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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의 일이다.
저녁과 오후 사이의 조치원 역에는 남들에게 
“기운이 좋아 보이세요” 나
“잠시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나요?” 라 묻는 종교인들이 많다. 사회의 통념과 다르게, 나는 이들을 부정적으로 생각 하지 않는다. 이들이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입학하고 처음 맞은 2학기 초반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하다 학교의 생활에 적응 하려니 어색했고, 나와 같이 놀던 학우들 중 몇몇은 군 입대를 위한 휴학을 하여 보기도 힘들었다. 1학기때 생긴 나와 친구들의 유대감은 그 몇명의 이탈로 삐걱거렸으며, 방학동안 힘들게 일한 반동으로 출석마저 제대로 챙기지 않고 있었다.
4교시 수업이 있던 날, 일어나 보니 12시 40분 이었다. 서둘러 강의실로 뛰어가던 나는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50분에 끝나는 강의를 참석 할 수는 없고, 기적처럼 강의 시간 내에 들어가도 교수님께서 강의가 끝나기 직전에 들어온 학생을 지각 처리 해 주실 리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나온 김에 친구들이랑 술이나 마실까?’
란 생각을 한 나는 1학기때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으나, 대부분이 아직 강의중이었고 시간이 되는 친구도 밤 새 과제를 하느라 피곤해 자야 한다고 하였다. 목적 없이 교내를 걷던 나는 입학을 하고서 집을 오갈때 조치원 역을 이용 한 것 빼고는 조치원역 주변에 가본 적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셔틀 버스를 타고 조치원 역전에 한번 가 보기로 하였다.
지리도, 정보도 모르고 간 조치원 역전은 나에게 불친절했다. 아니 역전은 나에게 인사를 했는데 내가 불친절하게 받은 것 인지도 몰랐다. 돌아다니다 지친 나는 역 앞 편의점에서 물을 마시랴 들어갔는데, 친구들과의 약속이 안잡혀 무산된 술자리가 생각나 소주도 한병 사 나왔다. 편의점 앞 벤치에서 과자를 안주로 술을 두어병 마시고 알딸딸 한 상태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려 했는데.
“수행을 하는 수행인입니다. 혹시 물 한병만 사 주실 수 있을까요?”
카고 바지에 남방을 입은 남성분이 말을 걸었다.
“예, 사 드릴께요 잠시 기다리세요.”
“지금 보니 조상님 은덕이 참 많아 보이시네요, 잠시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원래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바쁘다며 지나쳤는데, 술 때문인지 아니면 쓸쓸함 때문인지 말을 받았다.
“저희 집이 제작년에 부도났습니다. 은덕같은거 없어요.”
사실이 섞인 거짓말이었다.
“안에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 해야 할 꺼 같습니다.”
얼떨결에 그 사람을 따라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일단 물 사드린다 했으니, 커피는 제가 살께요.”
취해서였는지 나는 생전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한 잔에 3000원 하는 아메리카노를 샀다.
“참 착한 분이세요, 조상님이 은덕을 많이 내려주시는데…..”
“제가 학교도 빚내서 다니는데, 은덕같은건 안받는것 같네요.”
“혹시 제사 지내세요?”
“아니요, 천주교 신자라서 차례는 드리지만 제사는 드리지 않습니다.”
그 남자는 나의 말을 듣고 제사를 드리지 않아서 은덕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는다 하였다.
“마침 여기 근처에 제가 있는곳이 땅의 기운이 좋아서 그곳에서 꾸준히 제사를 드리면 은덕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때 나는 이 남성이 정상적인 수행인이 아닌 특정 종교를 믿는 종교인 이라는 것을 알았다. 허나 나는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진정으로 인류가 믿어야 할 것은 과학의 청사진 뿐이고 모든 종교의 목적은 마음의 위안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종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고, 술기운에 이 자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도를 믿으십니까” 류의 사람들을 끝까지 따라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 졌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따라오세요 우선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를 따라가니 시장이 나왔다. 조치원역에 시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나는 시장의 규모에 놀랐고, 또 가격에 놀랐다. 
“여기서 제사에 쓰일 과일을 사야 합니다.”
“제가 현금은 아예 없고 계좌에는 이천원 정도밖에 없는데.....”
이는 사실이었다. 끝까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했던 나는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만원쯤은 쓸 생각이었지만, 커피를 산 후 카드에 남아있는 2300원이 나의 전 재산이었다.
“그럼 제가 과일과 술을 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취한 와중에도 감탄을 했다.
‘아까 물 마실 돈은 없고 과일이랑 술 살 돈은 있었구나!’
시장에서 술과 과일을 산 그는 나를 근처의 ‘기운이 좋은 곳' 으로 안내 해 주었는데, 가는 길에 나는 조치원 역 시장 뒤에도 대로가 있고, 거기에 일용품점과 빵집, 패스트 푸드점이 있는 것을 보고 조치원역에 자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속버스 정류장도 있었으며, 학생이면 한 시간에 5000원만 내도 되는 노래방도 보았다.
‘조치원역이 학교 근처보다 놀 곳이 많은걸?’

“여기입니다.”
그의 안내를 받아 간 ‘기운 졸은 곳'은 연립빌라의 2층이었다. 그는 나에게 종이에 한자로 조상님의 이름을 적으라 하고 그 앞에 과일과 술을 놓고 절을 하라 했다. 한번 절을 하면 왼쪽으로 두발짝 가서 다시 절하고, 뒤로 가서 세번 절하고. 이러한 “제사” 를 마치니 그는 나에게 
“효력을 보려면 꾸준히 오셔야 합니다.”
“학생이라 시간이 될 지 모르겠지만 오도록 할께요.”

그 후 한번도 가지 않았다. 허나 그를 따라가며 봐둔 시장과 일용품점은 자취를 하며 매주 들리는 곳이 되었고, 친구들과 노는 곳은 5000원 하는 노래방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그를 따라간 이야기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때 꺼내는 특별한 경험담으로 아직까지 매우 요긴하게 쓰고 있으니, 도움 아닌 도움을 받았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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