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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종강을 하고 깨달은 것은 겨울에는 해가 굉장히 빨리 진 다는 것 이다. 물론 매년 겨울만 되면 해가 여름보다 훨씬 짧아졌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일상이 여름-초가을에 시작한 학기 중이야 학과 생활이며 동아리며 학점이며 이리저리 치이며 하늘 한번 둘러 볼 짬이 없어 해가 얼마나 짧아진 지 몰랐다. 마지막 강의의 마지막 시험을 치고 나니 하늘을 올려다 볼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2주 전 같았으면 ‘팀플 연락하는 시간' 이라 휴대폰만 본 6시에 하늘을 보니 나의 최근 기억 속 6시 보다 훨씬 어두워 진 것을 알아차렸다.
예년과는 다르게 눈보다 비가 더 자주오는 12월, 눈이라도 쌓여 있었다면 아직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동심이라는 녀석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을 터였다. 발 밑에서 뽀드득 거리고, 나무 위에 쌓이면 매년 겨울마다 보는 장면이거늘 질리지도 않아 입을 벌리고
“장관이다.”
라며 탄성을 지어내는 눈조차 오지 않은 올해의 12월이다. 밝은 해를 보는 것은 매우 드물었고, 친구들과 술이라도 마신다면 그 다음 날 낮은 나에게 없는 것이 일상인 겨울이다. 날씨는 춥고, 그 덕에 밖에 나가기는 싫고, 무언가 먹자니 딱히 밥을 해야하나 싶은 마음에 망설여지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오후 여섯시만 되어도 해는 떨어진지 오래라 한밤 중 같고, 그렇게 일찍 온 밤 탓을 하며 폐인같이 존재했다.

이렇게 매일 매일 나중에 이렇게 살았던 것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의미하고 자극 없이 살다 보니 어느덧 종강 한 지 일주일이 지나 곧 크리스마스였다.
“곧 올해가 지나는구나.”
연말마저 의미 없게 보내면 안된다 생각하며 여자친구와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에 보자는 약속을 잡는다. 
“그때 나 알바니까, 끝나고 5시에 보자 그럼.”
“그래 내일 보자.”
허나 이브 전날, 23일 밤부터 24일의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의미 없이 휴대폰이나 두들기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고 깨니 오후 4시. 갈증에 냉장고를 열어 물 대신 맥주 한 캔을 꺼내 마시고, 세수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아 담배."
하고 나와 담배를 물어 피니 몇일 전 여자친구와 잡은 약속이 생각 난다.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씻으려 하다가 크리스마스라고 이렇게 부산 떨고 있다는 것이 이유 모르게 허망하여 여자친구에게 
'오늘 저녁늦게나 볼 수 있겠다. 알바 땜빵 때문에. 미안. 저녁에 보자."
이렇게 약속을 펑크내고 방에 다시 누워서 또 의미 없이 휴대폰 화면만 두드린다. 스스로 바뀌자며 잡은 약속을 이렇게 헌신짝처럼 버린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다가, 화면 속 우스운 글귀에 웃다가, 환한 화면에 눈이 피로해져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니 9시 반이다. 옆에서 시끄럽게 우는 전화기에
"아 이 소리에 깬 거구나."
하며 전화를 받으니 여자친구다. 서둘러 목소리를 가다듬고 갓 퇴근한 나를 연기한다. 
“여보세요?”
“집앞까지 왔으니 나와.”
“지금?”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저녁은 같이 먹어야지.”
옷가지를 챙겨입고, 아침에 못한 세수와 칫솔질을 한 후 나가 그녀와 저녁인지 아침인지 알 수 없는 식사를 하고 간단하게 술을 마신 뒤 집으로 바래다준다. 한 시간 전에 약속을 파토내어 기분이 매우 상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내내 그런 기색 하나 없었다.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나보네. 하긴 알바 땜빵이라 어쩔 수 없다 했는데 이해 한 거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그녀의 집 앞이다.
“이제 들어가 봐.”
오늘은 여기까지 라는 그녀의 말을 깨닫고 뒤돌아서며 인사를 하려는데 그녀가 다시 차갑게 입을 연다.
"나를 보고 싶으면 너가 나한테 와. 내가 가게 하지 마." 
이러면서 획 돌아서 방으로 들어간다. 나도 내 생활이 꼬인것을 알아서 아무 말 못하고 조용히 집으로 걸어왔다. 
‘오늘 큰 실수를 했으니 이것을 반면교사 삼아 더이상 이렇게 살지 말자’
이제는 바뀐다 다짐하며 일찍 잠자리에 누워도 일어난 지 4시간도 안된 몸이 잠을 받아드릴 리 없다.. 다시 무의미하게 핸드폰으로 '자기관리, 계획 새우기' 이런 것을 검색하다 SNS 프로필을 
‘진정한 변화는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글귀로 장식하고,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SNS로 염탐을 하다 보니 창 밖이 밝아지는 것을 보며 아차 싶어 눈을 감는다. 다시 눈뜨니 오후 두시. 언제나 
"잘 살아야지."
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것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겨울이 너무나도 추워서 사람을 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곰도 겨울잠을 잔다고 스스로 농담을 하며 키득거린다. 나의 나태가 잘못되었다 스스로 말하기에는 겁이 너무 많은 나는, 겨울을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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