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토너먼트보다 리그가 되어야 한다
―한 번의 패배로 끝나는 세상이 아니라 동등한 기회가 있는 세상으로
이제 내일이면 총학생회 K리그가 개최된다. 1학기 풋살 대회에 이어 22인이 다투는 이번 축구대회에는 무려 30개 팀이 학과와 동아리를 대표하여 참가한다. 분명 세종배움터 최강의 축구팀을 가리는 대회로서는 손색이 없을 만한 참가 규모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이번 K리그는 재작년과 작년과 달리 단판 토너먼트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기면 다음 라운드로 올라가지만 한 경기만 지면 만회할 기회도 없이 당장 짐 싸고 녹지운동장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이것이 토너먼트다.
세계에서 축구가 시작된 19세기 말, 잉글랜드 지역 곳곳에서 생겨난 축구 클럽들은 FA컵이라는 녹아웃 토너먼트 대회로 전국 최강을 가렸다. 점차 FA컵의 인기가 높아지자 다른 클럽들과 지역들도 저마다 토너먼트 대회를 만들어 경쟁을 하였다. 그런데 이토록 우후죽순처럼 불어난 토너먼트들로 인해 문제가 생겨났다. 축구를 잘 하는 클럽들은 이기면 이길수록 경기 수가 너무 많아져 다른 대회와 일정이 겹치기까지 했고 축구를 못 하는 클럽들은 한 경기 끝나고 노는 날이 너무 길어졌다. 잘 하는 클럽의 선수들은 경기가 너무 많아 힘들어하고 못 하는 클럽의 선수들은 뛸 경기가 없어 힘들어한 것이다.
이 혼란을 바로잡고자 아스톤 빌라의 매니저였던 윌리엄 맥그리거는 몇 개 클럽이 모여서 각 클럽마다 한 번씩 돌아가며 경기를 하는 리그 방식을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1888~1889 시즌에 12개 클럽이 각각 홈과 원정을 번갈아가며 22경기를 하는 풋볼리그가 창설되었다. 풋볼리그는 승패에 관계없는 경기 수의 안정으로 클럽들의 지속적인 수익을 보장할 수 있었다. 때문에 풋볼리그는 세월이 갈수록 클럽들이 함께 성장하며 규모가 커졌고 훗날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는, 세계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축구리그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토너먼트에서 리그로 바뀐 사례는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2009년 대한축구협회는 난립해 있는 주중 토너먼트 대회들을 조금씩 폐지하며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의 문을 활짝 열었다.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란 그동안 주중에 공부를 하지 못하고 토너먼트대회에 나가 승리에만 집착했던 사례를 막고 ‘공부하는 축구선수’를 키우기 위해 도입한 주말리그다. 이 대회는 초중고 선수들에게 이기는 일에만 열중토록 했던 학원스포츠의 폐단을 막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경기 출전이 보장되어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도 더욱 유익하다. 초중고 축구리그 개막 이후 유소년 축구의 실력과 열기도 점점 더해지고 있는 추세다.
팬들이 헌정 음반을 만들면서까지 리그를 즐기는 이유가 있다. '언제나, 늘 찾을 수 있으니까.' ⓒ 스포탈코리아
리그 방식의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모두 같은 수의 경기를 한다.’ 와 ‘모두 한 번씩은 맞붙어 경기를 한다.’ 이다. 이는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기회의 평등’과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풋볼 매니저로 운영하는 조그만 클럽이 리버풀에게는 지더라도 맨유를 상대로는 이길 수 있다. 이것이 축구다. 그리고 이렇게 한 경기를 지고도 다음에 경기할 기회가 주어져 있는 제도가 리그다. 리그는 단순하지만 큰 무언가를 제공한다. 바로 ‘내일은 이길 수 있는 기회’다.
내가 새삼스럽게 리그 방식을 찬양하는 이유가 있다. 제목에도 써놓았듯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정말 토너먼트가 아니라 리그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두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쉽게 말한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은 그렇게 관대하지가 않다. 단 한 번의 잘못으로 나락의 길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은 그들을 구제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이 세상은 토너먼트다. 운 나쁘게 첫 경기에서 패배하면 다른 대안이 없다. 그저 ‘첫 경기 패배자’라는 타이틀을 다음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달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한 경기에서 진 것일 뿐임에도 말이다.
여기서 사는 사람들에게도 첫 경기에서 지더라도 두 번째 경기와 세 번째 경기는 승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패자가 다음 경기에서는 이길 수 있도록 훈수를 두자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다음 경기는 이길 수 있게, 최소한 다음 경기는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축구도 그러한데 세상은 더 마땅히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리그가 된다는 것은 곧 ‘더불어 사는 사회’를 실현할 열쇠를 얻는 일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얻고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 좋은 사회의 기본이다. 동등한 경험으로 동등하게 성장하며 경쟁력을 키우는 리그 방식. 모름지기 세상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좋지 아니한가.
물론 리그 방식도 단점은 있다. 수많은 클럽 및 선수와 모두 한 번씩 대결하려면 그만큼 너무 많은 경기를 해야 하기에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또 1부리그와 2부리그로 나뉜다면 대결의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월드컵 등에서도 조별리그 이후 토너먼트를 치르는 방식으로 대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되었든 총학생회 K리그도 앞으로 팀들이 기본적으로 치르는 경기 수를 다시 늘리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땅히 그리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료들
- K리그 엠블럼 파일 출처 : http://fmkorea.net/3867267
- 잉글랜드 축구리그 역사 참고글 : http://ko.wikipedia.org/wiki/%ED%92%8B%EB%B3%BC_%EB%A6%AC%EA%B7%B8
- K리그 헌정음반 'INTO THE K-LEAGUE' 듣기/다운 : http://kleague.com/fanzone/fanzone_event.aspx?no=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