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주최한 ‘2015 최강애니전’이 12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됐다. 행사 중 하나인 ‘TALK WITH CREATIVES’가 13일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진행됐다. 문화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애니메이션 산업 역시 주목받는 지금, 정부도 나서 애니메이션 산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흥행성보다 작품에 집중하는 개인 애니메이터들의 창작환경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함준서 감독, 김영준 감독, 카와구치 에리(川口 恵里) 감독이 개인 애니메이터의 창작 환경과 자신의 작품 활동을 발표했다.
꾸준한 메모와 드로잉
함준서 감독은 강연을 통해 작품의 항상 드로잉연습을 하며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메모한다고 밝혔다. 함 감독은 메모와 더불어 매일같이 드로잉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함 감독은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을 시도하는 감독으로 생물의 형태를 재해석한 <걸음걸이는 형태를 따른다>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작품 구상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드로잉 연습을 할 때, 특정한 대상을 똑같이 재현하는 그림 보다는 그리면서 특정한 형태와 닮아가는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그중 좋은 것은 작품제작에 참고한다. 함 감독은 특히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아이디어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라보면 무엇인가 불현듯 떠오른다”며 자신의 작품구상에 대해 소개했다.
애니메이션에만 몰두하지 말 것
김영준 감독은 다양한 작업을 애니메이션과 접목해 애니메이션의 확장성과 예술성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애니메이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과 애니메이션는 결과물이 다른 것뿐이지 같은 생각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이외에도 공간디자인이나 제품디자인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작품 활동 중 쉬는 시간에는 가구를 만들곤 한다고 말했다. 이런 다양한 작업을 통해 생긴 다양한 접근법으로 그는 애니메이션의 틀을 확장시켰다. 그의 작품은 기승전결의 구성없이 하나의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전시도 네모난 스크린에 박혀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극장이 아닌 갤러리에 상영하기도 했는데 그의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그림처럼 벽에 걸려있거나 모니터를 바닥에 깔아 멀리서 보면 욕조 같은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방법도 매력있지만 갤러리에서 조용히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회를 통해 결과적으로 “꼭 애니메이션이 TV를 켜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소품처럼 일상생활과 가까이 있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또한 일상 소품처럼 접근하기 쉽게 만든 이유에 대해 그는 “관객에게 단편 애니메이션이 어렵고 난해한 것이 아니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생각도 작품으로 거듭나
카와구치 에리 감독은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만든다며 컨셉에 맞는 기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카와구치 에리 감독은 인간의 신체감각을 현실적인 모습과 느낌으로 표현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꽃과 증기>, <무한한 햄>, <구멍이 난 공원> 모두 독특한 컨셉과 기법이 사용됐다. 카와구치 감독은 “<꽃과 증기>는 밤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에 놓인 쓰레기봉투가 마치 신부가 결혼식장에 누워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에서부터 시작했다”며 작품을 소개했다. <꽃과 증기>는 ‘컷 아웃’ 기법을 이용해 만들어졌는데 종이 위에 형태를 그려 잘라낸 다음 각각의 종이들을 층층이 쌓아 한 장면씩 움직이며 촬영해 연속 동작을 만드는 기법이다. 그는 “입체적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과감한 레이어 연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의 다른 작품인 <무한한 햄> 역시 불현듯 떠오른 영감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무한한 햄>은 동아리 활동 중 10분의 휴식시간동안 숨만 쉬는 고기(meat)가 된 상태를 표현한 작품으로 신체감각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작품 속 정체 모를 형체의 움직임이 자신이 느끼는 감각과 같다고 느낀다면 제가 작품에서 의도한 것이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장에는 그의 체험 전시물 <구멍이 난 공원>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작품에 난 구멍을 통해 관객이 작품 속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관객이 체험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기법을 이용했다.
