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은 픽션입니다. 중복되는 이름이 나오더라도 우연의 일치일 뿐, 현실과는 관계 없는 허구임을 밝힙니다.
한 학기에 적어도 한번씩 생기는 사건들이 있다. 구체적인 것은 학교의 위신에 걸리기에 자세하게 서술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 사건 들 중 한 학기에 꼭 한번씩 일어나는 사건이 시험기간 문제 유출이다.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다 보면 친구들이 하는 말이
‘그 교수님 강의에서 문제가 유출 되었다 하더라.’
‘재시험을 친다 하더라.’
‘범인은 중징계를 받았다 하더라.’
등 학기 중 꼭 한번씩은 중간고사가 아니면 기말고사 둘 중 한 시험 때는 일어났던 것이 문제 유출이었는데, 작년 중간고사 때 나는 귀로 듣기만 하던 문제 유출을 직접 경험했다.
유럽의 역사 이해라는 강의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해진 민영이라는 친구와 같이 듣던 강의였는데,시험 바로 전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강의실에 들어 오신 후
“오늘은 출석을 부르지 않는 대신, 반 학기 동안 배운 것을 조교가 요약 해 줄 것 입니다. 본인에게 질문 할 것이 있다면 연구실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라 하시고 강의실에서 나가셨다. 강의 요약을 듣던 중, 나와 같이 강의를 듣던 민영은 출석에 관련하여 교수님께 질문 드릴 것이 있다며 그분의 연구실로 찾아갔다. 그리고 15분 가량 지난 뒤 그는 돌아와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 건물에 학생이 직접 쓰는 복사기가 있나?”
“1층 컴퓨터 옆에.”
강의가 시작하고 50분 가량 지나자, 조교 분은 10분의 휴식 시간 뒤 마저 강의 요약을 계속 하겠다 하셨고, 난 민영에게 같이 담배를 피러 가자고 하였다. 허나 그는 바쁘다며 먼저 나갔고, 어쩔 수 없이 혼자 담배를 피고 돌아오니 그가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눠 주는 중 이었다.
“뭐야?”
“일단 조교 분 돌아오시기 전에 한 장 받아가.”
“뭐길래 몰래 주는 거야?”
“아까 교수님 연구실에 가서 출석 질문하는 중에, 교수님께서 전화를 받으러 잠시 연구실에서 나가셨는데, 그때 교수님 책상 위에서 찾은 거야.”
“그러니까 뭘 찾은 건데?”
“눈치가 없네, 이번 시험 문제! 절반은 복사 해 뒀으니까 너도 하나 받아가.”
친구는 전체 문제는 자신이 가지고, 문제의 절반은 복사하여 배포하는 것으로 강의를 듣는 모든 학생들을 공범으로 만들 생각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계획이 매우 엉성하며, 그 혼자 모든 문제를 가진 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아니 일반적인 양심을 가진 학우라면 당연히 조교나, 교수님께 말씀 드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자신의 계획을 철썩 같이 믿는 표정의 그를 보니 무어라 말 해 줄 수도 없었다. 나의 양심은 그의 행동을 조교나 교수님께 말씀 드리라 하였지만, 우정이란 이름 아래 나는 그의 행동을 묵인했고, 그가 건 낸 종이를 받아 반 접은 후 주머니에 넣었다.
강의실의 절반 이상은 그 종이를 받아 갔으니, 유출된 문제를 보았다고 징계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누군가 사실을 고하여 교수님께서 아셔도 책임은 나의 친구가 질 터였다. 접은 종이를 펴서 안에 적힌 문제만 본다면 절대평가인 시험인 이상, A는 쉽게 맞을 터였다. 허나, 양심은 내가 그 종이를 펴 보지 못 하게 했다.
모든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갈 때, 나는 담배를 태우며 그 종이를 라이터로 태웠다.
“없었던 일이야.”
나는 집에 돌아가 교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 하였다.
“들켰다면 진작에 연락이 왔을 텐데, 아직까지 연구실로 오라거나, 징계를 받으라는 연락 한 통 없었어. 이 강의는 A+ 확정이야.”
주말에 시험 공부를 하러 들른 도서관에서 만난 민영이 한 말이었다. 차마 교수님께
‘이 녀석이 시험 문제를 유출 했어요!’
라 문자를 보내는 것은 하지 못했고
“그래도 누군가 교수님께 말씀 드렸을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씀 드리는 게 어때?”
라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시험 당일, 시험지가 배부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본 학생들 다수의 표정이 매우 가관이었다. 민영은 시험지를 훔친 뒤, 그것을 다시 돌려다 놓지 않았고, 시험지를 검토하시던 교수님께서는 한 장이 모자란 것을 아셨고, 비슷한 시기에 익명의 제보자가 민영이 시험지를 유출하였다고 말 하였다. 강의를 듣는 학생 대다수가 유출된 시험지의 복사본을 받았다는 정보를 들으신 교수님께서는 민영에 대한 징계는 뒤로 미루시고, 유출된 문제를 받아간 이들에 대한 벌로서 시험의 모든 문제를 바꾸셨던 것이다.
“본 시험이 끝난 뒤 조민영 학생은 남게.”
교수회의 끝에 민영은 유기정학을 받았고, 전혀 공부하지도 않은 시험문제를 받은 학생들은 전부 최저점을 받았다. 나는 위에서 3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내 위의 두 명은 시험 전날 나오지 않아 시험 문제가 도둑 맞은 것을 몰랐던 이들이었다.
양심이란 좋은 것이다.
고연전을 즐기고 날씨가 좀 추워진다 싶더니 어느 새 2학기 중간고사네요, 열심히 하신 만큼 좋은 결과 나오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