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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밤 9시, 대학로 후미진 골목에 있는 도어즈 LP바를 찾았다. 왠지 모를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는 뭉툭하고 튼튼해 보이는 나무문, 그 위에 살짝 먼지가 앉은 빨간 브로마이드가 무심히 걸려있다. 음산할 정도로 깜깜한 시야 너머로 노란 조명을 받아 빛나는 브로마이드. 그 안의 빨간 남성은 60년대 미국을 강타했던 록 그룹 ‘The doors’의 멤버 짐 모리슨이다. 그 록 그룹의 이름을 딴 도어즈 LP바의 문을 여니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 사진|서동재 기자 awe@

“열차 시간 다가올 때 두 손 잡던 뜨거움 기적 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바에 들어서자,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4개의 진공관 앰프를 통해 큼직하게 흘러나온다. 턴테이블에 LP판이 돌면서 긁히는 특유의 소리가 작은 공간을 풍성하게 꽉 채운다. 한쪽 벽 전체엔 수많은 LP판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빽빽이 꽂혀있다. 6개 남짓한 테이블 한쪽엔 친구로 보이는 젊은 남성 3명이 노래 가사를 안주 삼아 맥주를 들이켠다. 어두운 조명 아래 서로의 고민을 노랫소리에 따라 꺼내본다. “나도 모르겠다. 잊고 싶어 하면 바로 잊히는 거면 좋겠어. 근데 이게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그게 답답한 거지.” 짙은 한숨은 웅장한 사운드에 금세 모습을 감춰버린다. 무리 중 한 명이 일어나더니, 유경호(남·51) 사장에게 다가가 친구가 요청한 스틸하트의 ’She’s gone’을 신청한다. 유 사장은 8000여장의 앨범 가운데 능숙하게 한 장을 뽑아든다.

“She’s gone. out of my life” 노래가 절정에 달할수록 그들의 이야기는 더욱 무르익어 간다. 옆 벽면을 따라 많은 손님이 남기고 간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쪽지가 줄을 잇는다. ‘정현아! 힘내라! 세상에 여자 많다! 쫄지마!’, ‘누구나 한 번쯤 청춘을 망쳐야 한다. 청춘을 망치는 것은 쉽다. 시간은 빠른 속도로 상한다’. 이곳 LP바에서 누군가 꿈을 노래한 흔적도 보인다. ‘나는 영주예요. 재즈 보컬 될 거야! 낸중에 싸인 잘 간직해주세요’, ‘랜디 로즈의 Dee. 그의 연주를 듣자면 애틋하다. 촉촉하고, 저릿하다. 짭짤한 맥주 맛이 나잖아. 너를 생각하는 거와 같잖아’. 누군가에겐 사랑을 노래한 곳이기도 하다.

8,90년대에 성행하던 LP바에 지금은 이처럼 젊은이의 감성이 함께 녹아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 4명 중 1명은 20대다. 아담한 공간에 손님이 어느새 꽉 들어차는 바람에 성균관대 과잠을 입고 있던 학생 무리는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신은정(여·26) 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제가 신청한 곡이 빵빵한 사운드로 들릴 때의 기분이 너무 좋아요. 주위 사람들과 함께 같은 노래를 부르고 들으면서 서로 그 감성을 공감하는 것 같아요.” 때마침 그가 신청한 오아시스의 노래 ‘Don’t look back in anger’가 흘러나온다. “but don’t look back in anger, I heard you say” 가사를 따라 그를 비롯한 주위 사람이 함께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

다른 테이블엔 5,60대의 중년 3명과 2명의 대학생이 둘러앉았다. 테이블에 파진 세월의 흠집은 어느새 세대를 초월한 음악과 인생 이야기로 메워진다. 이곳에선 음악 하나로 옆 사람과 금방 친구가 된다. 혼자 온 단골손님 박용린(남·47) 씨는 익숙한 듯 김윤아의 ‘야상곡’을 신청한다. “야상곡의 배경은 늦봄이지만, 제가 느낄 때 이 곡은 늦가을같이 서슬 퍼렇고 쌀쌀해요.” 그는 이 곡을 들을 때면 사랑하던 옛 연인과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바람이 부는 것은 더운 내 맘 삭여주려 계절이 다 가도록 나는 애만 태우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선율과 가사에 마음을 맡긴 그의 표정은 구슬퍼진다. 추억에 잠긴 듯 고요해진 그의 얼굴에서 옛 연인을 사랑하던 모습이 보인다. “제가 엄청나게 존경하고 사랑했던 여자였어요. 그녀를 놓친 게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에요. 지금은 어디선가 잘살고 있겠죠.”

그런 그에게 유 사장이 친근하게 안부를 건넨다. 올해로 개업한지 20년이 되는 이곳엔 오래된 나무 바닥만큼이나 오래된 단골손님도 많다. 그는 손님의 신청곡만으로도 어떤 사연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전에 자주 오던 단골이 있어. 그 손님이 늘 신청하는 노래가 있는데,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이 눈물을 흘리곤 했어. 옛 연인과의 추억이 있던 곡인게야. 어느 순간부터 그 손님이 이젠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이제 마음을 정리한 거지. 그러고 보면 음악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 속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 같아.” 순간 그의 안경 너머로 3명의 청년 친구들의 얼굴과 20대 커플, 3명의 중년과 2명의 대학생, 옛 연인을 생각하던 혼자 온 남성 손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LP바의 문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각자 다른 의미로 열려있다. 그냥 음악을 듣고 싶어서 오는 사람, 사람이 그리운 사람, 고민이 많은 사람, 애인과 헤어진 사람, 위로가 필요한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는 문이자, 모두에게 다른 문인 것이다.

문을 열고 LP바를 나서자 등 뒤로 콜드플레이의 ‘fix you’가 흘러나온다. “and I will try to fix you” 이 곡을 신청한 누군가는 어떤 사연을 가슴 속에 담고 있을까.

 

강수환, 김범석 기자  news@kukey.com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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