작품과 생계 사이의 고민
강연이 끝난 이후 질의응답시간을 통해 관객들이 개인 애니메이터들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 중 대학에서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함준서 감독은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며 “유리 노르슈테인의 작품이 뛰어난 것은 알았지만 작품제작 비용 마련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작가들이 생계 때문에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작가가 대중적인 감각을 통해 인기를 얻고 뛰어난 실력으로 좋은 작품을 만든다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한다. 애니메이터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세 감독 모두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김영준 감독은 “지인 작가분도 프랑스 파리의 제작사로부터 지원을 받고 페스티벌을 통해 상금도 많이 받지만 언제까지 이런 지원이 가능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결과물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작품과 함께 금전적인 이익이나 다른 기대를 고려해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함준서 감독은 상업적인 스튜디오에 속해있지만 상업적인 작업과 예술가적인 작업의 중간적인 입장에서 자신만의 결과물을 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함 감독은 미국 유학시절, 미국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당신의 작품이 마음에 드니 작품을 마음대로 만들되, 3D애니메이션으로 만들 것’을 요구받았다. “금전적인 부분은 적었지만 3D 애니메이션 제작방법을 가르쳐 주는 등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작품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카와구치 감독 역시 “작업의뢰가 들어오면 자신의 작품을 할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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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최강애니전의 ‘BEST OF THE BEST’는 작품들을 검은 바다, 어떤 일상, 미친 상상, 전쟁과 평화, 먼 여행, 환상 특급이라는 주제로 나눠 상영했다. BEST OF THE BEST 중 세계적인 국제 영화제와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선정됐던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한다.
<오마르의 파도>
1. ‘검은 바다’에서 상영된 작품 중 하나인 앨리 대거(Ely Dagher)의 <오마르의 파도>는 2015년 칸 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오마르의 파도는 격리된 베이루트의 교외에 사는 오마르의 이야기다.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끼던 어느 날 ‘어떤 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그를 도시의 바닥으로 이끈다. 항상 지키려고 애쓰는 집이라는 감각, 그 실낱같은 애착을 가진 현실에서 아주 가깝고 고립된 세계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오토매틱 피트니스>
2. ‘어떤 일상’의 작품 중 하나인 알레얀드라 토마이(Alejandra Tomei)와 알베르토 코세이로(Alberto Couceiro)의 <오토매틱 피트니스>는 2015년 베를린 영화제에 선정됐다. 그 밖에도 션 지에(Shen Jie)의 <원숭이>와 카시아 날레바즈카(Kasia Nalewajka)의 <파인애플 칼라마리>는 각각 2015년 베니스, 토론토 영화제 선정 작품으로 뽑혔다.
<오토매틱 피트니스>는 돈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모든 것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개념이 작용하는 희비극 애니메이션이다. 살기, 일하기, 숨쉬기, 생각하기 그리고 탈출하는 날마다 반복되는 광기와 자동화에 대한 이야기다.
<한편>
3. ‘먼 여행’이라는 주제에서는 2015년 시카고 영화제 선정 작품인 마 웨이지아(Ma Weijia)의 <모든 것은 변한다>와 2015년 브리쉘 단편영화제에서 넥스트 제너레이션 대상을 받은 스테판 맥낼리(Stephen Mc nally)의 <한편>이 상영됐다. 이 작품은 3D CG효과와 2D 애니메이션 기법을 섞은 작품으로 과감한 색채와 단편적인 내러티브로 작품을 만들었다.
<한편>은 도시를 가로질러 가는, 각각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각자의 기억, 후회, 불만에 갇힌 네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자니익스프레스>
4. ‘환상특급’에서는 우경민 감독의 <자니익스프레스>가 상영됐다. 이 작품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단편 애니메이션 시상식인 2015년 디지콘6 아시아 어워즈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자니익스프레스>는 우주 택배기사 자니의 이야기다.
여느 때처럼 자니는 배달해야 할 택배를 받는다. 현미경으로 확대해봐야 보이는 너무나 작은 택배. 자니가 행성 주변을 돌아보나 택배 수령자는 보이지 않는다. 택배 수령자를 찾아 온 행성을 해메고 이로 인해 하나의 문명이 멸망할 위기에 처하는 내용이다.
사진출처|Ungrandmoment 인터뷰 기사, 베를린 국제영화제 공식홈페이지, Royal College of Art 홈페이지, KoBiz 홈페이지, Arabpress 기사
이경주 기자 race@kuke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