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끝나고 지휘관은 테메르를 자신의 막사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지휘관님.”
“지금은 사석이니 스승님이라 불러도 된다네.”
“네 스승님.”
“어땠나 처음 와서 치른 전투는?”
“책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특히 저 야만인들…… 저렇게 저돌적이고 포악한 이들일 줄 몰랐습니다.”
테메르가 자신의 스승에게 예의를 버리면서 까지 퇴각을 종용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가 책에서 읽은 야만인들은 숲에서 움막을 짓고 살아가고, 짐승 가죽을 두른 문명화 되지 않은 약한 적이었지만, 직접 전선에 와서 겪으니 달랐다. 울창한 숲에서 살아 그곳에 익숙하지 않은 군단 병사들보다 유리했으며, 짐승 가죽을 둘러 무거운 갑옷을 두른 제국의 병사들보다 날랬다. 제일 큰 충격은 죽음을 두려워 않는 그들의 저돌성이었다.
“알아두게, 이 전쟁 또한 언제나 그랬듯 제국의 승리로 끝날 것이야. 우리는 저들의 집을 부수고 땅을 빼앗으러 온 이들이네. 전쟁이 끝나고 이 땅이 우리의 것이 되어도 저들은 우리에게 동화되려 하지 않을 걸세, 자네라면 원수의 품에서 잘 수 있겠나?”
“그러면 저들을 전부 죽여야 합니까? 노예로 만들까요?”
“그것이 의회의 원로들이 좋아하는 방식이네만, 틀렸다네. 그 방식은 짧은 시간 속에는 해결된 것처럼 보여도 긴 시간이 지나면 제국의 존속을 위태롭게 할 거라고 난 생각한다네.”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답은 없다네, 자네가 찾아야 하지, 하지만 난 그 답이 제국의 수도보다는 저들의 마을에서 찾기 쉬울 거라 생각한다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가이우스 테메르는 전투가 끝나면 야만인 포로들을 모아 그들의 말을 배우고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미개함을 동정하던 그는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순수함을 동경했고, 그들의 문명은 제국보다 뒤쳐지지만 그들의 문화는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로들도 원수의 우두머리인 테메르에게 적대적이었으나, 매일같이 그가 자신들을 찾아와 자신들에게서 배우고, 점점 바뀌어 간다는 것을 알고 테메르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포로들의 지도자는 ‘사냥하던 이의 쉰두 번째 후예’ 이라는 자였다. 그는 테메르에게 야만인들의 말을 알려주었고, 그 대가로 제국의 말과 행동을 알려달라 했다. 테메르는 그에게 ‘필리우스 베나터’ 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그의 이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들의 말로 그를 부르는 것임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테메르가 지어준 이름에 만족해 하며 그에게 말했다.
“우리 사람들과 자네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매우 다른 것 같다.”
“살아온 방식이 차이가 크니까 그렇다고 생각해 필리우스”
“하지만 공통점도 있지. 우리도 서로를 이해하는 이들은 우정을 나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전쟁이 끝나고, 야만인들의 영토를 전부 점령하자 테메르는 필리우스에게 말했다.
“제국의 군인으로서 나는 오늘이 정말 기쁜 날이지만, 그대의 친구로서는 매우 슬픈 날이야.”
그러자 필리우스는 테메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슬퍼 말게 친구여, 난 오늘이 기쁘다네. 우리 사람들은 자네의 제국처럼 영토를 소유한다는 의식이 적고, 나는 자네가 우리를 대변해 줄 걸 알거든. 친구가 승리한 날이자 우리 사람과 문화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 받는 날이 아닌가!”
테메르는 필리우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고, 그를 풀어주며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라 했다.
전쟁이 끝난 군단은 치안 유지에 필요한 인원을 빼고 수도로 돌아갔다. 광을 낸 갑옷을 입은 군단 병사들을 테메르와 그의 스승은 열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이끌며 개선 행군을 했고, 행군이 끝나고 테메르는 원로회의 부름을 받아 의회에 방문했다.
“잘했네 테메르, 자네 스승이 승리의 오 할 은 그대 덕이라 하더군.”
“자네의 공에 대한 상은 의회에서 자세히 논의할 것일세.”
“일단 수도에 머물고 있게나, 자네와 같은 이가 그 변경에 있는 건 인력 낭비라네.”
원로들의 칭찬은 이어졌고, 그들의 말이 끝나자, 테메르는 그들에게 부탁을 했다.
“존경하는 의회에 부탁을 드립니다. 그곳의 원주민들의 교화 작업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디 그 작업이 끝날 때 저를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의회는 웃음으로 가득 찼고, 웃음이 잦아들자 한 원로가 그에게 말했다.
“젊은 친구가 의욕이 대단하군, 자네 혼자 그들을 교화 한다니, 걱정 말게나 그 교화 작업을 위해 이미 노예 상인들과 야만인 관리 군단이 변경으로 출발했네.”
