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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은 3.1절 106주기였습니다.

3.1절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부터 국경일로 지정해 기념했던 날로, 최초의 국경일이자 한국의 5대 국경일 중 하나입니다. 정부는 이를 기리기 위해 2025년 3월 1일 숭의여자대학교 음악당에서 3.1절 기념식을 개최했습니다. 또한 3월 1일부터 2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에서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이란 주제로 행사가 열렸습니다.

3.1운동이 이뤄졌던 1919년은 국권피탈(경술국치)로 조선이 국권을 빼앗긴 후 일제의 강압적 통치가 이어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국외에서는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고, 일본에서는 조선 유학생들이 2.8 독립선언을 하면서 독립운동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고종 황제의 사망원인이 일제의 독살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제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고, 이에 민족 대표 33인은 3월 3일은 고종 황제의 국장일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 불경이라는 의견과 3월 2일은 기독교에서 안식일이므로 쉬는 날이라는 의견을 수렴해 거사 일을 3월 1일로 정하고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들은 사전에 계획했던 탑골공원에 많은 인파가 모여 유혈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대신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이곳을 포위한 80여 명의 일본 경찰대에 의해 연행됐습니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 모였던 시민들은 민족 대표가 오지 않자, 한 학생이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했습니다. 이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며 평양·진남포·안주·의주·선천·원산 등 이북 지방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독립 선언식과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됐습니다. 또한 만주, 연해주, 미국 등 해외까지 번지며 1년여 동안 이어졌습니다.

일제는 시위운동자의 대량 학살, 피검자에 대한 무자비한 고문으로 만세운동을 종식하려 했습니다.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지목돼 붙잡히면 잔학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고, 취조 결과에 따라 태형을 가했습니다. 비록 많은 백성이 죽거나 다쳤지만, 3.1운동은 조선의 강한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며 한국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민족 운동 지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주인임을 선언하노라. 이것을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을 자손만대에 일러 우리 민족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하노라.”
-3.1 독립선언서 中-

광복 80주년을 맞은 2025년, 국경일을 그저‘빨간날’로 알고 넘기기보다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과 우리 역사 속 뜨거운 순간들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송윤하 기자(syriver@korea.ac.kr)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에브리타임 쪽지를 통해 학우들이 원하는 소개를 제공받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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