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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병역거부자들의 진지한 양심을 헌법적 가치로 보호해야 한다고 확인해 주십시오.”(청구인 측 오두진 변호사)

“위헌 결정이라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의 방법보다 입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국방부 측 서규영 변호사)

 

헌법재판소가 지난 10년간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조항의 위헌 여부를 숙고하는 동안 국회는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법안을 논의해왔다. 17대부터 18대까지 4개의 법안은 폐기됐고 19대 국회에서는 1개의 법안이 국방위원회에 묶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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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김예진 전문기자

그 사이 많은 청년들은 감옥에 갔다. 양심과 소신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이 2만여 명에 달하는 지금, 그들은 여전히 교도소의 안에서도 밖에서도 저마다의 ‘감옥’을 마주하고 있다.

 

일관된 양심, 여전한 처벌

병역거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의 ‘육군특별지원병령’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38명을 체포한 1939년의 기록은 최초의 공식적 병역거부 기록이다. 한국전쟁 시기에서도 남북한 양쪽 모두에서 병역거부자를 처벌한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이 광범위하게 진행된 것은 군부독재가 이뤄진 1970년대부터다. 이 시기에는 5명의 병역거부자가 고문과 구타로 사망하는 등 이전과 달리 극심한 탄압도 이어졌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8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은 1973년 ‘병역법 위반 등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발표하고, 입영률 100% 달성을 목표로 병역거부자 강제입영 조치는 물론 형 만기출소 병역거부자 재징집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50년부터 1972년까지 636건이었던 병역거부자 형사처벌 수는 1973년부터 1993년 사이 4071건으로 크게 늘었다.

평화주의·반군사주의자 네트워크 ‘전쟁없는세상’의 여옥 씨는 “군사정권 이후 군 관련 영역을 신성화하는 풍토 때문에 병역거부자와 병역기피자를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병역거부자는 전염성이 높은 질병 환자를 간호하거나 기피업무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병역에 합당한 정도의 책임을 지려 한다는 점에서 병역기피자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예외 없이 처벌하는 군부의 잔재는 2000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2001년 평화주의자로서 병역을 거부했던 오태양 씨 이후 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아니지만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이 100여 명에 달한다.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여호와의 증인) 법률홍보부 김동인 씨는 “갖은 고문을 당했던 일제강점기부터 감옥에 가는 현재까지, 처벌의 수위와 관계없이 양심에 따라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신념은 동일했다”며 “하루빨리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이 일관되고 진정한 것으로 인정받아 합리적인 대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상황에 우려 표하는 국제사회

매해 600여 명이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되는 한국의 현 상황은 국제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국제앰네스티 최하늬 씨는 징집제를 시행중인 70여개국은 물론 교전이 빈번히 일어나는 발칸 지역에서도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가 인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 한국의 이런 상황을 소개하면 ‘북한의 사례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라며 “프랑스와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는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난민으로 받아들일 만큼 병역거부자 처벌에 대한 국제적 우려는 심각한 상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제앰네스티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5월 기준 전 세계에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된 사람 10명 중 9명 이상이 한국인이다.

UN인권이사회 산하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기반으로 개인이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권리가 나온다고 해석하고 있다. 한국의 헌법은 제6조 1항에서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두진 변호사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총 5차례에 걸쳐 한국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군 복무나 수감 이외의 대안을 제공하라고 권고했다”며 “유럽인권재판소 판결 등 국제적 법리해석은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인정하는 쪽으로 명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급기야 2014년 한국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 ‘자의적 구금’이라는 해석까지 도출했다. 자의적 구금이란 국가기관이 불공정하고 예측 가능성 없이 자의적으로 개인을 체포하거나 억류하는 것을 뜻한다. 통상적으로는 북한 등 이른바 ‘인권후진국’의 인권상황을 지적할 때 사용되는 용어다.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결정문에서 “살상무기의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어 자유권규약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도출된다”며 “한국 정부는 향후 자유권규약 위반을 회피할 의무가 있으며,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법률 제정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국방부 “충분한 검토 후 입법으로 해결해야”

2000년대 이후 병역거부자 처벌에 대한 국내외적인 공론화가 가속되자 군 당국은 대안 마련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처벌조항 자체를 위헌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는 국회 입법과정을 통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방부는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대체복무 허용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권이 바뀐 2008년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시기상조”라며 이를 백지화했다. 국방부는 그 근거로 병무청 연구용역으로 이뤄진 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대체복무 허용반대가 68.1%, 찬성이 28.9%였다고 밝혔다. 2015년 7월 공개변론에서도 국방부 측 서규영 변호사는 “지금껏 국제사회와 사법부의 지속적인 입법권고에도 아직 관련법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남북대치의 안보 상황에서 그만큼 이 사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어렵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대체복무 도입을 주장하는 측은 국방부가 근거로 내세우는 여론조사의 객관성을 지적하는 한편 소수의 문제를 단순히 다수의 논리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오두진 변호사는 “2008년 해당 여론조사의 경우 병역거부에 대한 정보제공 없이 단순히 대체복무를 찬성하느냐는 질문으로 구성돼 국정조사에서도 그 효용성을 질타받았다”며 “최근 한국갤럽 등에서 실시한 다수의 여론조사를 보면 대부분 응답자 과반이 대체복무 도입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 최하늬 씨는 “국회에서 이미 네 차례의 대체복무법안이 폐기된 것에서 알 수 있듯 다수의 논리가 작동하는 입법과정에서 소수자 인권보호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며 “결국 인권 수호의 역할을 부여받은 헌법재판소가 해당 처벌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려주길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복무, 건전한 등가성 확보가 관건

전문가들은 대체복무제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병역거부자를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성 논쟁에서 벗어나 대체복무제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영수(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체복무제 논의과정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대상은 입영대상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뢰폭발이나 천안함 폭침 등 목숨과 직결된 사건이 일어나는 군대의 특성상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그를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일어날 수 있다”며 “입영대상자들이 대체복무를 하는 것이 군대에 가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인식할 정도로 대체복무의 강도를 조절해야 이러한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교수는 이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체복무법안의 경우 근무내용과 같은 세부적인 내용을 명시하지 않는 등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보다 구체적인 법안을 기반으로 입영대상자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해 합리적인 등가성이 확보되는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군 인권개선을 통한 등가성 확보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최하늬 씨는 “시설 개선과 병영문화 혁신을 통해 군대 내부의 환경이 좋아진다면 대체복무의 기간과 강도 역시 낮아질 수 있다”며 “해외사례를 보더라도 대체복무 도입과 군 내부의 인권 신장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지향의 김수정 변호사는 입법 논의과정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UN은 대체복무자들이 병역에서 완전히 독립된 민간의 영역에서 근무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기간과 업무 강도 등에서도 징벌적 형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양심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현재 군이 목표로 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수호와 일맥상통하는 가치”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본인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사회의 안정에 기여하도록 국민의 이해와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conan@kukey.com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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