그 말을 듣자 마자 테메르는 의회에서 뛰어나와 자신의 말을 타고 변경으로 달려갔다. 자신이 늦지 않았기를 빌며, 원주민들에게 대피하라 전하려 뛰어갔으나. 그가 도착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땅에 가득한 원주민들의 시체와, 타오르는 그들의 마을이었다. 무엇에 홀린 듯 불에 탄 원주민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던 테메르의 눈에 익숙한 인영이 쓰러져 있는 것이 들어왔다. 부디 바닥에 쓰러진 이가 자신의 친구 필리우스가 아님을 빌며 다가간 테메르였지만, 운명은 그를 배신했다.
“내 친구가 여기 오는군”
“말 하지 말게 필리우스. 버티게, 내가 자네를 가까운 의원에게 대려 갈 때 까지만.”
“친구여, 자네도 잘 알지 않나. 희망이 없어.”
“내가 가지 말았어야 했어, 이곳에 남았더라면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거야.”
“친구, 나에게는 시간이 없어. 자네에게 말해 줄 것이 있네, 부디 들어주게나.”
“듣고 있어.”
필리우스는 마지막 숨을 쉬며 자신의 동포는 사라져도 문화는 테메르가 이어주기를 바란다며. 테메르에게 자신들 문화의 성지. 오래 전 하늘과 땅이 알려준 장소를 테메르에게 알려주었다. 그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눈을 감은 뒤 긴 시간 동안 눈물을 흘린 테메르는 그를 땅에 묻어주고 그가 알려준 장소로 말을 달렸다.
‘서쪽으로, 태양이 열두 번 지고 뜰 동안 말을 타고 가면, 거대한 산맥이 나온다네. 우리 사람들은 그 산맥을 넘어왔지. 그 너머에 넓은 평야가 있고. 그곳에 홀로 서 있는 산이 있어. 그곳이 우리들의 고향이지. 이제는 버려진 땅이지만, 그곳을 살면서 한번은 꼭 찾아가 위대한 분을 뵙는 게 우리 사람들의 의무야.’
‘위대한 분?’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이지. 금빛 옷을 두르신 분, 흰 얼굴로 누워 계신 분이라네.’
계속 서쪽으로 가자 테메르는 지금껏 자신이 보아온 그 어떤 산보다 거대한 수많은 봉우리들이 이어진 산맥을 보았으며, 처음에는 다른 산과 같이 말을 타고 올라갔다. 그것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는 말을 희생시키고서야 깨달았고, 여러 번 의 목숨을 건 시도 끝에 그는 산맥을 넘을 수 있었다. 산의 너머에서 그는 땅 끝까지 이어진 넓은 평야와 그 한가운데 자신을 드러내 서 있는 산을 발견했다. 산맥은 추운 곳이라 테메르는 눈을 파 들어가 잠을 자거나, 동굴에 들어가 불을 지펴 잠을 잤다. 평야에 거의 다다랐을 때. 그는 한 동굴을 찾아 그곳에서 잠을 자려 불을 지폈고. 벽에서 필리우스의 선조이자,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을 처음 발견한 ‘불을 지키는 어른’ 의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하늘이 그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는지, 자신의 가족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그리고 그분을 어떻게 만났는지 적힌 동굴 벽의 기록을 본 테메르는 자신이 온 길이 옳은 길임을 알았고. 자고 일어난 뒤 동굴 입구에서 보이는 산으로 향했다.
산에 들어가니 필리우스의 선조의 고향을 찾는 것은 쉬운 일 이었다.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니 버려진 마을의 중간에 거대한 움막이 있었고. 그 안에 그가 찾던 것이 있었다. 그간 친구의 말과, 그 선조의 기록을 의심하던 테메르였지만 그 금빛 찬란한 이가 자신을 희고 거대한 얼굴로 자신을 들여다 보자마자 그 의심은 사라졌다. 그자가 있는 곳으로 자신을 부른 것은 운명임을 깨달은 테메르는 그자가 예전 ‘불을 지키는 어른’에게 한 것처럼 그가 말 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테메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자신이 준비 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 테메르는 그가 말을 해주길 기다리며 살았다. 버려진 마을에 들어선 지 이십 년이 지났을 때, 매년 찾아오는 이들에 의해 보수되었던 마을 정 중앙의 움막이 수십 년간 보수를 받지 않자 무너져 내렸다. 놀라 달려가 움막의 잔해를 치운 테메르는 그 잔해 아래에서 ‘위대한 분’이 누워 계신 것을 발견했으며, 충격에 돌아가신 것이라 판단했다.
"친구의 삶을 지키지 못하였는데, 나는 이제 그의 정신도 지키지 못하였구나."
그분을 묻어드려야겠다고 판단한 그는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고 잔해 사이에서 은빛의 상자를 발견했다. 그분의 죽음에서 태어난 상자 안에는 고금의 진리가 적힌 기록과 금으로 이뤄진 원반이 있었으며. 그 기록과 황금 원반을 본 테메르는 깨달았다. 제국의 신전에 있는 대리석 조각은 거짓이며 자신의 앞에 누워 계신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섬김을 받을 ‘위대한 분’ 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