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쿠플존 KUPLEZONE

조회 수 30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9일 방배동. 조그마한 방에 모인 그들은, 도박을 끊으려는 ‘단(斷)도박 모임’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이곳은 서로의 정보를 철저히 보장했다. 자신을 지칭할 때는 자신이 거주하는 곳과 성씨만 공개했다. “기자 양반은 안암김이겠네. 안암김선생, 남자친구 사귈 때 도박하는지 안 하는지 잘 보고 사귀어야 해.” 그들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스스럼없이 농을 걸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구순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졌다. 회합이 시작됐다. 10여 명의 일원들은 믹스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마주 앉아 각자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도박중독자임을 시인합니다.” 이 문장을 뒤로, 각자 참여했던 도박의 종류와 기간이 뒤따랐다. 카지노 도박부터 증권투기, 복권, 바카라 등 다양한 단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렇게 자신이 도박중독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완전히 이해할 때야 비로소 회복이 시작돼요. 마음만 먹으면 도박을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 중독자에게 가장 위험하거든요.” 관계자가 귀띔한 말이었다.

한 명 한 명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권선생이 먼저 입을 뗐다. 암 말기 환자를 만났다던 그는 삶을 마무리하는 사람을 보고 난 뒤 자신을 돌아봤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니 도박에 빠져 지냈던 내 모습이 차갑게 다가오더라고요. 왜 바닥으로 가야만 깨닫는 것이 있는지....” 쓴웃음을 짓던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들은 덤덤했다. 솔직하게 자신의 도박 행위를 인정했다.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을 다니고, 취업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도박으로 벌 수 있는 돈이 더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김선생은 학교를 자퇴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수업을 들으려니 흥미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최선생은 곰곰이 생각하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는 억대 단위의 돈을 날리고도 도박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어린 나이에 이렇게 고민하는 것 자체로도 괜찮아요. 분명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시계 분침이 한 바퀴를 훨씬 돌고 나서야 모임은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말했다. 한 명이 순댓국을 쏘겠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모임의 밖에선 영락없는 일상의 모습이 펼쳐졌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졌다는 뉴스를 들으며 기계에 대해, 곧 있을 총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은 분명 누군가의 가족이고 연인이었다.

술잔이 한 번 두 번 기울여지면서 이야기의 주제는 다시 도박이란 종착점에 다다랐다. 최선생은 회상했다. 강원랜드에서 살았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 그런 자신을 보며 눈물을 보였던 딸. “내가 왜 시작했을까, 아직도 생각한다.” 순댓국이 식어 차가워질 때까지 그들의 회한은 계속됐다.

김태언 기자  bigword@kukey.com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List of Articles
번호 글쓴이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공지 필립치과 [치과제휴혜택]필립치과 충치치료부터 치아미백까지 한 곳에서! >>> 레진치료5/치아미백17.9 - 비급여진료 최대 50%(치아미백,치아성형,충치치료,스켈링,임플란트 등) 댓글 4 file 04-13 2866
348 고대신문 정보 전학대회, 예·결산 사전 심의해 논의 시간 확보 05-06 402
347 고대신문 정보 안암총학 “교양제도 개선”…체육 교양 TO는 미정사안 10-08 410
346 고대신문 정보 20대 커플의 동거, 사회적 시선엔 아직 조심스러워 09-22 411
345 고대신문 정보 기술적 신뢰성 없는 학생회 모바일투표시스템 file 11-25 418
344 고대신문 정보 학내 곳곳서 국정화 반대 움직임 "시대착오적 발상" 11-06 419
343 고대신문 정보 여성주의, 당연함을 당연하지 않게 05-06 420
342 고대신문 정보 학생사회 이끌 새로운 얼굴은 누구 file 11-25 423
341 qksrkdnjdy 정보 2015 문예(시, 단편소설) 공모전!!!!! -고대신문 창간기념 file 10-05 424
340 고대신문 정보 조심스럽게 섬세하게 다가가는 '아웃리치' 동행 05-06 426
339 고대신문 정보 가을 밤을 노래한 독립영화 축제 10-08 434
338 고대신문 정보 고려대 교수 160명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 09-22 435
337 고대신문 정보 [KUTIME] 75화 03-29 441
336 고대신문 정보 [석탑만평] 1798호 03-29 441
335 고대신문 정보 지원 부족해 역할 못하는 세종캠 기록 자료실 댓글 1 10-08 445
334 고대신문 정보 [학술기고] 절대 권력자 바이러스의 시대, 국가적 대응체계 갖춰야 03-10 450
333 고대신문 정보 [시사]근거도 인권도 없이 집회 현장 투입되는 의무경찰 03-10 453
332 고대신문 정보 안암총학, 실험실습비 내역 투명화 주장 05-06 456
331 고대신문 정보 붉은 함성으로 수놓은 9월의 기록 09-22 458
330 고대신문 정보 문학의 향유와 창작의 방식 더 쉬워져 : 침체된 문학작품시장에 부는 새바람 10-08 464
329 고대신문 정보 멀어지는 교수와 학생 "서로 다가가 소통 시작해야" 05-06 46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0 Next
/ 20
글 작성
10
댓글 작성
2
파일 업로드
0
파일 다운로드
0
게시글 조회
0
추천 받음
2
비추천 받음
-1
위로 가기
고려대 포털 블랙보드 도서관 버스정보 오늘의 식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