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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양은 양털도 무겁게 여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때 가장 피로가 빨리 온다.

-중국 속담-

 

이야기 둘

 

3월 초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강 정정 기간이 시작된다, '수강 정정 기간'은 개강을 하고 나서 2주 정도 지나면 시작되는데, 어렵게 말해서 '수강 정정 기간'이지 쉽게 말하자면 다시 한 번 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 기간이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수강 신청을 할 때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강의를 신청했다면 이 기간에 강의를 나가고 정정할 일이 없지만 수강 신청 때 실패를 맛본 학우들은 이 기간에 사활을 건다.

 

수강신청을 실패한 이들이 수강 정정을 하는 이유는 많다. 강의가 자신과 맞지 않아서 정정을 하는 이들도 있고, 시간을 조정하려 하거나, 추가학점을 노리고 수강정정을 하는 학생도 있다. 보통 수강정정을 하는 이유는 이런 이유들이 대부분이다, 학업을 위한 수강정정인 것이다. 그럴 터였다.

 

입학하고 지원한 기숙사에 배정받은 뒤 방을 찾아 들어가 짐을 풀고, 어색했던 룸메이트들과 입방식으로 친해지고 나면 그들의 생활 습관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승수는 처음 선배라는 이미지에 다가가기 껄끄러워 종영과 더 자주 지냈는데, 내가 종영에게서 제일 먼저 찾은 생활 습관은 깔끔하다는 것 이었다. 그는 침대를 쓰지 않을 때는 언제나 이불을 개 놓았고, 책상정리는 하루에 두 번씩 하였다. 3일에 한번 면도를 하고 하루에 3번 샤워를 하는 그를 보고 결벽증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로 종영은 깔끔한 친구였다. 그가 깔끔하다는 것은 첫날 종영이 짐을 풀 때 박스와 테이프를 정리하고, 책상까지 각을 맞춰서 정리하는 것을 보고 알아차렸다. 그리고 다음에 알아차린 종영의 생활습관은 잠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적으면 혹자는

'나도 잠이 많은 사람인데, 잠이 많다는 것이 습관이라고 할 수는 없지.'

라 말할 수 있는데, 보통 잠이 많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아침에 따듯한 이불에서 나오는 것을 싫어하고 그런 것이 정상이지만, 종영의 수면은 그 정상을 아득히 초월한 늦잠 이상이었다. 강의가 1교시라면 보통 8시경에 일어나 강의를 나갈 준비를 한다. 8시에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기숙사를 나서면 적어도 8시 40분, 강의에 늦을 일은 없다. 만약 새벽까지 밤을 새서 피곤하여 늦게 일어나도 8시 50분, 9시를 넘겨서 일어나고, 빠르게 나갈 준비를 하고 뛰어가 10분에서 20분정도 늦는 지각을 한다.

 

그러나 종영은 달랐다. 일례로 그의 월요일 첫 강의는 2교시, 10시에 시작했는데, 그는 절대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았다, 11시가 다되어 일어나면 그는 진지한 얼굴로 고민을 한다.

'내가 이 강의를 몇 번이나 빠졌지?'

그리고선 다음 강의는 절대로 빠지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고 다시 잠에 든다.

 

결석을 수시로 하지 않는 이상 출결이 학점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데, 혹시 궁금해 할 독자를 위해 적자면. 대다수의 교수님들은 2회 지각을 하면 1회 결석으로 치고, 결석을 강의 일수 중 1/3이상 하면 F 학점을 준다.

 

내가 종영의 잠에 대한 습관을 깨달은 것은 개학하고 3일이 지난 목요일로 기억한다. 개학하고 첫 주는 오리엔테이션 기간으로. 대다수의 교수님들은 이때 강의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신다. 신입생 환영회 때 오리엔테이션을 놓치면 한 학기 강의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선배들에게 들은 나는 교수님이 강의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것을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학기 첫날 강의를 나갔다. 내 생각대로 오리엔테이션은 절대 놓쳐서 안 되는 꿀과 같은 정보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종영은 오리엔테이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나와 전혀 달랐다. 그는 학기 첫날 아침에 잠깐 일어나 책상을 정리하고 샤워를 한 뒤 다시 침대에 올라가 잤다, 내가 강의를 나갈 때도 자고 있었고, 나갔다가 들어와도 침대에 누워 있었다. 12시 가까이 되서 깬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점심을 먹으러 간 뒤, 기숙사에서 계속 뒹굴 거렸다. 오후 늦게 들어와 그가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는 모습을 본 나와 승수는 그날이 종영의 공강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둘째 날, 이날도 마찬가지로 종영은 11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나는 11시부터 5시간 연강, 승수 또한 나와 비슷하게 연강이라 정확하게 언제 종영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10시 40분에 강의를 가려 기숙사를 나설 때 자고 있었으니 더 늦게 일어난 것은 확실했다. 4시가 넘어 기숙사에 들어오니 종영은 침대 위에서 또 뒹굴 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가 강의를 다녀와서 노는 것이라 지래 짐작하고 그와 승수와 놀다가 잤다.

