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5월 18일 토요일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입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에 사망하여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됐습니다. 최규하 권한대행과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전두환은 정보, 보안, 수사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전두환은 군권을 장악하고자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로 연행하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하나회라는 군부 사조직을 기반으로 군권을 장악하고 국가권력을 탈취하고자 하는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 사후 등장한 신군부입니다. 5월이 되자 전국 대학 대표들이 ‘비상계엄의 즉각 해제’와 ‘전두환 등의 유신잔당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가두시위를 전개했습니다. 신군부는 5월 17일 24시를 기준으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실시해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언론의 사전 검열을 시행했습니다. 이러한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는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를 저버리고 재야 정치인과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시위의 중심 세력으로 여겨 탄압한 불법 행위였습니다. 5월 18일, 계엄군은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막고, 항의하는 학생들에게는 폭력을 가했으며, 이를 만류하려는 시민에게는 폭언과 구타를 가했습니다. 이에 전남대 학생 300명은 가톨릭회관에 집결해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신군부는 신속하고 강력한 진압을 위해 군대를 투입하고 시위 학생 외의 국민에게도 무차별 폭력을 가했습니다. 원래 대학생 중심의 시위였지만, 5월 19일부터 계엄군의 폭력에 분노한 광주 시민들과 고등학생까지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계엄군과 공수부대는 학생과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광주외곽봉쇄작전을 수행했습니다. 무장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 지속적인 교전으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언론은 통제됐기 때문에 독일의 기자에 의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그 참상이 처음으로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5.18특별법에 의해 전두환, 노태우 및 관련자들은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라는 죄목으로 사형 및 무기징역을 받았습니다. 1997년에는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됐으며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은 201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이는 불의한 국가권력에 저항했던 광주시민들의 고귀한 희생 정신을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이를 국제사회가 공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고귀한 희생으로 얻어냈다는 것을 인지하고 5월 18일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수현 기자(tngus02@korea.ac.kr)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에브리타임 쪽지를 통해 학우들이 원하는 소재를 제공받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