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바람과 잦은 비로 은행나무가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의 끝자락, 차가운 하늘에 입김을 폴폴 내뱉으며 주의를 끄는 음식점이 있다. 시원하고 깔끔한 맛으로 손님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어머님 칼국수’는 세종캠퍼스 정문을 지나 조치원여고 옆에 자리해있다.
쌀쌀한 날씨에 팔팔 끓인 북엇국을 생각하면 시원한 목 넘김에 벌써부터 기분이 상쾌하다. 말린 더덕처럼 부슬부슬하게 건조한 북어는 본래 함경도를 중심으로 발달했단다. 평양식 퓨전음식을 자랑하는 ‘어머님 칼국수’는 북어를 넣고 끓인 육수를 음식의 기본재료로 사용한다.
차림표에는 칼국수와 왕만두 딱 두 가지뿐이다. 칼국수를 시키면 보리비빔밥이 먼저 상에 오른다. 탱글한 보리밥에 매콤한 양념을 한 숟가락 넣고 살짝 데친 얼갈이배추를 고명처럼 얹었다.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만든 양념은 강된장 맛을 낸다. 오돌오돌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보리알은 손님들의 입맛을 돋우는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유경상(남·57) 사장은 씹는 식감을 위해 보리를 두 차례에 걸쳐 각 10분씩 삶는다. 적당한 물 조절도 중요하다. 물을 너무 적게 넣거나 보리를 한번만 삶으면 보리가 제대로 퍼지지 않고 따로따로 놀기 때문이다.
보리밥 그릇을 다 비울 즈음 육수와 바지락이 든 냄비와 익히지 않은 면과 대파가 그릇에 따로 담겨 상에 놓인다. 바지락은 10년째 거래해오고 있는 전라북도 고창에서 직접 산지직송해 들여온다. 살아있는 바지락은 고창에서 말끔히 해감한다. 불을 켜서 냄비 속 바지락이 보글보글 끓으면 뚜껑을 열고 면과 대파를 넣으면 된다. 굳이 이렇게 나오는 데는 유 사장의 손님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다. 설익은 면, 푹 퍼진 면 등 손님마다 식성이 다르기에 자신이 원하는 정도로 끓여 먹으면 된다. 국물을 한 숟가락 뜨면 바지락의 짭조름한 맛과 북어의 담백함과 시원함이 입천장을 통해 가슴까지 전해진다. 쫄깃하면서도 탱탱한 면발은 오랫동안 끓여도 쉽게 퍼지지 않는다.
유 사장은 면 반죽을 만드는 데 매일 5시간을 작업한다. 밀가루와 소금만을 넣어 만든 반죽은 세 시간 정도의 숙성시간을 거친다. 숙성한 반죽은 세 번에 걸쳐 치대는 과정을 거친다. 치댈수록 면발은 더욱 쫀득해지고 탱탱해진다. ‘어머님 칼국수’ 하면 다대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직접 대전에서 엄선한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참기름, 간장, 후추를 넣어 만든 다대기는 13년 전 친구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양념이다. 붉은빛을 띠는 다대기를 칼국수에 적당히 덜어 섞으면 칼칼하면서 얼큰한 맛으로 탈바꿈한다. 기분 좋게 아리는 입천장이 다시 한 번 칼국수를 뜨게 만든다. 반찬으로는 사시사철 겉절이를 손님상에 낸다. 신맛보다는 맵고 짠맛이 강한 겉절이가 칼국수의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맛에 악센트를 더해준다. 겉절이를 만들 때 칼국수 육수에 사용되는 육수를 사용해서 인지 북어의 시원한 맛이 겉절이에도 스며들었다.
의정부에서 칼국수 집을 운영하던 친구 어머님으로부터 음식비법을 전수받은 유경영 사장은 조치원에 내려와 부인과 함께 ‘어머님 칼국수’를 차린 지 벌써 14년이 지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육수, 면, 만두 속 등 반찬부터 시작해 모든 음식은 유 사장의 손을 거쳐 상에 오른다. 손님들이 ‘배부르다’며 맛있게 먹고 가는 모습을 보면 하루 힘듦이 싹 가신다는 그는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이다.
백승주 기자 100win@kuke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