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통과하고 필기시험에도 통과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서류나 필기가 쉽게 붙어서 (제 생각에는) 뭐, 개나소나 다 붙여주나 했는데 꼭 그런게 아니랍니다. 제가 지원했던 재무/회계 부서에 면접자가 24명 정도 였는데, 최초 지원자는 수백명이었다고 하더군요. 이거 참 좋아해야할 지 난감해야할지 (제 스펙은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스펙따윈 없습니다).
일단 제가 볼 면접 날은 1차수 11일 (토) 였습니다. 면접일정이 오전 8시 부터 오후 7시 까지라는게 조금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대체 뭘해야 10시간 넘게 면접을 보게 될 것인가. 뭐 그래도 면접은 면접이겠지 하는 마음이었(뒤에 그 면접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습니다.
복장은 자유복, 하지만 자유복 입기 싫어 정장을 입고 4시 반에 일어나 준비하고 7시 까지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T 타워에 갔습니다. 티타워에 처음 갔는데 제일 신기한 점은 화장실 세면대가 센서식이라는 점, 그리고 정말 깨끗하고 밝고 현대식이라는 것. 그리고 지원자 약 30%가 정말 캐쥬얼 복장으로 입고 온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업에서 딱히 별로 신경 쓰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대기실에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들, 빵을 뷔페식으로 주면서 먹으라고 했는데, 이미 아침을 먹은지라 맛있어 보이는 빵을 포기하고 오리엔테이션을 하러 갔습니다. 1차수 인원은 약 240명, 똑같이 240명이 내일 온답니다. 제가 받은 조는 Y조. 알고보니 지원 직군대로 분류 한것이더라고요.
Y조는 회계/재무 직군 지원자들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12명이었는데 1명 결시로 11명 (내일도 12명이 있다는 소리니 약 23~24명이라는 소리죠)이었습니다. 서로 대충 눈인사를 하고 재무팀이 있는 최상부로 올라갔습니다. 참고로 블라인드 면접이라 면접자의 학교정보는 노출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하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될 수 밖에 없어서, 사실 절반 정도 블라인드라 생각하면 됩니다. 면접이 모두 끝난후에 지원자들끼리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학교에 대해 대충 알게 되었습니다. 뭐,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밑으론 없네요. 저 빼고요.
면접실이라기 보다는 회의실에 (남산이 탁 보이는) 앉아서 바로 면접이 시작되었고, 오늘의 커리큘럼을 받았습니다.
오 쉣
예상했던 인성면접만 볼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뒤엎어졌습니다. 개인 PT 두번, 팀 토론 PT 두번, 팀 제품 기획 판매 한번, 협상토론 이렇게랍니다. 직무 공부 하나도 안했는데, 평소실력으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첫 개인 PT 랜덤으로 주제를 주는데 '기업이 인수시에 재무적인 방법 4가지 이상 설명하고 이를 법적 회계적 세무적 장단점으로 설명하시오' 이런 모르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발표자를 면접관이 아무나 시킨다고 해서 열심히 풀었습니다. 잘 모르는 거라 아는대로 최대한 작성했습니다. 왠지 저를 시킬 것 같은 삘이더라고요. 역시 아니나 다를까, 가장 먼저 저를 시켰습니다.
니미
아는대로 최대한 말했지만, 5분 PT에 2분 30초 남짓 밖에 못하고 면접관들의 표정이 안좋아집니다. 그리고 다른 면접자들이 득달같이 질문공세를 펼칩니다. 최대한 차분히 아는대로 말을 했습니다. 뭐 그렇다고요, 그리고 저 말고 안한사람 위주로 3명을 더 시켰습니다.
다음은 제품기획 발표입니다. 주제는 30~40대 주부를 위한 로봇을 기획하고 가격을 산정하고 예상 수익분석을 하고 어쩌구 하랍니다. 지정해준 팀에서 토론을 하였습니다. 어느 로봇이 좋냐고 서로 의견교환을 했는데,
본인 : 같이 술마셔주는 기계가 좋은데 30,40대 주부니깐 같이 대화해주는 로봇은 어떨까요?
