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 평범함과 특이함의 기준이 어떤건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요.
저도 그부분에 대해서 어떤게 나은지 궁금했는데요.
시간이 흘러 결론을 내보니 "나답게 사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범함과 특이함은 타인을 대상으로 기준을 삼는 반면,
나답게 사는건 나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되고 나를 잘 알아야 되는데 말처럼 그게 쉽지가 않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저 또한 정말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걸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계속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 탐구의 끝이 언제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인생을 열심히 살고, 여러가지를 경험해봐야 될 이유 한가지는 생긴 것 같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알고 있는 후배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돈받고 하는 과외나 이런거 아니었고 오히려 제돈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나이또래 사람들 또는 어른들은 그걸 가리켜 쓸데없는 일한다,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고
제가 부족한 나머지 도와준 후배들한테도 그다지 좋은 소리를 못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이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글쎄요, 제가 정말 특이한걸까요?
전 그냥 "나다운 일"이 뭘까 생각하다 그런걸 실천하게 된건데, 그게 그렇게 특이하게 보일런지요?^^
그냥 저는 큰뜻은 없지만 이말 한가지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빨리 가는 자는 혼자 가고 멀리 가는 자는 함께 간다"
인생 저 혼자 빨리갈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돕는 제가 좀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요새 제가 주목하고 있는 분중의 한분인 표철민님의 블로그글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대의 분이라서 그런지 여러가지 관점에서 저와 비슷한 부분이 많으시고
또한 생판 얼굴도 보지못한 후배들에 대한 감정이나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저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타인을 의식하는 것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열심히 추구하다보니 특이하게 사는것처럼 보이는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p.s 그동안 '심플보이'라는 닉네임으로 잠깐이나마 편하게 활동을 한 경영정보학과 00학번 졸업생 표순권입니다.
그냥 익명닉네임으로 편하게 계속 남들 모르게 활동을 할까하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네요.
제가 이렇게 글을 남긴 사항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미 부여하지 않으셔도 좋고,
그냥 제가 원해서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괜찮다 생각하고 한 활동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앞으로도 건강하시구요.
저보다 더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졸업생 선배나 후배들이 쿠플존에 들러서 많은 이야기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여기 계신 분들이 몇년후에 저보다 더 좋은 이야기를 남겨줄 수 있는 멋진 선배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건승하시길!
출처 - http://mrpyo.com/135 (본문내용이 길어 중간중간 발췌한 글만 올려드립니다. 전문을 보고 싶으시면 링크를 타고 열람하시길..)
제가 올해로 12년 차에 접어들면서 깨닫는 것은 무슨 일이든 항상 적극적으로 벌리고 있지 않으면 기회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기회의 진주들을 내가 걷는 길에 열심히 뿌리고 다녀야 언젠가 그 진주 중 일부가 다시 돌아와 우리에게 더 큰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지금 '그게 되겠어?', '너무 튀지는 않을까?'하는 소극적인 생각에 움추리고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뿌리고 다니지 않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제 두 회사가 새로운 꿈을 꾸며 안정 궤도에 들어선 지금이 다시 진주를 뿌리기 시작할 때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요즘의 대학생과 20대에게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뛰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경쟁이 없는 길로 가야만 내가 조금만 뛰어도 나밖에 안보이기 때문에 내 노력이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다는 관점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나만의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그리고 평범하게 대학생이 된 그들이 날카로운 촉을 기르며 살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에 집중해야할지를 나름의 체계와 순서를 가지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삶에 체계와 순서라는 것이 있을리 만무하지마는 저는 본격적으로 '자기 계발을 하지 않기 위한 자기 계발서'가 하나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이 책을 썼습니다. 서가에 모든 책들이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직장, 공동체로부터 인정받는 이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왜'에 대한 답으로, 성공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고픈 사람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내가 만나고픈 사람을 언제든 만나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만나고 싶을 이유를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자신만의 전문분야라고 말입니다. 자신만의 전문분야는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직장인들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고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에서는 이글루스에서 활동하는 블로거 '채다인'님이 삼각김밥 리뷰를 쓰며 유명해진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가 처음 한 두 개의 리뷰를 올릴 때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 리뷰가 100개, 200개를 넘어가며 이제는 어엿한 '편의점 음식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주변에 널린 소재를 가지고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으며 설사 그 소재를 아직 제대로 찾지 못한 평범한 학생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관찰과 통찰을 통해 자신만의 촉을 기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정성을 다해 담았지만 이것이 100% 이해가 되기는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는 성공과 행복으로 이르는 길이 반드시 모두가 뛰는 판에서 끝내 1등을 하는 '마라토너'와 같은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낮에 나무 밑둥에 누워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이나 목욕을 즐기다 부력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와 같이 '여유 안에서 색다른 것을 발견하는' 삶도 있다는 것을 우리 젊은 세대가 인지하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흔히 이야기하는 'No pain, no gain'이라는 말 역시 우리 젊은 세대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대단히 짓밟는 명제일 수 있습니다. 