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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0 19:20

AK 깍던 노인

조회 수 1760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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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 전이다. 내가 PMC에 입사하고 훈련을 끝내고 갓 투입 되어 카불 인근에 내려가 살 때다. 기자들 바래다 주고 왔다 가는 길에, 위험지역이 있어 일단 랜드로버에서 내려야 했다. 당시 주변은 위험지역이라고는 하나, 오랜기간 교전이 없어 그저 젖소나 우마차, 주민들만 지나다닐 뿐이었다. 그 을씨년 스러운 모래속 황무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뱅크마트라고 부르던 작은 언덕아래 시장에 가면 길가에 앉아서 AK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마침 회사에서 보급나온 M4랑 AK가 닳아 빠지기 시작하던 터라 AK 한 자루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목숨걸 총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전쟁통에 무뚝뚝한 아프간 인들을 많이 봤지만, 손님에게 그러는 경우는 없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그날 따라 AK용 철판 프레스 조각들이 좋아보여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다가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장이 마치고 어둠이 오면 근방에 저항세력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생각에 갑자기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그러다 나 죽어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해지기 전에 귀환하는것은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공격이 있다해도 그나마 주민이 많은 이 뱅크마트가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했고, 총에 탄약도 넉넉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중동 물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AK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총이다.

 야간에 혼자 복귀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멀리 메카를 향해 절을 한다. 그 때, 다소곳이 절을 하는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인자한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무사히 복귀해서  AK를 자랑하니 동료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본부에서 보급나오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러시아군 특수부대 장교 출신 이반노무스키의 설명을 들어 보니,  AK의 특성상 리시버의 공차가 크면 오히려 이물질이 덕지덕지 끼어 어느순간 큰 작동불량이 나고, 공차가 너무 작으면 사실상 AK의 설계 강점이 사라져 신뢰성 면에서 AR이나 별반 다를바 없다는 것이었다 .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칼라시니코프가 직접 생산 감독한 초기 생산분이 아닌이상 거의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AK핸드가드는 혹 나무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핸드가는 대쪽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그 뿐인가? 연발로 세탄창만 쏴도 불이 붙는다. 예전에는 핸드가드를 합판으로 만들어 적층시킬 때, 질 좋은 시베리아의 나무 조각들을 잘 녹여서 우크라이나제 본드를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가드 올린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중국제 접착제를 써서 바로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가드 올릴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탄약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파라블럼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파워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P 딱지가 붙은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P 란 장약을 쑤시고 또 쑤셔넣은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눌러 넣었는지 열 번을 넣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쑤셔 넣을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그저 P 고 자시고 간에 .45ACP나 사버리면 그만이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학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이 AK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소말리아 제보다 조금 나을 뿐인 중동제 AK 라고 멸시하는 사제총을, 어떻게 이렇게 멋들어지게 만들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MRE에 보드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작전 끝나고 복귀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언덕의  오래된 저항군 동굴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뻥 뚫린 듯한 입구 끝에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절을 하고 일어서서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AK를 깎다가 유연히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언덕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입에서 무심히 웃긴대학 김상유 총장님의 쉬즈곤(she's gone)이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신참 하나가 MRE 봉지를 뜯고 있었다. 전에 현역 때 2형 전투식량이 찬물 때문에 얼어 버려 빠빠오 마냥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우리 회사가 미국에 매각 되면서, 한국군 전투식량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신참들이 이등병식으로 관등성명 대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이병!신**/ 병X이라 놀리던,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 AK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 profile
    일라아하툰 2013.08.30 19:20
    빨랫방망이 이야기였던가.. 패러디인가보네요.ㅇㅅㅇ
  • profile
    IrelWinter 2013.08.30 19:20
    오올, 동족입니까.

    밀덕이라면 웃을 수 있는 글이죠,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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