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책을 대체한 지금 독서의 낭만은 캠퍼스를 떠난 것일까. 교정을 거닐며 철학을 논하던 풋내기 대학생은 수십 년이 지나 교육자로 성장했다. 외양은 변했지만 한 손에 든 책은 아직도 놓지 않은 ‘글 좀 읽었던’ 과거의 대학생들에게 그 시절과 요즘에 대해 물었다.
이만우(경영대 경영학과) 교수: 친구들과 책의 진한 감동을 나눈 그 시절 “책을 구하기 힘든 시골에서 살다가 대학에 오니까 책을 엄청 많이 읽었어. 당시에는 책을 읽고 나서 친구와 책의 감동을 서로 나누는 일은 흔했어. 심지어 책을 자주 안 읽는 친구들도 듣는 것을 좋아하던 시절이었지. 지금은 작고한 한 벗은 대학시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수십 번 곱씹었지. 왜 그렇게 읽었는지 아직도 궁금해. 저 세상에서 만나면 첫 마디로 꼭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
“당시 학생들은 책 뿐만 아니라 학보에도 관심이 많았지. 73년 고대신문사에 입사해서 차범근(체육학과 72학번) 선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온 학생들이 나를 만날 때 마다 차범근에 대해 물어볼 만큼 학생들이 학보를 많이 구독했어.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신문, 소설, 심지어는 교과서도 안 읽는 것 같아. 미국의 로스쿨 입학 시험은 독서를 반드시 해야 통과하도록 시험 문항을 구성하는 데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학생들이 책을 읽으려나”
이두희(경영대 경영학과) 교수: 대학시절 독서는 개인과 사회에 가장 영향력 있다 “76년에 독서토론동아리 ‘호박회’에 가입해 매 주 책 한 권을 선정해 30여 명의 선후배와 토론을 했었어. 토론을 할 때는 자유로운 의견 제시를 위해 ‘선배’대신 ‘씨’라는 호칭을 썼지. 이렇게 토론을 하다보면 정해진 시간을 항상 넘기게 돼 있어. 결국 술자리까지 이어진 토론은 끝이 안 보여 당시 학교 근처였던 내 집에서까지 밤을 새워 토론했었지. 긴 밤을 지새며 다져진 토론 내공은 연세대와 해마다 가진 토론 대결에서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지”
“독서토론을 하다보면 말하는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저절로 드러나게 돼. 소위 ‘머리 속이 벗겨진다’고 하지. 그러다보니 동아리 회원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서로가 서로에게 귀중한 존재가 됐어. 대학시절에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대학생이야말로 가장 많이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대학생 때 읽은 책은 개인,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커. 나이가 들어 읽는 책도 물론 좋지만 그 때는 이미 자신과 사회의 미래를 바꿀 힘이 약해진 상태거든” 최영돈(공과대 기계공학부) 교수: 철학이 있어 기술이 있던 그 시절 “교수들 중 공대생에게 인문철학은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공대생일수록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봐. 기술자는 기술이 세계평화를 해치는 것에 책임이 있어. 무기는 공대생이 없으면 만들 수 없고, 자기 철학이 있는 이는 무기를 만들지 않아. 기술에 앞서 철학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우리 세대가 기술을 익히고 나라 발전에 앞장선 것은 다 책을 읽었기 때문이야. 그때는 나라는 휘청댔지만 젊은이들에게 나라발전에 이바지해야겠다는 신념이 있었어.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야. 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 기술이 필요한가를 학생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철학 없는 기술발전과 미래는 허황된 꿈이야. 꿈에서 깨어나야 해”
이남호(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 남에게만 책 읽기를 권하는 사회 “요새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자기 전공 외에 교양 책을 잘 안 읽어. 동아리들도 그렇고 책 읽기를 권하는 사회이지 자기가 책 읽는 사회는 아닌 것 같아. 술 권하는 사회 비슷한 거지.
“내 수업 중에 ‘문학과 상상력과 논리’ 라는 핵심교양 과목이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책이나 시 등 문학작품을 읽고 과제를 해 오는 수업이야. 내가 수많은 책에 대해 이런저런 글들을 썼는데, 그걸 다른 사람들이 자기 블로그에 올려놓은 게 많나봐. 그래서 그런지, 내 해설을 보고 비슷하게 과제 해오는 학생들이 꽤 있어. 그건 학생들 잘못이라기보다 우리나라 교육과 사회 전체의 잘못이야. 우리 사회가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안 가르치잖아. 고등학교 때도 베낀 것만 외웠지… 수업시간에 그런 것을 못 찾아오게 하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하게 해야 할 텐데”
최동호(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모든 것은 책으로부터 나온다 “요즘 학생들이 문학과 멀지만 그런 와중에도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있어. 내가 매년 강의하는 수업 중에 ‘시 창작 기초와 실기’라는 과목이 있거든. 학생들이 직접 시를 써 보는 과목이야. 개중에 잘 쓴 작품은 고대신문에 당선되기도 해. 언젠가는 공대 학생이 가작으로 선정됐는데, 그 학생은 그 덕분에 삼성에 특채로 뽑혔어. 공대 학생이면 시 쓰는 학생이 없으니까 삼성에서 이 학생에게 특별히 가산점을 준거지. 또 언젠가 아버지에 대한 시를 쓰고 그 시를 각자의 부모님에게 보내라고 한 적이 있었어. 아버지랑 싸우고 6개월 동안 말 한 마디 안 한 학생이 시를 통해 아버지와 화해한, 그런 일도 있었지”
“누구 말을 인용하자면 ‘모든 것은 책으로 돌아간다’고 해. 내 입장에서 그 다음 문장은 ‘모든 것은 책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생각해. 내가 고대에서 거의 반세기를 지내왔는데 나중에 남는 게 뭘까 하고 생각해보면 내가 썼던 글과 책뿐이야. 읽지 않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우물이 말랐는데 바가지로 막 긁어서 없는 물을 푸려는 것과 같지. 자기가 내적으로 충만해야 새로운 게 나와. 말을 할 때도 그렇고 단어 한 마디 쓸 때도 그래. 전부 남의 것을 짜깁기 하고 있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만이 시대를 끌어가는 거야. 우리학교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 글∣박영일‧이소연‧정민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