고통이 있어야 더 많이 얻는다니 이만큼 획일적인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기왕이면 과정에 고통이 적다면, 더 많이 얻으리라는 'Less pain, more gain'(연세대 김주환 교수님 <행복론> 강의에서 인용)의 삶도 있다는 것을 우리 젊은 세대는 이해하고 부디 다르게 생각하는 눈을 떴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분명 외로움이 따른다는 숙명적 고통이 있겠지만, 그 고통은 다른 또래들이 겪지 못하는 나만의 고통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큰 축복입니다. 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또래집단의 동등한 경쟁과 고민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노력이 바로 눈에 띄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더 행복하고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삶이라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요즘 오랜만에 다시 강연을 시작하고 젊은이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은 그들 모두가 다른 길을 열망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자극해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내가 다니는 토익 학원이 다른 삶을 살고픈 다른 친구를 토익 학원으로 보내고, 다시 그 친구가 학원을 가는 활동이 나를 자극해 나 역시 계속 학원을 다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현실인가요?
사실 저는 어려서부터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 일면식도 없는 분들에게 많은 욕을 먹으며 살아 왔습니다. '어린 애가 나댄다'부터 '빈 수레가 요란하다' 류의 이야기인데 이런 말들이 어려서부터 정말 많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제가 원해서 '나대'거나 '요란'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남들의 요청에 응하며 살아온 것인데 그런 비난을 받게되는 것이 몹시 억울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위자드웍스를 시작하고는 최대한 일과 관련된 컨퍼런스나 세미나를 중심으로 활동하기도 했지요. 작년 7월에 '이제 같은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다'는 글을 올린 것 역시 그런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편집장님의 이야기로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소수의 사람들이 온갖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 두려워 진짜로 이야기가 필요한 수많은 후배들에게 해줘야 할 메시지까지 일부러 죽이고 숨기는 것은 십여년간 선배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독차지하며 살아온 후배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란 생각 또한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선배들이 산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서,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제가 책을 낸다는 것이 참 남사스럽고 앞서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있지만, 적어도 감히 제가 논할 수 없는 사업 성공기나 창업론 같은 책이 아니라 후배 학생들을 위한 '다른 삶 지침서'정도라면 선배님들께서 이해해 주시기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글을 자주 쓰겠습니다. 진주를 뿌려야지요. 몇달 간 제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니 깨달음이 또 하나 있습니다. 내가 '꽁' 박혀 내 일 하는거나, 밖에 나가 사람 만나는거나 성과를 놓고 보면 비슷비슷합니다. 혼자 고민하면 도와주는 이가 없어 더 힘이 들기 때문에 절대적 시간이 많아도 결과가 대단히 월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래 하던 것처럼 사람 만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요즘 생각, 고민 들려주다 보면 그들이 하나 둘 다가와 도와주기 때문에 절대적 시간이 좀 적어도 성과의 총량은 비슷합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daero_/150103692647
퇴근길 전철 안, 연신 하품을 하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이놈의 책, 서툰 번역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설핏 드는 딴 생각 탓에 도리질을 칠 정도였습니다. 아프리카 기아 현장을 소개하는 의미 있는 책인데 서툰 번역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환승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책을 덮으려던 순간,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책 속 등장인물의 말이 두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엔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란 말이 있지요." 이 문장을 읽는 데 정신을 팔았다가 자칫하면 역에서 내리지 못할 뻔 했습니다. 가까스로 출입문을 통과한 후 걸음을 옮기며 방금 접한 속담의 의미를 곱씹었습니다. 궁리할수록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잠언(箴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라,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항상 윤리규범을 지키며 살라,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협동하며 살라 등등 학교나 절, 성당, 교회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들이 차례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속담이 뭔가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조상들의 말 중에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말들은 하나같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도 적용되는 것들입니다. 현재에 쓸모가 없다면 제아무리 금과옥조라도 창고 속으로 들어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마는 법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분석을 시작했습니다.
