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기, 내일 한강에 투신하겠습니다.’
7월 25일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는 투신을 예고하는 글을 남성연대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남성연대에 대한 시민의 후원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남성연대는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투신의 진위에 대한 논란도 잠시, 성 대표는 7월 26일 마포대교에서 투신했고 29일 주검으로 발견됐다.
성 대표의 발언과 남성연대의 활동으로 주목받았던 남성운동은 성 대표의 사망을 계기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남성운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리 사회에 아직까진 부족한 실정이다.
남녀 모두 억압한 가부장제
남성학은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다. 故 정채기(강원관광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94년 건국대에서 개최한 남성학 특강을 시작으로 미국과 일본의 관련서적을 번역해 출간하며 국내에 남성학을 소개했다. 1997년 출간된 <남성학 입문>의 역자 머리말에서 정채기 교수는 “여성운동이 성과를 이루는 과정에서 남성들의 문제가 야기돼 1990년대에 ‘남성 문제시대’가 도래했다”며 “남성문제의 해결을 위해 남성학과 남성운동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남성학을 이념적 배경으로 하는 남성운동 역시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1991)’, ‘한국 아버지 모임 전국연합(1997)’, ‘딸사랑 아버지 모임(2001)’ 등 40~50대 중년 남성을 중심으로 남성운동이 전개됐다. 이의수 남성사회문화연구소장은 “여성의 사회 참여를 제한한 기존 가부장제는 남성에게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부여했다”며 “초기 남성운동이 ‘아버지운동’의 형태로 나타난 이유”라고 설명했다.
남성연대만 남성운동이 아니다
여성운동처럼 남성운동에도 갈래가 있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남성운동이나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남성운동과 달리 한국의 남성운동은 기존의 남성상과 여성상에 대한 시각을 기준으로 보수주의적 관점과 친(親)여권론적 관점으로 나뉜다. 보수주의적 남성운동은 남녀의 전통적 역할을 사회‧과학적으로 당연하게 여기지만, 친여권론적 남성운동은 이를 파기하고 남성다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운동 내의 입장 차이는 2005년 호주제 폐지 때 드러났다. 보수주의적 성향의 ‘한국성씨총연합회’가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며 기자회견과 삭발식을 가진 반면, 딸사랑 아버지 모임 등 친여권론적 남성운동단체들은 호주제가 남아선호사상을 조장했다며 호주제 폐지에 찬성했다.
남성운동의 다양성과 무관하게 현재 대중에게 남성운동은 ‘성재기와 남성연대’로 인식됐다. 이 때문에 남성운동은 무조건적으로 페미니즘에 반대하고 남녀 간 갈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남성연대를 보수주의적 남성운동 단체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의수 소장은 “남성연대가 주장했던 남성운동은 남성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여성연구소 허민숙 연구원은 “전통적 고정관념에 기초한 남성연대의 주장은 모든 남성의 의견을 대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대별 지지 양상의 차이
남성운동은 세대별로 지지 양상이 다르다. 20대와 3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에선 보수주의적 남성운동에 대한 지지가 높다. 20~30대 남성만이 겪는 ‘군대’와 ‘취업’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이유다. 군대로 인한 공백을 부당하게 느끼고 여성과 경쟁하는 취업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인식이 있다. 임인숙(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보다 나은 능력을 지닌 여성이 자신의 일자리를 뺏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40대 이상의 남성은 친여권론적 남성운동에 관심을 갖는다. 사회가 남성에게 상반되는 두 역할 모두를 강요하지 말고 개인이 적성에 맞는 역할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주장이다. 이는 생계를 부담하는 가장의 역할과 시간이 흐르면서 대두한 자녀양육의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은 중년 세대가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중년 남성의 높은 자살률은 동일한 연배의 여성에 비해 훨씬 높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 50대 남성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61.5명으로 50대 여성 자살자 수 20.7명에 비해 세 배에 달한다.
이의수 소장은 “가부장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보수주의적 남성운동은 오히려 여성차별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며 “남성성과 여성성 모두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친여권론적 남성운동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대립 대신 젠더학으로
전문가들은 남성학과 남성운동이 극단적인 반페미니즘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한다. 임인숙 교수는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소외받은 남성들만의 운동이어선 안 된다”며 “인권운동을 하기 위해선 사회구조적으로 남성이 부당하게 억압받았다는 전제가 확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전체가 느꼈던 사회적 압박이 남성운동에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수 소장은 “반페미니즘엔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함께 바라보는 통합적인 관점이 결여돼 있다”며 “남성운동이 반페미니즘으로 흐른다면 남성운동의 진정한 필요성이 오히려 가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남성운동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엔 여권이 충분히 신장되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강이수(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해결되지 못한 여성인권 문제가 남성운동에 덮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학과 여성학의 지향점으론 ‘젠더학’이 주목받는다. 새로운 남성상을 요구한 여성학에서 남성학이 출발했듯 두 성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문제와 여성문제가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하다. 허민숙 연구원은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경직된 사고를 하게 만드는 낡은 구조를 젠더학을 통해 바꿔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글| 조해영 기자 hae@kukey.com
사진| 송민지 기자 ssong@kukey.com
기사원문 고대신문 1730호(9월 9일자)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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