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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방배동. 조그마한 방에 모인 그들은, 도박을 끊으려는 ‘단(斷)도박 모임’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이곳은 서로의 정보를 철저히 보장했다. 자신을 지칭할 때는 자신이 거주하는 곳과 성씨만 공개했다. “기자 양반은 안암김이겠네. 안암김선생, 남자친구 사귈 때 도박하는지 안 하는지 잘 보고 사귀어야 해.” 그들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스스럼없이 농을 걸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구순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졌다. 회합이 시작됐다. 10여 명의 일원들은 믹스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마주 앉아 각자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도박중독자임을 시인합니다.” 이 문장을 뒤로, 각자 참여했던 도박의 종류와 기간이 뒤따랐다. 카지노 도박부터 증권투기, 복권, 바카라 등 다양한 단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렇게 자신이 도박중독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완전히 이해할 때야 비로소 회복이 시작돼요. 마음만 먹으면 도박을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 중독자에게 가장 위험하거든요.” 관계자가 귀띔한 말이었다.

한 명 한 명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권선생이 먼저 입을 뗐다. 암 말기 환자를 만났다던 그는 삶을 마무리하는 사람을 보고 난 뒤 자신을 돌아봤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니 도박에 빠져 지냈던 내 모습이 차갑게 다가오더라고요. 왜 바닥으로 가야만 깨닫는 것이 있는지....” 쓴웃음을 짓던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들은 덤덤했다. 솔직하게 자신의 도박 행위를 인정했다.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을 다니고, 취업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도박으로 벌 수 있는 돈이 더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김선생은 학교를 자퇴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수업을 들으려니 흥미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최선생은 곰곰이 생각하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는 억대 단위의 돈을 날리고도 도박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어린 나이에 이렇게 고민하는 것 자체로도 괜찮아요. 분명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시계 분침이 한 바퀴를 훨씬 돌고 나서야 모임은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말했다. 한 명이 순댓국을 쏘겠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모임의 밖에선 영락없는 일상의 모습이 펼쳐졌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졌다는 뉴스를 들으며 기계에 대해, 곧 있을 총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은 분명 누군가의 가족이고 연인이었다.

술잔이 한 번 두 번 기울여지면서 이야기의 주제는 다시 도박이란 종착점에 다다랐다. 최선생은 회상했다. 강원랜드에서 살았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 그런 자신을 보며 눈물을 보였던 딸. “내가 왜 시작했을까, 아직도 생각한다.” 순댓국이 식어 차가워질 때까지 그들의 회한은 계속됐다.

김태언 기자  bigword@kukey.com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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