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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호] 2010년 05월 24일 (월) 04:03:37 이범종 기자joker@kukey.com









   
사진 | 이범종 기자

조치원 서창리의 첫 삽부터 약학대학 설립까지 격정의 세월을 겪은 세종캠퍼스가 서른이 되었다. 고대신문이 세종캠퍼스의 지나간 30년사를 정리했다.

급조된 '미국식 분교'
정부의 수도권 인구분산 정책과 맞물려 본교는 1979년 9월 19일자 문교부 승인으로 1980년 3개 학부, 8개 과에 조치원분교 신입생 400명을 선발했다. 그러나 캠퍼스 설치보다 신입생이 먼저 선발돼 80학번 학생들은 1년 동안 안암에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1980년 7월 조치원분교 기공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당시 김상협 총장은 “안암의 언덕에 쌓아올린 공든 탑을 바로 이곳 서창의 언덕에 쌓아올려 마음의 고향을 하나 더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본교는 조치원분교를 UCLA와 같은 미국식 분교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 1980년 조치원분교 기공식

장화신은 호랑이
서창의 언덕에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학생들의 불만도 함께 쌓였다. 서창 지역 일대는 진흙바닥이었다. 어느 81학번 학생은 “콘셋건물(임시 가건물)이었던 학교를 바라보며 비 오는 날이면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질퍽한 등굣길을 거친 숨소리를 내어가며 걷곤 했다”(1993년 3월 15일 고대신문)고 말했다. 조치원분교 학생들은 “각오는 했으나 하루 4시간 이상을 등‧하교에 허비하다보면 교통편이나 기숙사 시설에 무관심한 학교가 원망스럽다”며 “교수부족과 시설미비로 기대했던 명문대의 교육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1981년 4월 3일 경향신문)









   
▲ 1981년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 1981년 캠퍼스에 강의실이 부족해 인근 고등학교를 빌려 입학시험을 치렀다

‘닭장’에 갇힌 호랑이
1981년 10월 20일 문교부 승인으로 조치원분교가 문리경상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이로써 조치원캠퍼스는 단순한 ‘분교’에서 본교 11개 단과대 중 2개의 대학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설립한 지 3년이 지나도록 기숙사 한 채 지어지지 않았다. “일명 ‘닭장맨션’이라 불리는 이곳은 1개 건물에 15개 이상의 방이 만들어져 50여명 이상이 집단 거주를 하고 있는데 수도․목욕탕 등 위생시설은 매우 부실한 실정”이었다.(1983년 4월 5일 고대신문) ‘닭장맨션’은 1990년대 후반까지 서창리와 신안리 일대에 있었으나 학교에서 땅을 매입하며 사라졌다.









   
▲ 1983년 4월 5일자 <고대신문>'조치원 캠퍼스 아직도 울타리 밖인가' 기사. '닭장맨션'은 문리경상대학의 열악한 환경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서창골 레퀴엠
캠퍼스를 세운지 4년이 되도록 환경이 개선되지 않자 1984년 4월 30일 학생 500명이 시위를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엔 교내에서 무덤을 파는 시위가 일어났다. 1988년 11월 11일 학생들은 “학교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재단과 총장에 대한 응징으로 무능재단과 어용총장에 대한 묘 자리를 마련 한다”며 행정동 앞에 묘 자리를 마련했다.(1988년 11월 21일 고대신문) 다음날 학교가 묘 자리를 매립하자 학생들이 부총장실의 집기들을 행정동 앞으로 끌어냈다. 13일엔 ‘어용총장의 장례식’을 치르고 봉분을 완성한 뒤 캠퍼스 발전 요구사항에 학교의 답변을 요구했다. 그러나 학교는 이를 무시했고 학생들은 행정동 앞에 끌어낸 부총장집기를 불태웠다.
이듬해인 1989년 3월 27일 학생 500명은 본관 철야농성과 이사장 집 방문 투쟁을 하며 중복·유사학과의 통폐합을 주장했다. 이후 학교와의 면담이 결렬되자 항의의 뜻으로 총장실 집기를 본관 앞으로 들어냈으며 총장실 문을 폐쇄한 후 서창으로 돌아갔다. 김재욱 서창 복학생협의회 회장은 1989년 6월 5일자 <고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경투쟁에 가마솥, 찜통, 솥단지까지 들고 올라왔을 때는 이번만큼은 결코 물러 설 수 없다는 의지, 지금 나서지 않으면 서창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는 비장한 사명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 1984년 5월의 문리경상대학. 황량하기 그지없는 캠퍼스에 학생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1989년 3월 14일에 열린 '비상총회'








   
▲ 1989년 2월 22일, 본교는 서창캠퍼스 최초의 기숙사 '자유관'을 세웠다. 캠퍼스를 세운지 9년만이었다.








   
▲ 세종캠퍼스 도서관인 '학술정보원'은 캠퍼스를 세운지 10년이 되어서야 지어졌다.

