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끝추격전 11 - 열심히 뛴 박지성, 떠나라

by 저니스 posted Dec 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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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뛴 박지성, 떠나라


―이제 또 다른 박지성을 발굴해야 할 때


 


 




  2010년의 축구계의 마지막을 장식한 뉴스 중의 빅 뉴스는 뭐니뭐니해도 박지성의 국가대표 은퇴 소식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공공연히 돌았던 이야기지만 지난 날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가 공식적으로 언론에 “2011 아시안컵이 끝나면 박지성은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것이다.” 라고 밝히며 2010년 막판인 지금까지 큰 불을 댕기고 있는 것이다. 한편 조광래 대표팀 감독은 선수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밝히면서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함께했으면 좋겠다.”며 박지성을 직접 만나 은퇴를 만류하리라고 밝혔다. 논란이 심해지자 일단 박지성은 “국가대표 은퇴는 아시안컵이 끝난 뒤 이야기하겠다.”라는 말로 여운을 남겨두었다.


 



  한 선수의 국가대표 은퇴에 대해 이렇게 떠들썩한 때가 과연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박지성에 대한 관심은 너무나 뜨겁다. 그만큼 치열한 갑론을박이 지금까지 펼쳐지고 있다. 박지성은 이렇게 논란의 중심이 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선수다. 2000년 대중들 앞에 알려지기 시작한 박지성은 2002, 2006, 2010 월드컵에서 꾸준한 활약으로 이제는 국가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서 정말 유명한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늘 제몫을 하는 선수로 각인되어 우리나라 국가대표 후배들 및 꿈나무들은 물론 아시아 축구 선수들에게도 우상으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대한민국에 라이벌 의식을 지우지 못하는 일본도 박지성을 향해서는 부러움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던가. (물론 지금의 박지성을 교토와 J리그가 키웠다며 이상한 소리를 해대기는 하지만)


 



박지성의 몸은 절대 대한민국 정부의 것이 아니다 ⓒ 연합뉴스


 




  박지성의 은퇴에 반대하는 사람은 “30은 축구선수로서 아직 팔팔한 나이”라며 “4년은 더 국가를 위해 뛰어야 한다.”라 말하고 있다. 염기훈을 비롯한 대표팀 후배들도 “지성이 형과 더 뛰고 형에게 더 배우고 싶다.”라며 말리고픈 의사를 드러냈다. 스포츠조선의 경우는 박지성이 뛰었을 때보다 박지성이 없을 때 국가대표팀의 승률이 크게 떨어진다는 자료와 함께 축구인 30인 중 과반수가 박지성의 국가대표 은퇴에 반대한다는 도표를 들고 나와 은퇴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 인터뷰 중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박지성의 몸은 자신의 몸이 아닌 국가의 몸이다.”라는 발언까지 하며 국가대표로 계속 뛰어야 한다는 주장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영부인마저 오찬 자리에서 박지성에게 왜 은퇴하냐는 식의 말로 박지성의 생각을 만류했다.


 



  하지만 축구전문가 박문성은 최근의 칼럼을 통해 “특정 개인의 선택을 집단화하는 건 적절치 않고 또 위험하다.” 라고 밝힌 바 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이며 무려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박지성이지만 피치pitch를 뛰는 이는 박지성 자신이다. 11명 중 한 명으로 뛰는 몸이지만 나머지 10명 중 누구도 박지성을 대신해 뛸 수 없다. 그만큼 박지성을 가장 잘 아는 이도 박지성 스스로다. 박지성이 국가대표를 굳이 은퇴하겠다면 그 뜻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대한민국 축구인들과 축구팬들이 박지성과 함께 축구를 하고 기뻐할 권리는 있지만 그들이 박지성을 소유할 권리는 없다. 국가의 의무를 지고 억지로 국가대표를 뛸 박지성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박지성이 국가대표를 병역의무처럼 생각하게 된다면 어떨까. 이것이 과연 지나친 비약인가?


