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7일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드디어 새해에 첫 칼럼을 올리게 되었네요.
17일동안 탈북청소년들을 가르치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는데요,
이에 대해서 나중에 칼럼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정말 유익하고 제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봉사활동이었습니다 ^^
자 그럼 새로운 칼럼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여태까지는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얽힌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보았다면
앞으로 연재될 칼럼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한국과 일본의
역사갈등 사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다뤄볼 예정입니다.
저희 홀로그램은 작년 베트남을 방문하고 한달뒤인
8월 19일부터 27일까지 팀을 나눠서
오사카 - 교토 - 나라 지역과
후쿠오카 - 나가사키를 방문했었습니다.
일본답사에 대해 첫 번째로 시작될 칼럼은
저희 팀 류유자 팀원의 칼럼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류유자 팀원은 재일교포 3세로 일본 정규교육을 받았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재일교포 동아리를 통해 일본사회에서
차별 받고 있는 재일교포 문제에 주목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역사를 배우면서
학부 전공은 건축학이었으나 졸업 이후
전공을 바꾸어서 오사카대학 국제공공정책연구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식민지조선의 교육정책을 연구하고 있으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일본 내 시민단체
'간사이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본어 번역 : 전성훈 팀원
교정 및 편집 : 유세화 팀원
1.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요즘 일본 사회에서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지우려는 시도가 자주 보입니다.
"위안부는 다순히 매춘부이다" 나 "식민지 지배는 미개한 조선을 문명화했다" 등의
발언이나 인식이 일부 사람들뿐만 아니라, 마치 진실인 양 불길처럼 일본 사회에서
번져 가고 있으며 일반 시민에게도 급속히 침투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역사를 왜곡하려는 언동이나 인식을
일본 정부가 제지하기 보다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 입니다.
최근 난징 대학살의 역사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정치적 이용이다" 라며 비판하고, 난징에서
일어난 일본군에 의한 학살이라는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일본 사회 전체에서 역사 왜곡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속에서 '오사카'라는 한 도시의 역사를 둘러싼 움직임에
대해 주목해보겠습니다.
현재 오사카 시에서는 역사박물관의 전시와 역사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문제가 큰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지방에서 갑자기 일어난 문제가 아니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요즘의 역사 왜곡과 우경화 같은 일본 사회 풍조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며,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박물관과 교과서라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의
현황을 확인하고, 역사 계승의 방향에 대해 논하겠습니다.
2. 오사카 평화 박물관과 인권 박물관에 대한 정치적 개입
오사카에는 오사카 국제 평화 센터(피스 오사카)와
오사카 인권 박물관(리버티 오사카 - liberty는 자유의 의미를 가지지지만
여기서는 인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라는 역사를 통해 평화와
인권을 배울 수 있는 박물관이 오사카 시와 부(府)의 보조금에 의해
운영되어 왔습니다.
두 박물관 모두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현장 학습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아이들 교육의 장으로써 친숙한 곳 입니다.
그러나 2008년 오사카 부(府) 지사, 2011년부터 현재 오사카 시장을
맡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 씨에 의해 피스 오사카와 리버티 오사카의
전시 내용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이루어져 피스 오사카는 전시 내용을
변경하고 리버티 오사카는 폐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박물관 역사와 당시 설립이념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 피스 오사카 전시 내용의 변경
1991년 9월, 시민 단체 등의 강한 요청으로 오사카 부,시가 출자하는
피스 오사카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초 설립 이념은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오사카에서는 50회가 넘는 공습에 의해 도시의
주요 부분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1945년 8월 15일까지 15년
전쟁에서 전장이었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사람들과
식민지하의 조선, 대만 사람들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준 것을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전쟁에서 일본이 입은 피해 측면뿐만 아니라 동시에 가해 측면까지
정면으로 다룬 박물관이었던 것입니다. 정부에서 만든 박물관 중에
가해의 역사까지 다룬 박물관은 쉽게 찾아보기가 어렵기에
희소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1년 부,시의회에서 제 1당이 된 하시모토 시장이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의 의원이
"전시 내용이 자학적이다" "편향된 전시물이 너무 많다" 등
주장하며 하시모토 씨도
"전시 내용이 부적절하다면 폐관도 생각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와 같은 경위로 피스 오사카는 2015년 4월 기존의 일본의
가해 전시를 모두 폐기하여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오사카 공습 피해를 알자'는 주제로 전시를 리뉴얼하고
재개관되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리뉴얼 전의 피스 오사카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리뉴얼 이전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에 관한 내용이나
사진, 현물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으며, 공습 피해를 아는 것과
동시에, 일본 제국과 일본군에 의한 가해 행위를 배울 수 있었으며,
특히 근대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전시에서는 "전세계가 전쟁을 하던 시대"로 전쟁을 일반화하고
그저 당시의 황국 사관이나 전시하의 생활 등을 비판 없이 흘려 보내는 것과
같은 전시로 탈바꿈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했던
전시마저 완전히 없어져 버렸습니다.