인촌동상에 걸린 밧줄
1989년 5월 9일 1000여 명의 학생이 단과대 발전과 총장퇴진을 요구하며 본관을 점거했다. 학생 대표들은 총장과 처장단과의 면담을 위해 대학원장실에서 학교 측 대표를 기다렸다.그러나 학교 측은 불참했고 학생들은 인촌 동상에 밧줄을 동여맸다. “빈약한 학교 시설, 공사 중인 도서관, 밤만 되면 인적이 끊기는 유령 캠퍼스, 돼지우리 하숙방으로 대변되는 89년 서창캠퍼스는 등록금 많이 빼먹기 위한 대학 측 장사판의 극악한 무대였고 그 장사판의 졸 취급을 받던 학생들의 심사가 폭발했다.”(김형민 , <썸데이 서울>, 2003)









   
▲ 1989년 5월, 교육환경 개선에 늘 뒷전으로 밀려난 서창캠퍼스 학생들은 분교정책 시정을 요구하며 인촌 동상의 목에 밧줄을 걸고 그 앞에 무덤을 팠다.
사진 | (MBC <PD수첩> , 2005년 4월 5일)








   
▲ 1980~90년대는 분교가 아닌 특성화된 단과대로써의 발전과 열악한 환경 개선을 위한 학생들의 투쟁이 잦았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학생이 들고있는 피켓에 쓰인 '서창 발전 마스터플랜은 상상화인가'가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1990년대 본격적인 시설 확보
시위는 1990년대에도 이어졌다. 1994년 5월 31일 자연과학대학 환경공학과 학생들은 2박3일간 서창 부총장실 점거농성을 벌였다. 환경공학관련 유사·중복학과 설치반대와 구체적인 서창발전계획의 수립이 농성 목적이었다. 1994년 6월 7일 <고대신문>은 “서창캠퍼스 설립초기부터 계속된 학생과 학교와의 대립, 건물하나 지으려면 학교 전체가 떠들썩하도록 시위를 해야 한다는 통념과 서로간의 불신이 팽배해 있었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서창캠퍼스는 창설 17년 만인 1997년 캠퍼스 주변 길포장 공사, 도서관 진입로 콘크리트 포장을 했다. 학생회관 준공은 1998년 7월 24일에 했다. 학교가 1987년 착공하겠다고 약속한지 10년 뒤의 일이다.









   
▲ 1995년 3월 29일 서창캠퍼스 교문 준공식. 이 문은 원래 안암캠퍼스의 정문이었다.

성장 끝 도약 시작
2000년대부터 서창은 온전한 캠퍼스의 모습을 갖추며 새로운 이름과 비전을 알리기 시작한다. 본교가 100주년을 맞은 2005년 5월, 서창캠퍼스 최초 고려대양식 석조건물인 농심국제관이 준공됐다. 현재 농심국제관을 대부분의 교양수업과 외국어 수업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서창을 중심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와 오송·오창 과학 단지 및 KTX 고속철도역인 오송역이 건설되면서 서창의 발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본교는 2006년 4월 19일 농심국제관에서 서창을 하버드, 코넬대와 같은 최고의 기숙 캠퍼스로 만들겠다는 내용의 ‘VISION 2010+’를 선포했다.
같은 해 학과 통폐합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으나 자금 부족 때문에 문예창작학과를 미디어문예창작학과로 개명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학생들의 시위로만 머물렀던 유사·중복학과 문제가 2000년대엔 학교차원의 논의로 전환됐다. 2007년 5월 서창캠퍼스가 한국철도대학 인수 1순위 대학으로 선정돼 학과 특성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으나 두 달 만에 결국 인수협상이 결렬됐다. 본교의 엄격한 교수조건에 철도대 교수들이 소극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같은 해 11월 서창캠퍼스와 한국토지공사, 행정도시건설청이 행정중심복합도시 입주와 관련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 본교는 2005년 5월 25일 '농심국제관'을 준공했다. 이날 노벨상 수상자 칼 위먼의 강연이 열렸다. 농심국제관은 세종캠퍼스 최초의 고려대 양식 석조건물이다.

세상의 종심에 서다
2008년 3월 11일 ‘VISION 2010+’의 일환으로 캠퍼스 명칭이 세종캠퍼스로 바뀌었다. 세종캠퍼스는 조치원 캠퍼스와 행정도시캠퍼스, 오송의생명공학원을 아우르는 통합명칭이다. 선포식에서 당시 현승종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은 “세종(世宗)은 세상(世上)의 종심(宗心)이라는 뜻”이라며 “세종캠퍼스가 세상의 종심에서 고대 발전을 이끌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 본교는 호연학사 4관을 2009년 2월에 준공했다. 세종캠퍼스는 하버드, 코넬대 같은 명문 기숙형 캠퍼스를 목표로 발전하고 있다

숙원사업의 해결
2010년 본교는 약학대학 유치에 성공해 2011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한다. 지난 2월엔 세종의 두 번째 고려대 양식 석조건물인 석원경상관을 준공했으며 올해부터 외국인 학부 신입생 선발을 시작한다. 30년 숙원사업인 신봉초등학교 부지 매입도 올해 이뤄졌다. 1979년 조치원 캠퍼스 조감도에 따르면 현재의 교문은 원래 신봉초 쪽에 세웠어야 했으나 그간 부지 매입을 하지 못해 초기 캠퍼스 조감도 상 후문의 위치에 세웠다.









   
▲ 2010년 2월 22일 준공한 석원경상관. 세종캠퍼스에서 두번째 고려대양식 석조건물이자 최초의 석조 단과대 건물이다.

청년고대 이립(而立)에 들다
세종캠퍼스 창설 30주년 기념식이 27일 열린다. 세종캠퍼스는 2000년대 중반에야 온전한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행정중심복합도시와 새로운 비전, 쾌적한 교육환경으로 이립을 당당하게 맞이했다. 기숙사가 없어 ‘닭장맨션’에서 살던 세월은 어느새 네 개의 기숙사 시설로 흘러왔다. 80년대 선배들이 목 놓아 외치던 1단대 1건물을 넘어 이제는 웅장한 고려대 양식 석조건물이 두 채 생겨났다. 하지만 학생들의 자치활동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며 초창기 캠퍼스를 세운 취지와 맞지 않는 캠퍼스 간 소속변경제도와 가파른 입시점수 상승 사이의 관계, 여전히 남아있는 유사학과 통폐합 필요성 논란은 앞으로 청년 고대 세종캠퍼스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사진 제공 | 세종 기록정보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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