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영화 소재로 종종 사용되곤 한다. 최근에 개봉한 <나이트 크롤러(Night Crawler)>와 <제보자>는 기자와 PD, 그리고 언론 전반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 속에서 참 언론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김병호)이 주최한 ‘언론영화콘서트’가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사흘간 씨네큐브에서 열렸다. ‘나이트 크롤러’, ‘제보자’, ‘뱅뱅클럽’,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등 4개 영화를 상영하고 정지영 감독, 임순례 감독, 한학수 PD, 이희훈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강경래(언론대학원) 교수, 장성란 매거진 M 기자를 초청해 해당 영화와 언론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 28일 언론영화콘서트에서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과 진명현 모더레이터가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차정규 기자 regular@ |
특종이냐 취재 윤리냐
28일 상영한 ‘나이트 크롤러’는 특종과 취재 윤리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프리랜서 기자가 많다. 그렇기에 대중에게 보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와 영상을 내보내는 경향이 있다. 프리랜서로 사건을 좇는 주인공 루이스(제이크 질렌할 역)는 경쟁 끝에 동료를 저버리기도 하는 등 적나라한 취재 경쟁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브라질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토대로 했다. 사건 재연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떨어지자 프로그램 담당자가 청부 살인을 해 사건을 만들어 방송한 일이다.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은 1983년 작품인 ‘하얀 전쟁’에서 소들이 죽어있는 장면을 촬영했다. 베트남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장면을 재연하기 위해 살아있는 소를 죽인 것이다. 당시에는 생명 윤리에 대해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정 감독이 이를 깨달은 것은 몇 년이 지나 한 관객에게 ‘그 장면은 정말 소를 죽여 촬영한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나서였다. 정 감독은 “생명 윤리와 도덕성을 무시한 채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 치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정지영 감독은 특종에만 매달리는 기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사명의식만 있지, 객관적 윤리의식이 결여됐다면 취재 윤리를 무시하고 특종에만 혈안이 돼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정 감독은 ‘스턴트맨’이라는 영화를 소개했다. 위험한 장면을 찍으려다 스턴트맨을 죽음으로 모는 감독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정지영 감독은 “언론 윤리와 언론 선정성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했다.
진실을 판단하는 건 시청자의 몫
<제보자>는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을 밝혀낸 ‘PD수첩’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29일 참석한 <제보자>의 임순례 감독은 “언론인도 또 다른 제보자”라고 말했다. 영화상의 주인공은 제보자가 아니라 PD인데 왜 제목이 ‘제보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임 감독은 제목을 지은 영화 제작자 중 한 명이 ‘제보자란 진실에 눈을 감지 못하고 알리는 것이기에 언론인의 자질과도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제보자> 주인공 윤민철(박해일 역)의 실제 인물인 한학수 PD는 “제보를 받은 직후부터 두려움이 앞섰다”고 말했다. 영화 속 제보자 심민호(유연석 역)의 “진실이 먼저냐, 국익이 먼저냐”는 대사는 실제로 한학수 PD가 제보자에게 처음 들었던 말이다. 한학수 PD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국익”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사실을 파악하고 규명해야만 했다. 당시 이 취재의 총괄이었던 최승호 팀장은 한 PD에게 “법원에 반드시 갈 것이니 더욱 꼼꼼히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두렵고 험난했다. 서울대병원 쓰레기통에 버려진 줄기세포 배양 접시를 가져와 DNA 검사를 의뢰했다. 한 PD는 황 교수의 2번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DNA 결과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한학수 PD는 “그 때는 차라리 하나라도 진짜가 나오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학수 PD는 당시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황우석 교수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논문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인 <네이처(Nature)>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황우석 교수 지지자들은 PD수첩에 대한 보이콧 시위를 벌였다. 게시판에는 성난 군중의 글이 폭주했다. 한 일간지는 방송을 감행한 PD수첩에 대해 ‘황 교수를 죽이러 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언론영화콘서트에 참석한 한 여성은 “한 명의 영웅과 진실을 듣지 않는 무지한 대중이 나오는 장면을 보고 나 역시도 그러한 대중 중 하나인 것은 아닐까 두렵다”고 말했다. 