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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플존 KUPLEZONE



http://kuple.kr/1522198 조회 수 2469 추천 수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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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입학하여 학교에 대해 하나 하나 알아가던 작년 1학기 초, 최대한 선배분들에게 비벼가며 학교 생활의 팁을 배우느라 하루하루가 바쁜 3월이 지나고 어느 정도 동기와 선배들과 친해진 4월의 첫 주였다.  
“지금 시간 되냐? 15,14 모여서 술마실껀데 올래?”
아는 선배가 이렇게 전화를 했고, 마침 마지막 강의가 끝나 기숙사에 들어가려던 나는 기분 좋게 대답했다
“네 어디로 가면 되요?”
“일단 한마음마트 앞으로 와.”
한마음마트! 고대 세종을 다니는 학우라면 모를 리 없는 장소일 것이다. 가끔 신안리에서 모이는 경우를 제외하면 모든 약속의 시작은 한마음마트에서 시작한다고 봐고 과언이 아니리라. 만약 독자분이 지금 당장 약속장소로 가야하는데, 그 위치가 기억이 안난다면 한마음마트로 가 보라. 절반정도의 확률로 그곳이 약속장소일 것이다. 
“네 바로 갈께요.”
선배에게 대답을 하고 농심국제관에서 나와 학술정보원을 지나 한마음마트로 향하는 길에서 한 현수막을 보았다. 지금에야 그 현수막이 이상한 현수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는 신입생이라 현수막의 내용을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다. 대학의 현수막이라면 동아리나 소모임 홍보 현수막이나, 학생의 고충을 토로하는 자보 형식의 현수막이 보통인데, 그 현수막은 이질적이게 사회적인 이슈를 정치적 관점으로 토로하고 있었다.
“이런 현수막도 있네.”
신기하여 그 현수막을 건 단체를 보니 ‘총여학생회’였다. 나는 이때 이 단체를
‘총 학생 여론을 대표하는 정치적 학생회인가?’ 
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그리고 한마음 마트에서 선배와 동기들을 만나 술과 안주를 사고 마트 앞 벤치에서 먹고 마시며 놀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니 아직 이른 봄이라 그런지 날씨가 낮의 따스함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쌀쌀해 졌고, 바람도 심하게 불어 빈 소주병이 계속 쓰러쟜다. 그러다 1/3정도 찬 소주병이 바람에 넘어져서 그 앞에 있던 선배의 바지를 젖게 하자 그분이
“이만 마셔야겠다. 춥고 바람도 엄청 심하게 부네.”
“그럼 슬슬 정리 할께요.”

선배, 그리고 동기들과 함께 술마시며 친목을 도모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마음마트를 지나 학술정보원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낮에 본 현수막이 절반정도 찢어져 위태롭게 걸려있었다. 나와 같이 기숙사에 들어가던 동기들 중 한명이 말했다.
“바람이 이렇게 강하게 부니까 현수막도 얄짤 없네,”
“그래서 보통 현수막 붙일때 중간 중간에 바람 통하라고 구멍 뚫어 놓잖아. 우리 학과 현수막 걸때도 구멍 뚫어서 걸더라.”
“정말 바람이 새게 분다고 현수막이 이렇게 찢어질 수 있나? 누가 찢은거 아냐?”
“이 현수막 바로 뒤가 낭떠러지인데, 이거 찢다가 실수하면 수명이 찢어지겠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현수막이 그 다음날부터 폭풍의 핵이 될 줄은 그곳을 지난 우리 중 아무도 몰랐다.

