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쿠커페이스 |
특별한 기구나 조리법을 이용해 맛과 질감을 변화시킨 요리를 ‘분자 요리’라고 한다. 분자 요리는 음식을 조리할 때 조리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적‧물리적 변화를 연구한다. 과학적인 원리를 이용해 재료의 맛과 질감을 변화시켜 김치 젤리, 올리브유 아이스크림, 과일 향이 나는 스테이크 등 독창적인 요리를 만들 수도 있다. 진짜 같은 속임수 기법을 뜻하는 트롱프뢰유(trompe-l’œil)적인 요리를 만들 수도 있다. 겉모양은 사과인데 다른 과일의 맛이 나는 것이 트롱프뢰유적인 요리다.
톡톡 터지는 식감: 구체화(球體化)
구체화를 하면 다양한 맛의 육수를 구슬 형태로 질감(texture)을 변화시킬 수 있다. 주스를 캐비어 모양으로 만들어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을 표현할 수도 있고, 입안에서 터지는 김치 알이나 청국장 젤리를 만들 수도 있다. 용액을 구슬 모양으로 만드는 데는 ‘알긴산 나트륨(Sodium Alginate, (C★6H★7O★6Na)n)’이라는 식품첨가물이 사용된다.
어릴 적, 구슬 젤리 과자를 만들어 먹어본 적이 있다면 이해하기 쉽다. 컵에 물과 분말 가루를 섞고 스포이트 안에 있는 액체를 한 방울씩 떨어트리면 개구리 알처럼 둥근 젤리가 만들어진다. 컵에는 녹은 염화칼슘이 담겨 있고, 스포이트에는 알긴산 나트륨이 과일 주스에 녹아있다. 알긴산 나트륨이 녹아있는 스포이트 안의 액체를 염화칼슘(Sodium chloride, CaCl★2)을 넣은 물(H★2O)에 한 방울씩 떨어트린다. 스포이트에서 나온 액체는 개구리 알 같은 구(球)형태가 된다.
이광원(생명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알긴산 나트륨이 수용액에 용해돼있는 상태에서 칼슘 이온과 반응하게 되면 나트륨 이온(Na☆+)과 칼슘 이온(Ca☆2☆+)이 2:1의 비율로 치환된다”라고 말했다. 칼슘 이온 하나가 나트륨 이온 두 개와 맞바꿔지며 나트륨이 있던 자리로 칼슘이 들어간다. 칼슘 이온 하나당 두 개의 알긴산과의 결합을 형성하면서 알긴산칼슘([(C★6H★7O★6)★2Ca]n)이 만들어진다. 칼슘은 알긴산 두 개와 결합해 흩어지지 않고 구(球)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촉촉한 육즙이 입 안 가득: 수 비드(Sous Vide)
분자 요리에서는 수 비드 머신을 이용한 수 비드 기법으로 조리한다. 수 비드 조리법은 진공으로 포장한 재료를 물속에 넣어 물이 끓지 않을 온도로 오랫동안 데우는 조리법이다. 이경희(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수 비드 기법은 진공포장을 통해 수분이 재료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기법”이라고 말했다. 수 비드 기법을 사용하면 물과 직접 닿지 않아 재료의 수용성 성분이 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촉촉한 질감을 살릴 수 있다.
수 비드 기법의 또 다른 장점은 낮은 온도로 조리해 재료의 질감과 풍미(flavor)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소고기를 센 불에 구워 먹으면 맛있지만 식을수록 질겨진다. 약한 불에 오랫동안 조리한 장조림이나 찜을 할 때는 고기가 부드러워진다. 부드러운 식감의 비밀은 단백질의 상태가 온도마다 변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고기가 익는다는 것은 단백질의 변성이다. 육류 속 단백질의 특정 성분이 온도에 의해 변화하며 질감이 변하게 되는데 어떤 단백질이 변성하느냐에 따라 맛과 질감이 변한다. 육류 속 미오신과 콜라겐은 55℃ 정도에서 변성하며 육류의 풍미를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60℃ 이상에서는 콜라겐이 젤라틴으로 변하며 부드러워진다. 조리온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액틴도 함께 변성하는데 액틴이 변성하면 고기가 질겨지고 단단해진다. 이런 변성 작용 온도는 고기의 종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요리사는 단백질의 특정 성분 변성작용을 이용해 원하는 질감을 표현한다.
