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반년이 지났다. 대학의 교수와 교직원이 법의 적용 대상으로 포함되면서 그동안 대학가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시행 직후에는 학생에게 캔커피를 받은 교수가 첫번째 신고 대상이 됐고, 최근에는 퇴직교수에 선물을 준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적발됐다.
청탁금지법에 대한 캠퍼스 구성원들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 전문가들은 법의 취지를 존중하되, 시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을 상식의 관점에서 보완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불필요한 관행 사라져
긍정적인 평가는 대학 내 남아있던 불필요한 관행이 없어졌다는 점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학생들은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교수에 성적 변경을 요구하는 일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변화로 꼽는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학생이 교수에게 성적 정정을 요구하는 행위는 부정청탁에 해당된다. 장재형(문과대 사회13) 씨는 “법이 제정된 이후 교수님이 학기를 시작할 때부터 정정 요청을 자제해달라고 이야기하셨다”며 “학교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사제 간의 정이 오히려 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관점도 있다. 김태건(생명대 생명공학11) 씨는 “예를 표하기 위해 사제 간 간소한 선물이 오고 갔던 경우가 있어 법 시행 후 혼란스러웠지만, 걱정과 달리 어느 교수님을 찾아뵙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라며 “사제관계가 물질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논문심사 과정에서 그동안 있어왔던 식사 대접이나 선물 제공의 관행이 금지되면서 음지에서 행해지던 보상 체계가 공개적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긍정적인 예다. 각 학교는 논문 심사비를 인상하거나, 교수에게 충분한 교통비를 제공하는 등 나름의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태훈(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접대를 받는 심사자도, 재원을 마련해야하는 작성자도 부담이었기 때문에 이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사제관계가 단순화시키기도
법이 시행되며 아무리 작은 선물일지라도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금지돼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건조해지고 있다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강민혁(자전 미디어16) 씨는 “법이 정말로 잡아야 하는 대상들은 뒤에서 여전히 금품을 주고받고 있을 것”이라며 “일반인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초등학교 은사를 방문하기 전부터 고민을 거듭했다는 이지훈(경영대 경영13) 씨는 “어릴 때부터 감사의 마음을 작은 선물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했는데, 이를 악용하는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다수의 선의가 매도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엄격해진 분위기로 인해 밥이나 커피를 사주는 행위가 강의 평가를 좋게 받기 위한 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어 학생들을 좀 더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입장이다. 김철규(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투명도를 높이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다른 공직 사회와 달리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지식 교류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을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관계”라며 “청탁금지법은 이 복합적인 관계를 단순히 학점과 지식을 교환하는 기능적 관계로 단순화시킨다”고 말했다.
상식적인 법 해석 필요해
전문가들은 사회에 만연한 청탁 관행을 없애고자 하는 법의 취지가 시행과정에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음료수나 카네이션 등 사소한 것까지 규제하는 법의 기계적·형식적 해석이 법을 희화화하고, 이는 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확대시켜 그 취지가 가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준일(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을 주는 것까지 법에 위반되는지 따지고 있는데, 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애매모호한 경우들을 이유로 법을 희화화해 긍정적 의미를 왜곡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며 “법의 해석이 통상적인 사회상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을 법으로 개선한다는 취지는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존 관행을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고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법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하태훈 교수는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의 발표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제정 이후 법인카드로 하는 접대가 28% 줄어들었다”며 “수치상으로는 부패가 점점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하 교수는 “일각에서는 청탁금지법이 모호하다고 말하지만 선물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왜 이것을 주었는지’에 대한 의도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개인의 양심까지 법으로 규정한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 문제를 개인의 양심이나 조직의 자율적인 정화와 노력에 맡기기에는 우리 사회의 접대문화가 너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구보민, 김용준 기자 press@kunews.ac.kr936 4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