셋째날인 목요일, 나는 목요일이 공강이었는데 이 날도 종영이 11시가 넘어서야 일어나자, 나는 위화감을 느끼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나 오늘 공강인데, 너도 오늘 공강이니?"

"아니, 나 공강인 날 없는데."

"하루도 없는거야?

"응 일주일 내내 강의가 꽉 차있어."

"어제랑 그제는 강의 안 나가지 않았어?"

"이번 주 오리엔테이션이잖아. 출석 안 해.“

"일주일 내내 안 나가려고?"

"응."

 

이때 깨달았다. 나와 종영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보통 오리엔테이션이라 함은 한 학기 강의 전체를 요약해주며 중간, 기말고사, 과제, 리포트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 중요한 시간인 오리엔테이션을 종영은 일주일 내내 출석을 하지 않는다고 강의라고 나가지 않은 것 이었다. 다음날인 금요일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는 하루 종일 강의를 나가지 않았고, 주말 내내 놀았다. 놀았다 함은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과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축구 들을 하며 운동을 같이 한 것이 아닌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린 것을 뜻한다. 나는 잘 때가 아니면 침대에 올라가지 않는 성격인데, 종영은 달랐다. 2층 침대라서 내려오기 귀찮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 위가 편했던 것인지 그는 하루 종일 2층 침대 그 위에서 책을 보고, 휴대폰으로 웹서핑을 하고, 과자를 뜯어먹다가 점심과 저녁때만 나가서 학식을 먹고 방을 잠시 정리한 뒤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 종영은 또 다시 11시가 다 될 때까지 잠을 잤다. 종영의 책상을 보니 시간표가 깔끔하게 붙여져 있었는데, 월요일 첫 강의가 3교시, 즉 11시였다. 오리엔테이션 기간이 끝나 이번 주 부터는 출석을 하는데 아직까지 자고 있는 종영을 보니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10시 40분이 지나도 알람조차 울리지 않았다. 잘못하면 친구의 학점이 바닥을 치겠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종영에게 다가가 그를 깨웠다.

"너 강의가야지 일어나."

"지금 몇 시야?"

"11시 다됐어, 너 오늘 3교시잖아."

내 말을 들은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갔다. 당연히 강의 나갈 준비를 한다 생각한 나는 내 자리에 앉아 할일을 하고 있었는데, 종영의 자리에서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강의에 필요한 프린트 물을 찾는 건가?'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뒤를 돌아보니 종영의 노트북에 띄워진 화면은 수강정정 화면이었다.

"왜 지금 수강 정정을 해? 강의 다녀와서 해도 되잖아."

"강의에 늦었으니까 수강 정정을 하지."

"뭐라고?"

종영의 나태함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수강 정정 페이지에 들어간 뒤, 모든 강의를 수강 취소하고 다시 수강신청을 해서 전혀 다른 시간표를 만들었다.

"종영아 너 수강신청 잘못했니?"

"아니."

"너 지금 강의 가야 하는 거 아니었어?"

"그랬었지."

"근데 왜 수강정정을 하는 거야?"

"아, 이번 일주일도 놀려고."

세상에,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그랬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종영은 수강정정을 단지 자신의 나태함 때문에, 더 놀고 싶어서 1주일 강의 전부를 지운 후 다시 시간표를 짜 그 주 강의를 전부 결석했고. 그 다음 주에 출석하여 교수님에게

"수강 정정하여 이번 주가 첫 출석입니다."

라 말한 것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나쁜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아 후일담을 적는다. 이렇게 2주 강의를 빠진 종영은 2주간의 강의 진도를 빼먹은 것은 물론이고, 팀플이 포함된 강의는 전부 팀을 구하지 못해 개인으로 과제를 하게 되었다. 첫 2주간 잘못 들인 버릇으로 인해 한 학기 내내 자신이 자고 싶으면 배 째라는 식으로 강의를 빠졌다. 중간고사 때 까지는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출석한 날이 결석한 날보다 많았지만 중간고사가 끝나고 각종 축제에 생활 패턴이 완전히 망가진 그는 학기 말이 되자 거의 모든 강의가 결석으로 인해 F 학점 예정이었고. 기말고사 때는 아예 그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 학기 400만원 등록금을 하늘에다 날린 셈이다.

 

한 학기동안 들인 버릇은 2학기 때도 쉽사리 버릴 수 없어서. 그는 1,2학기 연속으로 학사경고를 받았고 학점 부족으로 진학마저 못 하였다. 다른 동기들 모두가 2학년이 되었는데, 혼자 1학년이라니, 상상 할 수 있는가? 지금은 군대에 있는 종영은 제대 하고 나면 신입생들과 함께 1학년 세미나를 들어야 하고, 정상적으로 강의를 들은 친구들은 졸업할 때 3학년으로 그들을 보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결석을 위한 수강정정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게 비극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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