물론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낸 오사카 공습은 비참하고, 또 후대에 전해야 할 역사이지만
, 한편으로 "왜 오사카가 공습을 받았는지"라는 전제와 역사적 경위가 전시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습이 마치 천재지변이었던 것으로 아이들이
이해해 버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일본군에 의해 충칭에 가해진 무차별 폭격과 난징에서의 학살이라는 사건이
오사카 대공습이 시작되기 전에 있었던 것, 또한 당시 오사카에는 식민지
지배로 인해 일본에서 살고 있었던 조선인들 중에도 공습 희생자가
있었던 것, 또한 오사카 공습의 민간인 피해자가 국가 배상을 요구하고
운동해 온 것도 직시해야만, 학생들이 "피해성"과 "가해성"을 함께
배우면서 "역사"를 보는 눈이 길러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학생들이 이렇게 "역사"를 배움으로써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것을 현대를 살아가는 자신에게 부여된 과제로써,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4. 리버티 오사카의 폐관 위기
피스 오사카와 마찬가지로 리버티 오사카에도 전시 내용에 대한 개입이
이루어졌습니다. 리버티 오사카는 1985년에 개관한 일본에서 유일하게
"인권"을 조명하는 종합 박물관입니다.
원주민이었던 아이누족(훗카이도)과 류큐 민족(오키나와), 재일 조선인 등
소수 민족에 관한 전시나 피차별 부락, 장애인, 따돌림 문제 등에 관한
전시 등을 통해 인권과 평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리버티 오사카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풍부한 영상 자료가
아주 매력적인 곳 입니다.
해방 직후 재일 조선인의 생활 모습을 담은 귀중한 영상에서부터
현대의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증언을 담은 인터뷰 영상까지
있으며, 하루만에 볼 수 없는 방대한 자료가 전시되어있었습니다.
현재 리버티 오사카의 건물은 1928년에 지어진
사카에 초등학교(1872년 개교)라는 오사카 부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학교 구 교사를 활용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드문
철근 콘크리트로 훌륭하게 지어진 3층 건물입니다.
원래 이 지역은 니시하마 부락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에도 시대 때 부락 주민들은 북 만들기와 같은 피혁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마치 조선시대의 백정처럼 낮은 신분으로인해
차별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별 철폐와 자녀 교육 향상을 위해 부락 지역의 사람들이
토지와 돈을 모아 학교를 지었습니다. 이를 통해 인권를 다루는
리버티 오사카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2008년 리버티 오사카는 박물관을 방문한 부지사 시절의
하시모토 씨의 요청에 따라 일부 전시내용을 변경했습니다.
이에 따라 여성,아동 문제에 대한 전시를 일부 철거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다시 시찰할러 온 때
"전시 내용이 차별과 인권에 치중되어있어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전시가 되어있지 않다" 하며
지원되고 있던 시의 예산을 끊었습니다.
2013년에는 오사카 부,시에서 나와 1억 2000만 엔(전체예산 85%)의
보조금마저 모조리 끊고, 심지어 지대(地代)를 연 2700만 엔 지불하도록
요구하여 미납 시 박물관을 철거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리버티 오사카의 대지는 원래 지역 주민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초등학교 건설 목적으로 시에 기증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사카 시는 사유지라며 땅값을 요구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행정에서 벌어지는 박물관에 대한 압력행사를 목격하고 느끼는 바는
첫째, 인권보장과 차별 철폐라는 인류적 과제가 너무 경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차별 자체가 마치 없었던 것 처럼 부정되는 것은 지금도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둘째, 가해의 역사를 은폐 및 왜곡하는 태도가 이곳에서도 보인다는 점입니다.
