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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누군가는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새벽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드리워진 어둠은 뒤로 한 채 안암동에 찾아든 아침 햇살을 맞이하는 사람들이다. ‘새벽 일’하는 편의점 주인, 폐지 줍는 노인, 그리고 미화 노동자를 직접 찾아가, 저마다의 사연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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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화노동자가 새벽 5시 교양관 앞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사진 | 조현제 기자 aleph@

최저시급 못 받는 이들의 폐지 줍기
“엄청 많이 주워온 줄 알았는데 2키로 밖에 안 되네. 이게 어떻게 2키로야!”
“할머님, 그만큼 모아오셨으니까 그렇죠~”

할머니는 1200원을 받아 가시고, 사장님과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는다. 안암오거리에 자리한 고물상을 넘겨받은 지 2년이 됐다는 주인(남·59)은 새벽 6시에 문을 열고 폐지, 스텐, 알루미늄, 동, 플라스틱, 옷 등을 수거해 찾아오는 이들에게 값을 쳐준다. 하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값싼 원자재에 날이 갈수록 파지 줍는 이들의 생계가 어려워진다고 했다. “시가는 1kg당 파지 80원, 고철 60원이야.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아도 대부분 1~2만 원 정도야.” 2만 원은 최저임금 6050원으로 3시간 정도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폐지 수거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숙자와 신용불량자다.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고 단시간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 것이다.

주인은 큰 건물에서 나오는 폐지나 고철류도 평범한 노인들은 차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건물의 관리인들이나 지인들이 인맥을 이용해서 가져다가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하지 못해 고물 줍는 사람들인데, 소위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것까지 가져다 팔아버리니 매정하단 생각도 들지.”

22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직접 정경대 후문 뒷길과 참살이길을 걷는 동안 10명의 고물 수거 노인과 마주칠 수 있었다. 그 중 정경대 후문에서 만난 김이철(남·64) 씨는 폐암 탓에 하루에 몇 시간만 일할 수 있다며 운을 뗐다. 오전 6시부터 일하기 시작했지만 중간 중간 쉴 틈도 없다고 한다. 식당이나 학원 같은 거래처와 미리 약속을 해 두어서 늦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거래처와 고물 수거하는 노인들은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가게에서 나오는 잡다한 쓰레기들까지 다 치워줘야 해. 돈이 되는 것만 골라갔다가는 거래 끊기기 십상이야.” 폐지 줍는 사람들은 새벽, 아침, 낮 구분 없이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새벽 6시보다 더 일찍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 폐지 수거 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일찍 나온 사람, 힘 센 사람들이 살아남는 거지.”

첫차타고 와 시작하는 미화업무
저녁 7시, 잠들 준비를 한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학교에 오면 4시 반. 본교에서 미화업무를 한 지는 10년이 되어간다. 인문사회계 캠퍼스에 위치한 홍보관의 미화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현수(여·65) 씨는 처음 일을 시작한 뒤 2년간은 새벽일에 적응하기가 힘들어 지각도 종종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전 3시쯤 되면 이젠 알람 없이도 눈이 떠진다. 김 씨는 “남편은 서울시 공무원으로 미화업무를 하는데, 같이 일찍 자고 새벽같이 나가니까 좋아. 그래도 아쉬운 건 평일엔 일찍 자야 하니까 친구들이랑 만나고 놀기 어렵다는 거.”

일터에 도착한 뒤부터 아침 7시에 쓰레기차가 홍보관 앞을 지나기까지 2시간 동안, 김 씨는 홍보관 1층과 2층의 쓰레기통을 모두 비운다. 다음날까지 쓰레기 봉지를 건물 앞에 둘 수 없기 때문에, 4시 반에 출근하고부터는 숨 쉴 틈도 없이 바쁘다. “홍보관은 강의실이 있는 다른 건물들과 달리, 늦은 밤까지도 학생들이 생활해서 쓰레기 양이 정말 많아.”

학생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길 중 하나인 참살이길도 새벽이 지나 날이 밝으면 언제 더러웠냐는 듯 말끔히 치워져 있다. 참살이길과 안암오거리의 미화업무를 맡고 있는 서울시 미화노동자 임욱일(남·55) 씨는 새벽 6시 전부터 빗자루로 거리를 쓸고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일을 한다. “30년 간 미화 일 하면서 성북구 이곳저곳을 다 해봤는데,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길은 특히 더 더러워지는 편이야.”

힘든 일이지만 30년씩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내와 자녀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친구들과 멀어지게 된 것은 꽤나 아쉽다고 그는 말했다. 가까운 친구 서너 명과 주말에 종종 만나곤 하지만, 평일에 늦게까지 어울려 노는 자리엔 가지 못한다. 임 씨가 졸업한 성북구 돈암초등학교 동창들끼리 만든 카카오톡 단체 방이 있는데, 그는 대화에 잘 참여하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평일 내내 일만 하는 데 동창들한테 말할 만한 사연도 없지. 그래도 친한 친구들이 주말에 전화라도 걸어주니 고마워.” 오전 업무를 끝마치고 잠시 얘기를 나누던 그는, 청소함이 뒤에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야간 편의점 직접 지키는 점장
오후 11시부터 오전 5시까지 편의점을 지키는 이는 점장이었다. 정경대 후문에 위치한 한 프랜차이즈 편의점 주인은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근심을 털어놨다. “편의점이 겉보기엔 사람들 많이 들어오고, 잘 되는 것 같지. 절대 아냐.” 직접 야간 일을 하지 않으면 이익이 날 수가 없는 구조라고 말한다. “회사는 물량 늘리려고 하지, 팔리지도 않는데 정해진 시간 되면 물류가 계속 들어와. 특히 겨울에는 음료수랑 과자가 잘 안 팔려서 심각한 적자야.” 건강 고민도 늦출 수 없다. 몇 년씩 밤을 지새워 오다 보니 혈액순환도 잘 안 된다. 건강검진을 최대한 자주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만성적인 고혈압을 달고 사는 그는, 마침 약 먹는 시간이라며 약과 함께 물을 한 컵 들이켰다.

7남매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을 다 넘겨받았다는 그는 서울로 상경해 동생들 학비를 직접 벌어서 댔다. 돈은 벌어야 하는데 공부도 하고 싶으니, 잠 잘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유년시절부터 서너 시간 자던 것이 몸에 배어 이렇게 편의점에서 밤을 지새울 수 있다고 했다.

늦게까지 깨어있느라 출출해서일까. 학생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라면과 커피를 사간다. 일찍 학교 나오는 길에 끼니 챙기려는 새벽 손님도 많다고 한다. “새벽에 오는 학생들 보면 객지 생활하면서 공부하던 어릴 때가 생각나.” 이야기를 마치며 남은 삼각 김밥을 봉지 한가득 기자에게 챙겨주는 그에게서 따듯함이 전해져왔다.

이요세피나 기자  kur@kukey.com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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