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서로를 죽여야만 했나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동명의 영화의 스토리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뮤지컬을 보기에 앞서,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뮤지컬은 영화보다는 박상연의 원작 소설 <DMZ>를 더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베르사미'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과 그를 전면에 세우고, 그의 서사에 집중하는 방식도 소설과 더 닮아있는 느낌이었다. 뮤지컬은 또한, 소설의 주제나 분위기를 잘 따르고 있었다.
<JSA>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작품의 표면에서 드러나는 우정만은 아니다. 뮤지컬은 그보다 한층 깊은,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한 본능에 따르는 인간과 그들의 '조건 반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로 에둘러 표현되었던 반공교육, 그 때문에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게 되었던 네 명의 인물과, 베르사미가 연기하는 그의 아버지 등을 통해서다. 무의식 속에 잠재된 본능적인 조건 반사의 형태는 작품에서 은근하지만 뚜렷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우선적으로 폭력에 의한 세뇌 때문에 전등 불빛이 없이는 먹이를 먹지 못하게 된 '백두'와 반공교육 때문에 서로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적으로 생각하던 남, 북한의 군인들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에게서 보이는 '조건 반사'는 베르사미의 아버지, 오발탄 소리에 서로에게 총을 겨눈 네 사람, 수혁을 사살하는 헌병대의 행동을 통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베르사미의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 '미군이다!'라는 외침에 반공포로였던 동생에게 무의식적으로 칼을 뻗었다. 수혁과 성식, 경필과 우진은 오발탄 소리에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훗날 죄를 고백한 수혁이 총을 들어 허공을 쏘자, 총소리에 반응한 헌병대는 수혁을 사살한다.
인물들은 자신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어떤 '소리'들에 반응하며, 그에 따른 조건 반사를 보였다. 작품은 이들에게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조건 반사'적 행동을 병렬적으로 보여주고, 그들을 지배한 이데올로기들을 비판했다. 그러한 플롯의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캐스팅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의 관극을 통해 느낀 바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첫 관극 때는 인물 간의 부조화나 특정 배우의 발성 때문에 몰입이 어려웠다. 뛰어난 연기와 발성의 이정열 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가 겉도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성 배우 덕분에 서서히 부서지던 '아이돌 배우'에 대한 편견의 벽이 다시 견고해졌다. 필드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아이돌 출신의 뮤지컬 배우들 모두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팬들의 기대에도 못 미치는 무대를 보여주는 이들을 감싸주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재관극을 했을 때 수혁 역을 맡았던 강정우 배우는 훨씬 나은 연기와 발성을 선보였다. 그 날 함께 한 이들이 2014 년에 강정우 배우와 이미 공연을 함께 했던 경험이 있어서였는지 배우들 간의 합이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이 만족스러웠고, 그 덕분에 처음 관극을 했을 때보다는 훨씬 즐겁게 <JSA> 에 몰입할 수 있었다. 새삼 배우 역량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공연의 연출에서는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함께 봤다. 좋았던 점은 역시 조명 연출이었다. 양쪽 측면에서 배우의 상반신을 향해 수평적으로 쏘아지는 조명은 위에서 떨어지는 조명들과는 달리, 배우에게 이목을 더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무대 한가운데의 천장에 달려있던 정육면체 모양의 조형물도 독특했다. 조형물 안의 조명은 '베르사미'가 현재의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만 켜지는데, 이는 취조실이라는 고립된 공간을 연상케 하는 연출이기도 했고,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는 역할도 해 주었다. 이러한 섬세한 연출은 보는 재미를 한층 더 높여주었다.
아쉬운 점은 뮤지컬의 넘버들이었다. 넘버들은 나쁘지 않지만 썩 마음에 드는 편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뮤지컬은 관극 후에도 관객에게 기억되는 중심적인 노래 한 두 곡, 소위 말하는 뮤지컬의 대표 넘버가 있다. 그러나 <JSA>에는 대표적인 넘버랄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곡은 '엄마'나 '지뢰 조심, 적군 조심', '간단한 수학문제' 정도였는데, 그것을 과연 <JSA>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관객들은 뮤지컬의 스토리나 플롯보다도 '잘 만든' 넘버로 뮤지컬을 기억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JSA>가 연극이 아닌 뮤지컬로 더욱 성공하기 위해서는 넘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드는 공연은 아니었지만, 연출이나 플롯을 짜는 방식 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공연이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여러 번의 공연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더욱 발전해나갈, 뮤지컬<JSA>의 전망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