임순례 감독은 대중이 우매해서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언론에 대한 신뢰도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가 성공적이었다는 언론 보도를 그만큼 믿어서라는 것이다. 임 감독은 “그래서 당시 진실을 파헤친 PD수첩은 언론사에서 더욱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수용자의 판단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PD수첩이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됐다는 방송을 내보냈을 때 이와 반대로 줄기세포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방송도 있었다. 사실을 선택하는 것은 스스로가 내려야 할 결정이라는 것이 임 감독과 한 PD의 공통된 생각이다. 임순례 감독은 “사실을 가지고 진실을 판단하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라며 “방송을 보고도 진실하지 않은 것을 믿는다면 그러한 판단을 내린 사람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한학수 PD는 “사실을 모아 진실을 반영하려고 늘 노력했지만, 본질적인 것을 끄집어냈는지에 대해서도 늘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좋은 보도 사진을 찍다는 것은
이희훈 오마이뉴스 사진기자는 ‘중요한 사건마다 순간을 포착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진을 찍어왔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눈을 치켜뜬 사진, 서남수 전 장관이 진도 세월호 현장에서 라면을 먹는 사진 등이 그의 사진이다. 2014년 한 해에만 월간 사진상을 7번 수상하기도 했다.
30일 언론영화콘서트에 참석한 이희훈 기자는 사진기자만의 힘든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사진 기자는 참사 현장을 눈앞에서 마주치더라도 감정을 숨기고 사진을 찍어야한다. 그렇기에 현장을 찍는 것은 부담스럽고 심정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다. 1년간 그가 취재해온 세월호 보도가 그랬다.
영화 ‘뱅뱅클럽’의 주인공 케빈 카터(테일러 키취 역)는 독수리와 수단 난민 소녀를 담은 사진으로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수단 난민에 대해 잘 포착한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지만, 죽어가는 소녀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기도 했다. 케빈 카터의 대사 중엔 ‘좋은 사진이란 질문을 남기는 사진’이라는 말이 있다. 이희훈 기자는 “그러면서도 사진기자들은 이 사진이 보도 윤리에 맞을지, 신문에 실을 수 있는 사진일지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기자의 노력이 중요한 탐사 보도
1일 상영한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에서 칼 맥카프리(러셀 크로우 역)과 델라 존스(레이첼 맥아담스 역)는 표면적인 사건을 보도하는데 그치지 않는 기자다. 사건에 숨겨진 음모와 정치적 내막을 파헤친다. 강경래 교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며 “내러티브 방식으로 접근해 정확도 높은 진실을 파헤치는 탐사 보도를 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탐사보도라는 방식 자체가 진실을 담아내는 보도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기자 본인이 모든 차원에서 사실을 담아 보도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장성란 매거진 M 기자는 “언론의 소명을 다하면서도 좋은 보도를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인의 과제”라고 말했다.
영화는 언론의 객관성과 기자의 주관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칼을 연기한 러셀 크로우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언론이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있을까”라며 “객관성과 기자 개인의 감정이 갈등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성란 기자는 인터뷰 할 때를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 갈등의 예시로 들었다.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상황적인 맥락과 감수성이 중요한데, 이 과정에서 기자의 주관이 개입하게 된다. 장성란 기자는 “기자의 기분과 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주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 영화는 온라인 매체가 등장하고 주목받기 시작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델라는 워싱턴 글로브의 온라인 블로그 기자다. 워싱턴 글로브 신문기자인 칼은 처음 델라를 가볍게 보지만, 편집장은 온라인 미디어만 흑자가 났다고 말한다. 온라인 매체는 정보를 바로 전달할 수 있고, 독자와의 빠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 독자 수가 보다 더 많아지는 추세다. 그렇기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강경래 교수는 심층 보도의 경우 신속성이 중요시되는 종이 매체가 보다 적합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인쇄되면 더 이상 수정할 수 없기에 기자의 책임감이 더 막중해진다”며 “종이 매체가 사라지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다루는 매체로 살아남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