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리뷰 -
현대를 살아가고있는 사람들, 즉 우리들은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혹은 개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바쁘게만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앞을 보기에 급급한 채, 우리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현실의 문제들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 거기에 무한한 관심을 쏟는가 싶다가도, 곧 각자의 삶 속으로 얼른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사회 문제란 말 그대로 이슈에 불과하다. 오로지 자신들만을 바라보고 사느라 정작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를 오롯이 보지 못하는 것은 이 시대의, 흔한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문제들은 무관심들에 파묻혀 가라앉고 있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 우리 주변의 뜨거운 감자들과 문제점들을 예리한 눈으로 조명하고 있는 ‘연극’이 있어, 우리는 이 시대가 직면한 문제들을 보다 가깝고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연극은 이 시대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다룰 연극 <늘근도둑이야기>도 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연극들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면, 그리고 정치면에서 수많은 이슈들이 인터넷과 텔레비전 등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필자가 연극 <늘근도둑이야기>를 보았을 때에는 예컨대 세월호의 인양 문제라든가 정치 인사의 비리 문제, 청년 취업률하락 문제 등이 여러 언론 매체들의 화두에 올랐었다.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한몸에 받는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시당해왔던 이러한 이슈들은 연극 <늘근도둑이야기>에서 일부 소재로 활용되면서 다시 한번 조명됐다.
사회의 문제들을 즐거운 말씨로 풍자하고 직접적으로 비판을 하기도 하는 이 ‘문제적’ 연극은 매 해 당시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좋은 연극으로 손꼽혀왔다. 이는 2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 연극이 관객들에게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늘근 도둑’과 ‘더 늘근 도둑’의 입을 통해 풀어져 나오는 여러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는 해학적이기 때문에 즐겁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이슈들을 풍자하며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는 데에서는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내게 연극 <늘근도둑이야기는> 쉽게 볼 수 있었지만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작품이었다.
<늘근도둑이야기>는 결코 들어가서는 안되는 곳, 예컨대 중요한 미술품들이 다수 소장된 저택에 도둑질을 하러 들어간 두 도둑이 결국 경비견 때문에 잡혀 조사를 받게 된다는 간단한 줄거리를 주로 하고 있다. 어찌보면 평범하다고도 생각될 수 있는 이 스토리를 맛스럽게 살리는 것은 어딘가 어수룩하고 순진해보이기까지 하는 두 도둑이 주고받는 대사와 애드리브, 그리고 행동이다. 그들의 순발력 넘치는 대사 안에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러나 진지하게 그를 지적하지는 않기 때문에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관객들은 오히려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것은 아마 웃음으로 풀어낸 우리 사회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리고 부당한 일에 대한 적나라한 풍자를 들으면서 보는 이들이 어떠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극의 후반에는 권력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조사관’을 두 도둑이 보기 좋게 농락하는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더 확실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다소 무질서하고 어지럽게 보이는 대사와 애드리브의 배열, 그리고 이어지는 해학적인 상황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웃으며 관객들이 극에 되려 집중하게 만든다. 한 젊은 배우가 청년 백수의 괴로움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처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활용했기에 <늘근도둑이야기>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연극에 보다 더 깊이 몰입해 공감할 수 있었으리라.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은 관객을 극에 동참하게 하고 스스럼없이 관객들과 대화를 하는 등 보는 이들이 연극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이야기하는 만큼, 연극을 만든 이들은 연극을 통해서나마 관객들이 우리 사회가 안은 아픔들을 가까이 느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무대에 선 배우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며 함께한 <늘근도둑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의의가 있다. 겁먹지 않고 나서서 시대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리면서, 잘못된 점은 속 시원히 비판하는 이 연극을 나는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