다음날 강의를 들으러 농심국제관에 갔는데, 본적 없는 대자보가 눈에 띄었다.
“고대 세종의 표현의 자유가 찢겨졌다.”
내용인즉슨 자신들이 걸어놓은 정치적 플랜카드를 누군가 밤에 몰래 찢었으며,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이었다. 이때까지만해도 이들이 “총 학생 여론 정치 학생회” 이런 단체인줄 알았던 나는 총여학생회가 국민의 여론을 표명하였는데 자보가 찢겼다는 것에 분노하는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같은 강의를 듣던 동기에게 말했다.
“맞는 말인거 같다. 이 대자보.”
“나는 이들이 정치색을 너무 드러내는거같은데.”
“총여학생회니까 낼 수 있는거 아냐? 여론 수렴해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친구야 총여의 여는 여자 할때 여야.”
“……….”
이날 이후로 한달간 학교가 조용한 날이 없었다. 쿠플존의 유저인 “늙은호랑이”라는 학우가 이 대자보를 하나 하나 반박하며 총여학생회의 존재 의의부터 따져갔고, 총여학생회는 대자보를 붙여가며 반박해 갔다. 그러나 여학우들의 권리를 위해 만들어진 총여학생회가 본분을 잊고 정치, 사회 이슈에 더 민감하게 행동한다는 학생 여론은 총학생회까지 가게 되었고, 쿠플존 유저 “늙은호랑이”를 대표로 하는 여론이 청문회를 요구했다. 이 여론을 수렴한 총학생회는 총여학생회에게 청문회 출석을 통보하였고, 이 모든 상황을 쿠플존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과 그곳에 달리는 댓글로 지켜본 나와 나의 동기들은 하나같이
“1학년때부터 이런 다이나믹한 사건이 일어나네.”
라 말하며 상황을 즐겼다. 나는 내 룸메이트인 2학년이자 나와 나이는 같은 종영에게 현재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자세한 전말을 들은 후 동기들에게 가서 설명을 해 주곤 했다. 
청문회 출석 요구를 한지 며칠 후, 총여학생회는 ‘늙은호랑이' 분과 직접 대화를 하였으니, 청문회를 재고해 달라고 회신을 보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총학생회는 재요청을 하였지만 답변이 없었다.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총학생회에서 요구한 청문회 출석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름동안 대자보를 계속 붙이며 억울함을 호소한 총여학생회였지만, 대다수의 학우들은 청문회를 원했다. 이렇게 대치가 계속되던 중, 최초로 의의를 제기한 ‘늙은호랑이'가 직접 총여학생회 사무실에 찾아가 밝혀낸 사실을 쿠플존에 개재하였는데, 이는 충격적이었다.
장부 조작과, 자금 은닉 정황, 당시 총여학생회가 관리하던 여성용 자판기 재고 관리 태만에 여학우 휴게실 관리 태만이 드러났는데, 여기서 여학우 휴게실은 학교 축제때 어느 학우가 술을 마시고 들어와 올린 토사물이 묻은 이불이 일주일간 방치되어 있었을 정도로 심각했다.
이 사건 이후 총여학생회는 청문회에 응답하였지만 대다수의 학우들이 원하던 정확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고, 학우들의 여론은 폐지해야 한다는 뜻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나와 나의 친구들은 쿠플존의 글과 댓글을 보며
“이러다 폐지 투표하는거 아니야?”
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날 총학생회는 학우들의 여론을 모아 총여학생회의 폐지 투표를 진행한다는 공문을 올렸다. 설마 진짜로 폐지 투표를 할 줄은 몰랐지만, 사실 썩 마음에 드는 단체 또한 아니었기에 나는 투표를 행하는데 이의가 없었고, 그건 내 주위의 선배들이나 친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71.04%.
투표 결과 71.04%의 찬성률로 총여학생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나와 나의 동기들은 우리 학교의 학우들이 매우 민주적으로 활동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들이 뽑은 이들이 옳지 못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다같이 목소리를 내어 상황을 바꾸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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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호랑이 2016.12.10 01:45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잠들기 전 오랜만에 쿠플존에 접속해보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총여학생회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디가 포함된 게시글을 읽게 됐군요. 당시에 총여폐지와 관련없는 학우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읽어보니 참 재밌네요. 정기연재하는 시리즈 중 한 편인 것 같은데, 잘 읽었습니다. 총여폐지 투표를 위해 학우분들의 서명을 받느라 이리저리 뛰던 시간들, 그리고 함께해준 학우들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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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iluvatar 2016.12.10 02:2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profile
    에뜨왈 2016.12.10 02:04

    소설이라기보단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일기같은 느낌이지만 당시 회계를 확인했던 당사자로서 이렇게 글을 읽으니 새로운 기분이네요.

    저도 총여폐지와 관련없는 학우의 생각을 보니 재밌었어요.

    당시 저희를 지지해주신 분들이 생각나 고맙게 느껴집니다.

  • profile
    작성자 iluvatar 2016.12.10 02:2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인물이 총여사건에 얽히는 서사의 글을 적었습니다만, 주제가 민감할 수 있다보니 수정하느라 너무 평면적인 사건의 나열이 되었습니다. 지적 감사드리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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