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세종 캠퍼스에 입학 하고 4계절을 전부 보내 본 이라면, 조치원의 기상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가지게 된다. 내가 입학 하고 처음 접한 정보들 또한 우리 학교에 다니며 날씨에 대한 기대를 버리라는 것 이었는데, 선배 한 분이 나에게 말씀 해 주셨다.
"여긴 여름엔 조프리카고, 겨울에는 조베리아야. 봄, 가을은 없어. 덜 더운 여름이랑 덜 추운 겨울이 있지."
"정말 그렇게 덥고 춥나요?"
"겪어 보면 알아."
나는 그 대화를 끝나고 선배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덥고 추워도 과장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나의 꽉 막힌 기후에 대한 선입견을 먼저 깨게 한 것은 선배가 조프리카라고 한 조치원의 여름이었다. 3월에 학교에 왔을 때, 곧 봄인데 너무 추운 것이 아닌가 싶더니 4월이 되자 날씨가 영상으로 오르고 눈이 녹았다. 내 기억 속에 선배의
"여긴 봄이랑 가을이 없어"
라는 말은 지워진 지 오래였고. 봄이 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하지만 4월 치고 추운 기온은 영상으로 올라온 것이 자신의 최대한의 노력이라는 듯 10도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다. 4월 나는 긴팔 위에 외투까지 챙겨서 입고 다녔으며, 이렇게 겨울인지 봄인지 모호한 4월이 지나났다. 5월의 첫 주. 나와 같은 방을 쓰던 2학년 룸메이트가 주말에 집에 다녀오며 큰 캐리어를 들고 왔다.
"왠 캐리어야?"
"이제 여름이니까 여름 옷 전부 챙겨 왔지."
"아직 5월인데? 아직 봄이잖아 계졀의 여왕 5월 몰라?"
"너가 아직 여기의 여름을 모르는구나."
바로 그 다음 주, 나는 내 옷장에 긴팔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반팔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분명 서울의 기온은 아직 20도를 넘지 않았는데, 조치원은 긴팔을 입으면 오후에 밖에 나가는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했다.
"강의를 가려면 나가야 하는데, 긴팔을 입고 나가면 분명 죽을꺼야."
5월의 온도가 30도를 오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조치원에 와서 이렇게 후회 속에 배울 수 있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조치원에 오니 아니나 다를까 9월에도 조치원은 더웠다. 예상을 하였기에 나는 긴팔을 한 가득 가져오는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2학기가 시작한 9월은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살짝 우울한 기분으로 지냈지만, 9월 말이 되자 학기에 친해진 친구들(군대 간 이들을 제외하고)과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랴 다니며 놀기 바뻤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니 10월 초, 중간고사가 일주일도 채 안남았었다. 나는 매일같이 모이던 친구들에게 시험 준비를 했는지 물어보았다.
"당장 다음주가 시험인데, 너희들 공부 하고있어?"
그러자 우선
"안 그래도 집에서 공부 하냐고 여쭤 보시는데, 너까지 그러냐."
"하지 않아서 못 하는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다."
라는 원성 어린 말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한동안 왜 공부 이야기를 꺼냈냐며 쓴 소리를 듣고서, 친구들이 진정을 하고서.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안그래도 이제 해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는데, 너희도 그렇지 않아?"
"해야되는데, 당분간 모여서 못 논다고 생각하니까 서운하긴 하다."
"그러면 같이 모여서 하면 되지 않아?"
이렇게 같이 모여 공부하자는 말이 나오자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 하였고, 나와 친구들은 석원 경상관에서 밤을 새며 공부를 하자고 했다. 말이 나온 날부터 석경 1층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공부 하자고 모이고서 서로 잡담을 나누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 하였지만, 모이지 않았으면 전공 서적을 보지도 않고 시험을 보러 갔을 거라 생각한다.
공부를 위해 모인 첫 날, 해가 질 때 만나서 밤 새 떠들며 놀고, 아니 열심히 다른 공부 하는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을정도로만 말 하며 공부를 하고. 시간이 지나 샛별이 잠시 얼굴을 비추며 해가 동쪽에서 떠오를 것이라는 것을 산 너머 밝은 하늘로 알려주는 새벽이었다. 모여서 대화를 나누건 친구가 잠시 담배를 피러 다녀 온다고 하였다. 몇 분 후, 담배를 피러 나간 친구가 뛰어들어오며 외쳤다.
"너희들 밖에 나가봐 안개가 장난 아니야!"
그 친구를 따라 나가 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짙은 안개는 석원 경상관에서 인문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열 걸음 이상 떨어진 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가 괜히 연기군이 아니구나."
"왜?"
"안개가 이렇게 끼니까 '연기'군이지."
원래 이런 말장난을 싫어하지만, 그 때 만큼은 말장난에 대한 거부감보다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렇게 10월이 지나고 11월이 되니 갑자기 또 추워졌다.
'아 선배가 봄이랑 가을이 없다고 하신게 과장이 아니셨구나."
10월 중순만 하여도 25도 가까이 하던 온도가 10월 마지막 주가 되니 한 자리 수 대로 떨어졌고, 11월이 되니 밤이 되면 영하를 오갔다. 난 그래도
'이번에는 긴 팔 옷과 외투를 충분히 챙겼으니 괜찮을꺼야.'
라고 생각 했다. 본격적인 겨울이 되자 나는 다시금 나의 판단이 옳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아무리 외투를 껴 입어도 조치원의 겨울 날씨는 익숙 해 질 수 없는 추위로 나를 괴롭혔다. 집에서는 몇 겹으로 옷을 입고, 그 위에 패딩을 껴 입으면 겨울에도 충분히 따듯 했는데, 조치원의 겨울은 그러지 않았다. 같은 온도더라도 바람은 살을 배어버릴 듯 불며 옷 사이로 계속 들어와 계속 옷깃을 여미게 만들어 더 춥게 느껴졌다. 눈은 또 얼마나 오는지! 내가 어릴 적 캐나다에 살아서 눈 많이 오는것은 충분히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조치원은 눈이 올 때마다 서울 기준 "폭설" 이 내렸다. 보통 서울에서는 첫 눈은 쌓이지 않고 그치면 바로 녹는데, 조치원의 첫눈은 2cm 이상 쌓였고, 매번 올때마다 계속 그 해의 기록을 갱신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원래 오르내리기 힘들던 헐떡고개는 눈이 쌓이니 오른다는 표현보다 등반 한다는 표현이 옳게 느껴질 정도로 고생스러웠다.
"괜히 여기가 조베리아가 아니구나."
이렇게 한 학기가 지나, 2학년이 되고, 1학년 신입생 환영회를 나갔다.
"우리 학교는 말이야, 여름에는 조프리카고, 겨울에는 조베리아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여름이랑 겨울 밖에 없고, 너의 예상보다 훨씬 덥고, 추워."
"형도 과장을 너무하시네요 하하."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지."
본 글에 나오는 비교는 수도 서울과의 비교인 점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