안암 경영 : 자취하면서 느낀건데 집안일 도와주는 로봇이 좋을 것 같아요.
시립대 회계(추정) : 건망증이 심해지고 바쁠 시기니깐 플래너 알람 로봇은 어떨까요
안암 식자경 : 방범용 택배 수령 로봇은 어때요?
본인 : 만약 도둑이면 빠따 휘두르는 기능은요? (모두 웃음)
안암 식자경 : 그건 비용상 . .
본인 : 만약 AI 폭주로 남편을 빠따로 휘두르게 된다면? (또 웃음)
잡설 그만하고 결국 플래너 알람기능으로 정했습니다. 기획할 때 저와 시립대 생은 제품의 성능을 담당했습니다. 뭐, 대충 스마트화 시킨 유비쿼터스 허브 기능 탑재, 자동 연계 시스템, CPU는 클라우딩 어쩌구 했습니다. 제품은 무조건 귀엽게 (안그래도 잔소리 쟁이 로봇인데) 하자고 해서 제품명을 짓자고 고민하다가 제 의견이 채택되어 '땍땍이'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인성면접이 제 차례가 되었답니다(그러면 팀 과제 중간에 빠져 나와서 따로 면접을 봐야합니다). 어쩔수 없이 제품기획은 못하게 되고 개인 면접 보러 갔습니다. 거기서 일단 개인 PT를 하게 됩니다. 랜덤으로 받은주제는, 오 럭키.
사외이사제도나 어쩌구 같은 제도의 회계의 투명성 기여와 기업의사결정의 효율성에 대한 찬반입니다. 다행이도 아는 문제입니다. 더이상의 확장은 반대하며 의사결정에 해를 끼친다고 회계의 기본 원리로 설명했습니다. 다행이도 더 이상 면접관들은 별말 안하고 넘어갔습니다. 바로 인성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 면접관의 왼쪽은 인상이 웃는 얼굴, 오른쪽은 강한 인상이라 포스가 느껴지더랍니다. 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질문하는 대로 대답했습니다.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가장 열성을 다해 소속된 조직이 뭐였고 그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자신이 어떠한 노력을 했으며, 어려웠던 점은 뭐였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고, 무엇을 바꾸었고 이루었는지. 전 열심히 동아리 생활 한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악기 연주 동아리다보니 할말은 참 많아지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질문은 자신이 목표를 세워 이루었던 것, 살면서 가장 큰 변화를 느끼면서 어려웠던 것 들을 물어봅니다. 그냥 전 학교 세종캠에 온 것을 말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유배온 심정이었다. 그리고 안암생들에게 알게 모르게 차별과 무시를 받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있었기에 꾸준히 계속 노력하여 지금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하기에, 이번 면접에 대한 심정을 재밌게 잘 말했습니다. 키워드는 개구리 뒷다리. 그리고 긴 면접이 힘들거라며 힘들지 않냐고 하니깐, 새로운 다양한 면접이 참 즐겁다고 말했습니다(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재밌었습니다).
약 30분에 걸친 인성 면접이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뭐 팀 기획 프로젝트는 이미 끝났더라고요. 적자 봤답니다. 적자 본 사실이 중요한것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점심을 지원자들과 어울려 먹고 바로 오후 면접보러 갔습니다. (참 타이트 하게 합니다)
오후 면접의 일정은 팀 PT 두번에 협상토론이랍니다. 첫번째 팀 PT의 주제는 기업이 사채 발행 비중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그 원인과 고려해야할 점, 미치는 영향에 발표하랍니다. 제한시간은 45분. 열심히 내부요인 외부요인에 대해 작성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과목들을 많이 배워서 많이 이야기 했고 잘 반영이 되었습니다. 상대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맨 처음(망한) 발표를 제가 했기 때문에 제 발표기회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 팀 발표는 기똥차게 할 수 있는데. 서로의 질의응답시간을 가지고 다음 PT로 넘어갑니다.