 



캡틴 박, 저 무릎으로 뛰면서 얼마나 많은 팬들을 웃기고 울렸던가 ⓒ 연합뉴스


 




  박지성이 아시안컵 이후 어떤 목소리를 낼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박지성이 이제는 국가대표 은퇴를 해도 된다고 본다. 아니, 이제 짐을 덜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 첫 번째 까닭으로 박지성의 비정상적인 무릎을 들겠다. 2005~2006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둥지를 튼 이후 박지성은 매 시즌마다 무릎과 발목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때문에 지난 시즌과 지지난 시즌은 각각 전체 시즌의 절반밖에 소화할 수 없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무릎은 이제 장거리 비행기를 탈 때마다 물이 차고 부어오르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 때문에 한일전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박지성이 막상 경기장에서 뛰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앞으로도 이 일이 반복된다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을 수 있고 이는 박지성에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일에 장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언론들은 ‘박지성 위기론’을 들고 나올 테고 말이다.


 



  물론 국가대표보다 맨유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박지성 스스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맨유는 단순한 축구 클럽이 아니다. 박지성에게는 그에게 연봉을 주는 직장이다. 그리고 박지성은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맨유에서 뛰고 싶어 한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박지성이 그의 몸 상태 때문에 맨유와 국가대표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이 곧 박지성의 정답이다. 박지성이 그가 사랑하는 직장에서 오래 뛰다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을 원하지, 무리하게 뛰다 부상 때문에 쓸쓸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캡틴 팍' '센트럴 팍'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 많은 기쁨을 선사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두 번째로 국가대표 전체를 위한 까닭을 제시하겠다. 이제 국가대표팀에는 두 번째, 세 번째 박지성이 나타나야 한다. 박지성 선수의 아버지 박성종 씨도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아들이 국가대표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박지성을 찾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든 박지성의 아우라는 우리나라 축구계에서 엄청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새로운 에이스를 발굴해내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박지성에 환호하며 대한민국을 불렀다. 그만큼 박지성이 떠나는 것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세월 동안 박지성을 그리워하며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큰 국가대표팀을 바라보고 한숨을 지을지도 모른다.


 



  세계 축구의 전설 지네딘 지단은 프랑스 축구계에 엄청난 빛을 태우다 유로 2004를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었다. 하지만 구심점을 잃은 프랑스 대표팀은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다. 질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이겼던 옛날의 ‘예술축구’ 프랑스는 사라지고 이길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2006 월드컵은 유럽예선에서 탈락할 위기까지 놓였다. 결국 백전노장 지단은 대표팀에 복귀했고 지단이 돌아온 프랑스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등 강호들은 연달아 꺾고 준우승까지 차지한 바 있다. 월드컵 골든볼을 마지막 선물로 안고 정말 떠난 지단을 뒤로 한 프랑스는 이제 더는 지단에게 기댈 수 없었다. 지단 없는 프랑스는 또다시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 고전했고 겨우 남아공에 가서는 선수 내분으로 스스로 무너지며 광속탈락을 맞이하고 말았다. 결국 최근 10년간 지단이 없었던 프랑스는 월드컵 16강에조차 오르지 못한 이빨 빠진 호랑이, 발톱 없는 닭이었다. 유럽의 선진 축구를 우리는 당연히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것까지 배울 필요는 없잖은가.


 


 




  이영표도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한다. 이영표와 박지성이 사라진다면 4강 신화를 이룬 2002 월드컵 세대는 차두리밖에 남지 않는다. 세월은 많이 흘렀고 새로운 선수들이 가슴에 호랑이 마크를 물려받았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지금의 대표팀은 젊다. 힘과 재능이 넘친다. 이영표의 빈자리는 장기적으로 홍철과 윤석영, 최효진 등이 메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둘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넘치도록 재능 있는 풀백들이 많다. 박지성의 뒤를 이을 미들진에도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손흥민 등이 쑥쑥 크고 있다. 공격진은 K리그 28경기에서 22골을 몰아친 유병수와 전남의 소녀팬을 몰고 다니는 스타 지동원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젊기 때문에 가능성이 더욱 많고 또 밝다. 대한민국 축구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의 별을 붙잡기 전에 새로운 별을 계속 키워내는 것이다. 별이 하나 지더라도 다른 별들이 계속 축구의 하늘을 밝게 비춘다면 축구계에 어둠이 드리울 일은 없다. 지금의 밝은 별에 집착하다가는 더 큰 하늘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p.s.1. 참고글 - 박지성 은퇴 '유어 마인드, 유어 초이스' (박문성)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208&article_id=0000000392 


 


  p.s.2. 앞으로 쿠플칼럼 '산책끝추격전'은 2주에 한 번 수요일에 연재하려 합니다. 저 군대 가기 전까지요. ㅋㅋ 자주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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