아이누나 류큐 등의 원주민과 재일 조선인의 인권과 차별을 논할 때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가해의 역사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박물관 폐관을 들먹이며 압박하는 방식으로는
자신에게 불리한 과거를 숨기려는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따르지 않으면 지원을 끊는 "행정 제제"로서의 악질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5. 오사카시에서의 '우파'교가서 채택
행정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 채택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교과서는 우선 민간쪽에서 편집되고
그 후에 문부과학성(한국의 교육부)이 적합한지 심사합니다.
그리고 시,정,촌의 교육위원회가 문부과학성에 의해 검정된
교과서 중에서 학교에서 사용될 교과서를 채택합니다.
초, 중학교의 교과서는 4년에 한 번씩 채택되고 있습니다.
오사카시는 올해, 내년부터 중학교에서 사용될 역사와
공민(公民) 교과서에 대해
"우파 교과서로 알려져있는 이쿠호샤 교과서를 채택했습니다.
이쿠호샤 교과서는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자학 사관'을 가지고 있다며,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할 목적으로 1997년에 결성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장이
서술되어있습니다.
'만드는 모임'은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기술을 삭제하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가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온 단체입니다.
오사카 시에서는 하시모토 시장이 채택 기준을 독자적으로 바꾸고
교육 위원을 교체하여, 이쿠호샤 교과서가 채택되도록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또한 아베 총리나 자민당이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노골적인 개입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시민 단체들이 강력하게 채택 반대를 호소하여 한 때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오사카 시는 교과서 선정을 강행했고,
이번에 새로 오사카 시 등에서 채택한 결과 전국에서 이쿠호샤
교과서의 사용 비율은 2011년 3~4%에서 현재 6%로 증가했습니다.
요코하마 시도 4년 전에 이쿠호샤 교과서를 채택했고, 이로써 전국
인구 상위의 두 도시에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6. 교과서 내용
8월 14일에 발표된 '전후 70년 담회'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정치를 세우고 독립을 지켜냈습니다.
일로전쟁(러일전쟁의 일본식 표현)은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을 격려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쿠호샤 교과서에서는 러일전쟁 진술에서
"같은 유색 인종이 세계 최대의 육군국 러시아를 쓰러뜨린 사실은
열강의 압박과 식민지 지배의 고통에 허덕였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주었습니다"
라고 적고 있는데, 아베 총리와 공통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태평양 전쟁에 관해서는 일본군이 저지른 잔학 행위에 대한
기술을 최대한 피하고 있고, 개전의 이유에 대해 남방의 자원 획득을
언급하면서, 구미에 의한 식민지 지배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함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태평양 전쟁 종결에서 천황의 판단을 강조하고,
쇼와 천황은 평화주의자였다고 칭찬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런 역사관은 과연 과거의 사실과 진지하게 마추하는 태도일까
의심스럽습니다.
7.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오사카 시에서의 박물관과 교과서라는 두 대상을 통해 일본의
역사 왜곡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에게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무엇보다도 억압된 인권과 유린되고
무시되어왔던 나약한 처지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 떄문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은 어쩌면 필자 또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누군가를 억압하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배우고 계승하는 것, 그리고 반성하는 것은 다시는 이런
가슴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하는 우리세대에게 부여된
인류사적 사명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혹여라도 70년전과 같은 전쟁의 상황으로
또 다시 우리가 내몰린다면, 그 때 70년 전 인류가 범했던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역사 왜곡 움직은 이러한 인식과는 반대로, 피해자들의
존엄을 다시금 짓밟는 행위입니다. 가해 행위를 직시하지 못하고 불편한
과거를 없었던 것으로 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아무도 잔인했던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것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한다는 것은 가해자가 책임을 지는 하나의 방법이며,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자 인류가 또 한 걸음 진일보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일본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성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박물관 등의 장소가 정치적 개입으로 박탈되는 이 상황에
저항하고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장소를 지켜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러한 논의가 지속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라는 것은 현 세대 권력자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편의에 따라
왜곡되어 이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미래세대에게 이전세대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래서 좀 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현 세대의 준엄한 책임입니다.
아래는 저희 <홀로그램>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입니다.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직접 방문해서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https://www.facebook.com/hologram2015/
그리고 다음 '스토리펀딩'에서도 한동안 후원금 칼럼을 작성했었습니다.
이 쿠플존 칼럼도 이쪽에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