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에 일어난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과 같이 대기업에서 발생하는 논란은 다시 한 번 반기업정서를 확대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평가하는 ‘기업환경평가’ 순위는 단계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기업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김수한(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과 부정적 인식은 40년 넘게 지속적으로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한 교수의 ‘정치사회의 변화와 반기업담론’ 논문과 조대엽(문과대 사회학과) 교수의 ‘시민정치와 반기업주의’ 논문을 통해 해방이후 한국사회에서 자리 잡은 반기업의식의 역사적인 근원을 되짚어봤다.
기원-정치적 격변 시기에 시작된 반기업의식(1945년-1959년)
반기업정서의 근원은 해방과 이승만 자유당 정권 시기에 이뤄진 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혜택에서 시작한다. 1945년부터 1960년 초반까지 한국은 정부수립, 한국전쟁 등 정치적 격변을 경험했다. 김수한 교수는 “정치적 격변기에 일부 기업과 정권은 밀접한 관계를 통해 향후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해방 시기 일제식민지 귀속재산과 적산(敵産, 적국의 재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가 주어졌다. 전쟁기간 중 원조 및 구호물자를 배분할 때도 특정 기업에게 선별적으로 배분됐고 전쟁 복구사업에서도 비경쟁적 계약을 통해 일부 기업이 특혜를 받았다. 전후 복구과정에서 나타난 극심한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외화 대부를 받는 것도 특혜로 작용했다. 당시 기업들은 기업 활동보다는 정권밀착을 통해 규모를 키워나갔다. 조대엽 교수는 “일제 식민종속경제와 해방 이후 대미종속경제, 대일종속경제에 기생하는 매판적이고 특혜적 자본을 문제 삼는 ‘기업과 자본의 매판성 비판’이 반기업주의의 주된 특성이다”라고 말했다.
심화-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부의 노력(1960년-1990년)
1960년 4.19혁명과 정권교체는 한국사회에서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시기다. 이승만 정권 시절 재산을 축적한 부정축재자의 전 재산 몰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바람에 따라 허정 과도정부는 부정축재자 처리법을 제정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정축재 기업가에 대한 처벌을 진행했다. 부정축재자로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한 기업인들은 군사정권과의 타협을 시작했다. 군사쿠데타 직후 박정희와 만난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부정축재자 처벌 대신 경제 건설을 담당하라고 제안 받았다. 이후 진행된 경제개발계획의 투자허가의 대상자들은 1960년 부정축재자 처벌 대상자였던 재벌들이었다. 정부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오히려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한층 심화시켰다. 이어 1966년에 발생한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은 반기업주의를 극대화 시키는 또 하나의 사건으로 작용했다.
#1965년 말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삼성에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줬다. 아버지(이병철 회장)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고 박 대통령은 “여러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했다. 현찰 100만달러를 일본에서 가져오는 게 쉽지 않았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를,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회상록-묻어둔이야기> 이맹희, 1993)
1970년대 후반에도 유신정권의 정당성 유지를 위한 중화학 특혜 금융,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보호 등 소수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이어졌다.
1980년 새로운 정권을 잡게 된 전두환 정부 역시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아 발생하는 정당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정축재자에 대한 처벌을 다시 시작했다. 재벌의 기업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부실 계열을 정리하는 ‘계열기업 정리를 위한 조치’를 취하면서 박정희 정권과 결탁해 성장한 기업을 처벌하려 했다. 정권의 당위성을 높이고 기업에 대한 반감을 심화시킨, 실효성 없는 정책이었다.
1988년 노태우 정권이 시작되면서 ‘5공 비리’에 대한 청문회가 전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특혜를 받은 대상과 특혜를 준 대상을 밝히는 일이 청문회의 핵심이었다. 5공화국의 핵심적 정치가들과 이들과 혐의가 연류된 많은 기업인들이 청문회에 비춰지면서 한국인의 의식 속에 정부와 재벌간의 부정적 유착관계가 기업의 성장 요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심화된 반기업주의에 대해 조대엽 교수는 △보호주의적이고 정치유착적 재벌성장 과정에서 특혜금융으로 성장한 기업을 문제삼는 ‘기업과 자본의 정치성 비판’ △매판성 △정치성의 결과로서 ‘기업과 자본의 부패성 비판’이라고 설명했다.
재생산-반생태주의적 기업활동과 갑질 사건(1990년-2015년)
1991년 구미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2007년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의 충돌로 인한 원유 유출 사건, 2013년 강릉 옥계의 포스코 마그네슘 제련공장의 페놀 오염 사건 등 대기업의 반생태주의적 행태는 반기업의식을 변화시켰다. 조대엽 교수는 “반생태주의적 행태로 인한 환경위기에 대한 불안과 분노는 반기업주의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했다”고 말했다.
2015년 현재,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 세월호 사태 관련 해운회사와 메르스 확산의 거점이 된 삼성병원을 비롯한 대기업은 여전히 국민들의 반기업정서를 심화시키고 있다. 2013년 남양유업의 30대 영업관리소장이 아버지뻘인 하청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은 사건에 이어 2014년 ‘땅콩 회항사건’까지. 끊임없이 터지는 대기업의 갑질 사건 또한 반기업의식을 재생산하고 있다. 김수한 교수는 “한국 정치권력의 허약성은 대기업의 이익과 지배력을 강화시켜주는 결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반기업의식이 형성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조동성 1991 <한국재벌>, 매일경제신문사
이영나 기자 lyn@kuke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