때 돈이 생기자마자 덜컥 사버렸는데요. 마치 문구점에서 파는 엽서처럼 느껴지는 음반 커버 모양은 벌써부터 이들이 보여줄 음악의 느낌을 바로 드러내요. 하나하나가 수줍은 듯 맑고 소박합니다. 스트링과 전자음으로 강하게 때려버리다가도 바로 보사노바 풍으로 흐물흐물 녹아내리게 해주는 등 트랙과 트랙 사이의 호흡도 괜찮아요. 네이버 오늘의 뮤직에서 6월 첫째 주 이 주의 국내앨범으로 선정된 바 있고요. 평점은 7.7점을 받은 바 있습니다.


 


  상쾌한 햇빛을 맞으며 산뜻하게 그녀와 “매일 매일 함께 달리는 아침 산책”으로 자전거를 타는 <Bike Riding>부터 “까마득한 내가 살아가는 작은 세상”을 보기 위해 올라가 쉬는 <산행(山行)>까지 열 곡 다 진지하게 귀 기울여 감상해도 될 만큼 적절히 잘 만들어진 노래들이에요. 친구의 열애 사실을 알고 축하하면서도 “근데 왜 이리 맘 한 구석이 허한 걸까.” 라며 알 수 없는 감정을 토로하는 <어쩐지>도 좋고 “떠나온 걸까 떠나가는 걸까” 알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터져오르는 <Train>도, “이 순간이 이 노래가 언제나 기억될 수 있길” 굳게 다짐하는 노래인 <Good Bye>도 그냥 흘려보내긴 조금 아까워요.


 



"아... 심심해."


 


  이 중에서도 정말 ‘Day Off’를 원하는 분들께 꼭 들어보라 일러주고픈 노래가 두 곡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2번 트랙 <벌써 해가 지네>예요. 기타 하나와 피아노, 그리고 휘파람으로 악기 구성은 단촐한 곡인데요. 다른 악기들의 멜로디도 좋지만 간주 부분의 휘파람을 들을 때면 절로 취해서 따라 흥얼거릴 만하고요. 자취방에서 “나른한 주말 오후”에 “어느새 눈 떠보니 하루의 절반이 휙 하니 지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모두 공감을 할 노래입니다. 말 그대로 날씨 좋은 날에 그저 “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는 자신이 안타까운 듯 나긋나긋 노래하죠. “아… 이런 날엔 여자 친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요. 제가 딱 그렇군요. 아는 누나를 통해 처음 이 부분을 들을 때도 미친 듯 웃음이 나고 뜨끔했는데, 들을 때마다 그렇습니다. 전 솔로니까요. 이 곡을 두세 번 반복해서 듣다 보면 절로 심심함과 외로움에 몸서리를 치게 될 겁니다. 따뜻하고 귀에 쏙쏙 박히지만 그만큼 치명적일 수도 있으니 솔로 분들은 너무 자주 듣지는 말아요.


 


  또 하나 인상적인 휴식 노래로 추천하고픈 노래가 7번 트랙 <단꿈>입니다. 이 곡은 노래 전체가 전형적인 보사노바 리듬을 따르고 있어요. 김동률과 이상순 두 보컬이 코러스를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하지요. “눅눅한 사무실 귀퉁이 비좁은 책상”에 앉은 직장인의 로망을 담은 노래라고 하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네요. 가만히 듣고 있자면 절로 노래 제목처럼 단꿈에 빠져들 것만 같아요. 자장가가 따로 없죠. 그리고 잠이 들면 바로 눈앞에 남미의 “인적 없는 해변가”에서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며 “남국의 여인들과 노래하고 춤을 추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노래 가사 그대로 말이죠. 마치 영화 《인셉션》의 주인공들이 꿈을 설계하는 것처럼 이 둘은 노래로 꿈을 구현하고 있네요. 아, 쓰는 와중에도 졸리네요. 공부나 어느 일에 몰두하다가 다른 데에 정신을 잠시 맡기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듣는다면, 100%입니다. 다른 의미에서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노래가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이밖에도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창작의 고통’을 표현한 노래 <기필코>, 가요계의 음유시인 루시드 폴이 가사를 쓴 순진한 이야기 같은 사랑노래 <꽃 파는 처녀>, “세상에 모든 게 단 한 번에 이뤄지면 그건 좀 싱거울 테니” 넘어져도 괜찮다며 위로하는 <괜찮아>도 들어볼 만합니다. 음반 전체적으로 멜로디가 친근하고 말랑말랑하면서도 군데군데 너무 싱겁고 평범한 느낌이 없지 않은데요. 그래도 가사 하나만큼은 자극적인 말들로 들끓는 요즘 가요계에 대놓고 백태클을 걸 수 있을 만큼 소소한 일상의 수수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바쁘게 돌아가고 너무 시끄러운 세상이 지겨울 때면 잠시 베란다 프로젝트의 노래를 귀에 꽂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꽂힐 거예요. 여러분 모두 못 끝낸 휴식을 산뜻하게 마저 즐길 수 있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Day Off 들어보기


    01 Bike Riding  - http://www.youtube.com/watch?v=PWDzpB03Mvg


☆ 02 벌써 해가 지네


☆ 03 어쩐지 (feat. 조원선) - http://www.youtube.com/watch?v=KPjO98Mezvw


☆ 04 Train - http://www.youtube.com/watch?v=tI5BkqwPsGo


    05 기필코  - http://www.youtube.com/watch?v=Qd1lqk1WVz8


☆ 06 꽃 파는 처녀 - http://www.youtube.com/watch?v=u1XhHcS_agc


☆ 07 단꿈 - http://www.youtube.com/watch?v=Z5nJTWcHRFw


☆ 08 Good Bye - http://www.youtube.com/watch?v=uSAnzisViKw


    09 괜찮아 - http://www.youtube.com/watch?v=fP-gzLzAYHo


    10 산행(山行) - http://www.youtube.com/watch?v=fP-gzLzAY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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