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산부인과 체험을 위해 성신여대 근처의 한 산부인과를 찾았다. 입구는 출산 세미나, 태교 요가자세 등 ‘임산부’를 위한 홍보물이 가득했다. 쭈뼛거리며 산부인과로 들어서자 힐끔힐끔 기자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산부인과에는 출산을 앞둔 임산부는 많아도 20대는 한 명도 없었다. 접수 방식은 일반 병원과 조금 달랐다. 간호사는 남자 의사와 여자 의사 중 누구에게 진료를 받겠냐는 질문을 먼저 했다. 보통 학생들은 여자 의사에게 진료 받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자 의사는 대기인원이 두 명뿐이었지만 여자 의사는 대기 인원이 일곱 명이나 됐다. 체험이라는 목적에 맞게 남자 의사를 선택했다.
기자가 방문한 산부인과에는 본진에 앞서 예진이 있었다. 예진은 여자 의사가 담당했다. 어떻게 오게 됐냐는 질문에 질염기가 있고 생리통이 심하다고 답했다. 산부인과 방문 전 질염이 여성에게 감기처럼 흔한 질병이라는 게시글을 봤기 때문이다. 여자 의사는 조심스럽게 성관계 여부를 묻더니 웃으며 질염에 표시된 기록을 지웠다. “본인이 왜 질염이라고 생각하셨어요?” 게시물에서 본 증상대로 ‘냉이 많고 냄새가 나는데 인터넷에서 질염이라길래 왔다’고 답했다. 의사는 “인터넷에서 헛소리를 많이 한다”며 “질염의 주원인은 잦은 성관계인데 성관계가 없으면 단순히 냉이 많은 체질인 경우가 많아요”라고 일축했다.
예진이 끝난 후 5분여를 기다려 본진을 위해 진료실에 들어갔다. “생리통이 심해서 왔다”는 말에 의사는 “용기 있게 혼자 왔다”며 칭찬했다. 생리통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하며 초음파실에 들어갔다. 탈의실에서 검사용 치마를 입은 뒤 산부인과 의자에 앉았다. 치과 의자와 비슷하지만, 다리를 거치대에 올려 벌리는 일명 ‘굴욕의 자’다. 간호사가 시야를 커튼으로 가려 의사를 직접 바라보지 않은 채 검사를 할 수 있었다, 고통이 심할 것 같았던 초음파 검사는 의외로 거북한 느낌만 있을 뿐 별로 아프지 않았다. 남자 의사에 대한 거부감도 느끼지 못했다. 모니터를 통해 자궁 상황을 볼 수 있었고, 예상치 못했던 근종을 발견했다. 검사를 마치자 의사가 먼저 나간 뒤 간호사가 커튼을 걷었다. 진료실로 돌아와 초음파 검사 결과를 자세히 들었다. “생리통의 원인이 근종일 수도 있지만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어요. 생리통이 심할 땐 진통제를 하루에 4~5알 드세요” 진통제를 많이 먹으면 내성이 생긴다는 말을 ‘정설’처럼 들어온 탓에 기자에겐 낯선 진단이었다. 기자의 의아한 표정에 의사는 “약에 중독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라며 “생리통은 그냥 약을 먹고 안 아픈 게 낫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료비는 44500원이 나왔다. 불확실한 통증의 원인과 ‘진통제를 먹으라’는 처방에 지불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산부인과를 나서는데 진료 전 로비에서 기자를 빤히 바라보던 한민자(가명, 여·52) 씨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왜 기자를 주시했냐고 묻자 한민자 씨는 머쓱히 웃었다.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요즘 시대가 개방적이어서 젊은 여학생이 산부인과에 온다고 나쁘게 보진 않았는데 그래도 자꾸 보게 되대. 난 또 학생이 날 못 본 줄 알았지. 미안, 학생” 산부인과 방문에 대한 걱정은 문을 나서는 순간 앓던 이를 뽑은 듯 후련해졌다. 우리나라 여성에게 산부인과 방문은 ‘앓는 이’다. 직접 뽑아본 앓는 이 뽑기는 무서웠지만 피할 일은 아니었다.
박영일 기자 nulleins@kukey.com
고대신문 1729호(9월2일자)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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