수 비드 조리법을 거친 요리는 식탁으로 나가기 전 살짝 굽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과학적인 원리가 담겨있다. 고기 표면을 살짝 구우면 고기의 풍미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고기는 구워야지 제 맛’이라는 말은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 때문이다. 고기나 채소를 불에 구워보면 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마이야르 반응은 아미노산과 환원당(포도당, 과당, 맥아당 등)이 작용해 갈색의 중합체인 멜라노이딘(melanoidin)을 만드는 반응이다.
화학물질을 뽑아내는 기구: 사이펀
사이펀이라는 특수한 조리기구도 분자 요리에 사용된다. 사이펀은 압력을 통해 높은 곳의 물을 낮은 곳으로 옮기는 과학원리를 말한다. 높은 곳에 있는 수조의 액체 표면에 대기압이 작용해 관 속에 있는 액체를 위로 끌어올린다. 이와 같은 원리를 이용해서 커피를 추출하는 커피 기구를 사이펀이라 일컫기도 한다. 분자 요리에 사용되는 것은 이 커피 기구다.
사이펀을 이용해 가다랑어포 육수를 우려내기도 한다. 박현진(생명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식품공학 측면에서 볼 때 사이펀을 이용하는 이유는 물의 온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정 온도에서만 우러나는 물질이 있으므로 사이펀을 이용하면 가다랑어포의 감칠맛을 끌어낼 수 있는 최적 온도를 맞출 수 있다.
박현진 교수는 커피를 예로 들었다. 그는 “커피 회사의 경우 각각 다른 온도에서 커피를 추출해 어느 온도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기(aroma)가 추출되는지 실험한다”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기를 추출해 커피의 풍미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 무엇인지 찾는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요식 기업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기가 추출되는 온도를 찾아 똑같이 재현한다. 스타벅스의 경우 커피를 추출할 때 온도계를 사용해 정량적인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고 있다.
차갑고도 부드러운 식감: 액화 질소
액화 질소는 보통 식품저장에 많이 쓰이지만, 분자 요리에 활용할 수도 있다. 즉석 아이스크림을 예로 들 수 있다. 즉석 아이스크림은 재료를 급속냉동해 얼음 결정이 커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작은 얼음 결정은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는다. 액화 질소를 이용해 거품 소스를 순간적으로 얼려 새로운 식감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올리브유를 이용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액체 상태의 올리브유와 또 다른 맛과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경희 교수는 “액화 질소를 이용하면 영하 196℃의 저온에서 한순간에 얼어붙어 삼투압 현상에 의해 얼음 결정이 커지는 것을 막는다”고 말했다. 소스나 주스 등에는 순수한 물(용매)뿐만 아니라 당이나 색소같은 성분(용질)이 녹아있다. 용액의 농도가 높을수록 높은 삼투 값을 가진다. 용액이 얼기 시작할 때, 용액의 수분이 얼어 용액 내에 삼투 값이 커진다. 용액의 농도 계산법에 의해 용매가 얼면 용액의 총 질량이 감소해 농도 값이 커진다.
냉동실에 콜라를 얼려봤다면 이해할 수 있다. 미처 다 얼지 못한 콜라를 마셔보면 원래 콜라보다 더 진득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콜라가 냉동실에서 천천히 얼기 시작하면 설탕이나 다른 첨가물은 얼지 않고 순수한 물만 언다. 콜라가 얼수록 얼지 않은 용액에 설탕과 첨가물을 비롯한 용질이 농축된다. 농도가 짙어진 쪽으로 외부의 물 분자가 삼투압 현상에 의해 이동한다. 얼음은 삼투압 현상에 의해 이동한 물 분자가 합쳐서 더 큰 얼음 결정이 된다. 하지만 액화 질소를 이용하면 동시에 모두 얼어 삼투압 현상에 의해 얼음알갱이가 작아 부드러운 질감을 준다.
참고문헌|노순배 <분자 미식학의 이해>
이경주 기자 race@kuke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