'이 속담의 전제는 등장인물들이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등장인물은 단수가 아닌 복수다. 나아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방법은 혼자서 가는 것과 여럿이 함께 가는 것 모두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혼자 가는 것과 함께 가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혼자 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의지와 방식으로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의미다. 함께 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한 뒤 다수가 수긍할 만한 방식을 택해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뜻이다.'
속담의 의미가 조금씩 드러나는 듯 했습니다.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저만치 앞서가는 생각을 뒤따라갔습니다.
'그럼 이제 목적지를 향해 출발해보자. 혼자 가는 인물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므로 훨씬 빨리 갈 수 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아도 되므로 의사소통에 필요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자신이 먼저 가버리면 다른 사람들은 내 방식을 따라 뒤쫓아 올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곧 지친다. 자신의 방식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조언을 해줄 사람은 곁에 아무도 없다. 의문이 커질수록 불안감은 커지고 불안감이 증폭될수록 목적지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는 약해진다. 의지를 잃은 인물은 방향을 잃고 헤맨다. 결국 쓰러진다.
반면 함께 가는 인물들은 다르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움직여야하므로 출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길을 가는 도중에도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토론을 하고 합의를 하는 데 애를 먹는다. 구성원 간 갈등이 발생하면 많은 심리적·물리적 비용을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출발지에서 멀어질수록 인물들은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다. 이들은 이미 한배를 탔고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먼 길을 와버린 상태다. 서로의 존재 자체로 힘을 얻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 느리지만 이들은 목적지를 향해 지그재그로 걸어간다.'
분석을 해보니 앞서 소개한 아프리카 속담의 뜻은 대충 이정도 될 것 같았습니다. 생각을 정리하자 속담이 인간집단의 속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소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혼자 가는 사람이 뛰어난 능력과 추진력을 지닌 리더라면 함께 가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 쯤 되겠습니다. 그리고 혼자 가는 사람이 이끄는 상황은 1인 지배체제, 함께 가는 사람들의 상황은 다수 지배체제를 연상케 했습니다.
이쯤 되자 이 속담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폴리비오스 등 그리스 철학자들이 소개했던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와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 세상에 나타난 정치체제를 왕정과 귀족정, 민주정으로 나눈 바 있습니다. 왕정은 1인 지배체제, 귀족정은 과두 지배체제, 민주정은 다수 지배체제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속담 속 혼자 가는 사람은 왕에, 함께 가는 사람들은 시민에 해당됩니다. 요컨대 왕정을 이끄는 왕과 속담 속 혼자 가는 사람은 빨리 갈 순 있되 멀리 갈 순 없습니다. 앞서 분석했듯 출발할 때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출발지에서 멀어질수록 동력이 약해집니다. 확신이 사라지고 불안감이 커지고 외로워집니다. 반대로 시민들과 속담 속 함께 가는 사람들은 느린 속도겠지만 훨씬 멀리 갈 수 있습니다. 갈등 속에서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애초에 목표로 했던 바를 향해 지그재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론에 도달하자 아프리카 속담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속담 속 일들이 실제로 최근에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인권 탄압과 궁핍한 생활에 분기탱천한 아프리카인들이 연이어 봉기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서 발발한 시민 봉기는 주변국인 이집트와 리비아를 비롯해 전 아랍권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1인 지배 내지 과두 지배체제를 고수하던 각국 지도자들은 당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집트 국민들을 30년간 억압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정권을 내주고 쫓겨났으며 42년간 리비아 국민들 위에 군림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최고 지도자는 국민들에게 총칼을 휘두르며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무바라크와 카다피는 모두 속담 속 '혼자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아가 선진국을 구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시간이 흐르자 확신을 잃고 불안해했으며 결국 방향감각을 잃은 채 방종으로 치달았습니다.
이제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는 속담의 위력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아프리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구상 모든 인간집단이 이 속담에 귀기울여야합니다. 리더십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온갖 탄압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가 지금 매일 저녁 텔레비전 톱뉴스를 통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제 결정할 때가 됐습니다. 빨리 갈지 멀리 갈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