두번째 팀 PT는 SK의 디지털 TV 상황의 악화를 보면서 어떻게 4P 전략을 세워야 할 지 입니다. 4P전략은 박철 교수님 덕분에 제대로 배운지라 열심히 또 수행했습니다. 10분이 지나자 갑자기 면접관들이 팀 과제를 서로 바꿉니다. 즉 TV 과제는 상대팀, 상대팀의 무제한 요금 폐지 찬/반은 우리에게 왔습니다. 더 쉬워졌네요. 무제한 요금 폐지 찬성 쪽으로 이유와 근거,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작성해서 발표했습니다.
뭐 협상토론 과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데, 토론 시뮬레이션을 하는 겁니다. 랜덤으로 제비를 뽑았는데 우리 팀이 SK텔레콤 같은 통신회사, 상대 팀이 광고 회사 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내부정보를 포커 카드 처럼 숨기고 전략을 세웁니다. 협상 결과에 따른 점수가 각각 있습니다. (역시 상대팀도 있습니다) 그리고 협상을 진행합니다.
30분 협상에 전 거의 갑의 포스를 풍겼답니다. 뭐 처음에 부딪칠때 갑으로 가다가 나중에 맞추자는 전략이어서, 그렇게 한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 제 실수였지만 협상 토론 과제에서 팀에서 제가 너무 말을 많이 한게 실수라면 실수였습니다. 5명 중 두 명(서강대 경영분, 안암 식자경분)은 말도 한마디도 못합니다. 뭐, 결국 협상 종료 2분 남기고 극적 타결하고 서로의 점수 결과를 공개했는데, 딱 동점으로 나왔습니다. 가장 열을 올리신 상대 팀 서울대 분과 성대 경제과 분과 안암 경영분과 기뻐했습니다. 동점이어서 너무 좋게 끝났다고. 면접관들도 타결이 안될줄 알았는데 타결 되었다면서 웃었습니다. 뭐 그렇게 면접은 끝났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회식을 하더랍니다. 사내에 있는 뷔페로 가서 맥주와 함께 먹었습니다. 그 때 안암 경영분이랑 이야기 하다가 세종캠이라고 말하니깐 별 뜻 없이 '그래도 같은 학교잖아요'라고 말하는 소리에 왜 조금은 찡했을까요.
사람들이랑 이야기 하면서, 예상했지만 제가 남자중에서는 제일 어린 나이였습니다. 대부분 26, 28, 29, 30, 30, 이런 나이였습니다(이 나이에 취직 못하고 뭐했냐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취직하는 건 어렵지만, 대기업 그리고 인문계에서 취직하는것은 더욱 어렵답니다.) 대충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면접에 있었던 상황들 되새기며 다시 만났으면 (과연 얼마나 다시 만날수 있을까)하는 바램으로 끝냈습니다. 술자리에서 서울대 생이 제일 잘 놀더라고요.
끝나고 느끼면서 아 정말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전 하고 싶은 말 다했고, 즐겁게 시원하게 면접을 치뤄 아쉬운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잘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예상을 못하겠네요. 만약 합격한다면 그 쟁쟁한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분들을 이긴다라니, 참 쉬운건 하나도 없네요.
그리고 면접을 보면 크게 두가지 부류로 나눌수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과 침묵을 지키는 사람. 그리고 각각 말만 하는 사람과 정말 잘 말하는 사람, 그리고 찌그러져 있는 사람, 중요할 때는 말하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하는 것은 뭐 개인의 성격 나름이더랍니다. 단 책 많이 읽고 글 많이 써보고 발표 많이 해본 사람이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암 식자경 분은 거의 이야기를 안하시더라고요, 서강대 경영 한 분도 그렇고요. 반면 성대 경제과나 서강대 경영다른분, 안암 경영분, 서울대 분은 참 말을 잘합니다. 그 중에서 성대 경제분과 안암 경영분은 정말 잘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혹시 상경계 학생 뿐 만이 아니라 취직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면접에 대해 알려주고자 함입니다. 사실 면접 준비하면서 면접에 대해 글이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일종의 비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 글을 보면서 한 명이라도 면접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시험공부하다가 낙서식으로 적은 뻘글은 여기 까지 입니다. 망글이라 지워버리고 싶지만 그냥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