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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인은 정부의 주도 하에 항상 ‘절약 정신’ 속에서 살아왔다. 국산품애용운동, 쇠고기절약운동, 구두쇠운동, 교복물려주기 운동 등을 비롯해 정부가 선두에 나서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소비문화를 권장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사치는 금기시됐기에, 비싼 물건을 살 때 한국인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죄의식’이 존재했다.

한국은 7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근대화를 이뤘기에 ‘외양 중심의 물질주의적 소비양상’도 형성됐다. 이에 ‘욕망하는 소비자’와 ‘근검절약하는 국민’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이 내면화됐다. 한국인의 양면적 소비문화를 7일 진행됐던 학술대회 ‘주제어로 보는 광복 70년’의 ‘도깨비시장을 통해 본 근대소비문화: 규율적 모더니즘의 형성’을 통해 짚어봤다. 발표는 강명구(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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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문시장 지하1층에 위치한 도깨비수입상가 그릇 코너에 다양한 품목이 진열돼 있다.

서동재 기자 awe@kukey.com

도깨비 시장은 생활 필수품에서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미제물건, 외제품을 불법으로 공급하는 시장이었다. 도깨비 방망이를 두른 것처럼 없는 물건이 없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막대한 손해를 입은 도깨비 시장은 월남한 피난민들이 천막을 치고 상권을 장악하면서 번화하기 시작했다. 피난민들은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군복, 담요, 전투식량 등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팔았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은 밀수와 반사회적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단속을 벌였다. 강명구 교수는 “단속으로 인해 자유 시장에서 타격을 받은 상인들이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 몰리기 시작하면서 도깨비시장의 규모도 커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70년대와 80년대는 도깨비 시장의 전성기였다. 80년대는 수입 개방화 조치로 인해 합법적 거래가 증가했다. 당시 도깨비 시장은 기본적 소비욕구와 함께 새로운 물건에 대한 소비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욕망의 배출구’였다. 70년대 박정희 정부는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해 전통적 생활세계에 직접 개입했다. 강 교수는 “혼인비용의 기준을 정부가 정해 그 이상 비용을 쓰게 되면 과소비, 허례허식으로 규정해 법률적으로 제약을 가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절약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지속됐다.

근검절약하는 한국인의 이면에는 사치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한국 경제는 전후 복구 과정 이후 급격하게 성장했다. 50년대 말 한국의 연평균 실질경제성장률은 7.5%에 달했다. 1인당 국민소득 또한 증가했다. 1961년 82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1976년에는 799달러가 됐다. 약 10배 증가한 것이다. 1979년에는 1636달러가 됐다. 강 교수는 “소득증가에 힘입어 한국인들은 소비욕망 역시 급격히 변화했다”라며 “외양을 중시하는 물질주의적 소비 형태를 보이게 됐다”라고 말했다. 80년대에는 과소비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백화점의 등장과 해외여행의 대중화로 인해 도깨비 시장도 변화했다. 도깨비 시장은 백화점 수입코너 보다 싸고 더 많은 물건을 갖춘 공급처가 됐다. 1985년 3월 28일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수입품 소비를 통한 과소비가 나타난다.

남대문 지하 수입주방용품 판매점이 있는 (중략) 일제 코끼리표 전기밥솥도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데 10인용짜리 가격은 자그마치 23만 원, 국산 (5만 1천 원) 보다 4배 이상이나 비싸다... 이밖에도 외제 주걱, 믹서, 간장병 양념통, 야채 닦는 솔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주방용품들이 팔리고 있다. 심지어는 나무젓가락, 휴지통도 수입-판매되고 있다. 외제 나무젓가락은 1개에 일제가 7백 원, 대만제가 3백 원(튀김용은 1천 원). 휴지통은 이탈리아제가 1개에 1만 5천 원.

과소비 현상은 ‘한국병’이라 칭해지며 경제성장 과정의 일시적 부작용으로 취급됐다. 당시 언론은 한국이 일은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미국병’을 앓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더불어 ‘광적 과소비’, ‘과소비형 경제의 정착’을 비롯한 용어도 사용됐다. 강명구 교수는 “비싼 물건을 살 때 죄의식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면서 과시할 수 있는 물건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은 한국식 압축근대화의 결과물”이라며 “급격한 사회변화와 더불어, 국가가 생활면에도 개입하면서 모순된 의식과 행동지향이 내부에 공존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강 교수는 ‘규율적 모더니즘의 소비문화’라 명명했다.

현재 남대문 도깨비 시장의 소비자들은 다른 시장에 비해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대다수다. 강 교수는 “지금의 도깨비 시장은 쇼핑을 즐기는 공간이라기보다 특정 상품의 단순한 구입처로서 작용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도깨비 시장의 고객은 젊은 시절 도깨비 시장에서 구매해서 쓰던 물건을 다시 사기 위해 오는 것이다.

전쟁의 여파가 남아있는 상황,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고도성장 시기에도 국가의 이해를 위해 소비 욕망은 언제나 억제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규율이라는 정부의 직접개입을 통해 압축근대화에 성공했다. 해방 이후 정부의 직접 개입과 더불어 담론권력을 통한 절약 운동이 진행됐다. 강명구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기반으로 했던 한국인의 소비문화 변화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성장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면서 발전지향적 망탈리테(mentalité, 사고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강 교수는 “발전지향적 망탈리테가 강화된 사회에서 소유와 소비를 중심에 두는 삶의 양식을 넘어선 지속 가능한 소비가 자리 잡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며 “물질주의적 소비를 강화할지, 지속 가능한 소비로 갈지는 한국인의 선택이다”고 말했다.

 

 

이영나 기자  lyn@kukey.com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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