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인(가명, 문과대 영문11) 씨는 대학 입학 초기 생리를 한 달 내내 했다. 인터넷으로 관련 키워드를 찾아봐도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달맞이종자유를 먹는 등 효과가 있다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절친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친구는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말했지만 혼자 가기엔 막연한 불안감이 들고, 비싼 진료비도 걱정됐다.
#. 정세영(가명, 성균관대 불문12) 씨는 4년 전 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특히 생리 시기 전후에 심한 고통을 느꼈다. 고3이라 예민해서 아픈 줄 알았을 뿐 산부인과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보건 선생님의 권유로 산부인과에 가서야 난소에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세영 씨는 수능을 2개월 앞두고 난소를 절제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지식in에게 진료받는 여대생
여성 질환이 가파른 증가 추세를 보임에도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찾는 여성은 여전히 적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발표에 따르면 자궁근종(자궁근육에 생기는 물혹으로 여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가임기에 주로 나타남)은 최근 4년간 21%의 증가세를 보이고, 4월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성매개 감염병 6종(매독,임질,클라미디아,연성하감,성기단순포진,첨규콘딜롬)도 9755건으로 2012년에 비해 4.5%(460건) 증가했다. 그러나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설문 결과 1294명 중 31.6%(406명)의 여성만이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고 있다. 대한암협회의 2008년 결과와 (29.7% 548명 중 162명)비슷한 수준이다.
조경인 씨는 “산부인과 출입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며 “산부인과의 대안으로 인터넷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상당수의 여성들이 조경인 씨처럼 산부인과 진찰 대신 인터넷 검색을 이용한다. 8월 29일 현재 검색엔진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에 올라온 573만1288건의 의료 상담 글 중 산부인과 관련 게시물은 110만7304건으로 의료 상담 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의료상담 카테고리의 질문글 평균치인 28만6564건의 약 4배다. 임인숙(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산부인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피하기 위한 익명 상담자가 많다고 할 수 있다”며 “의사와의 대면적 접촉이 불편해 온라인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산부인과 검진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네이버는 의료 상담 글을 의료전문가가 답변하는 시스템으로 운영 중이지만 같은 증상에 대한 진단조차 엇갈리기 일쑤다. ‘성관계 후 출혈’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의사들은 각기 ‘성관계로 인한 출혈’, ‘생리주기 변화’, ‘방광염’ 등으로 답했다. 전문가들의 답변이 엇갈리는 이유는 의사와 환자가 대면하지 못하고 글에만 의존해 답변했기 때문이다. 홍순철(의과대 의학과) 교수는 “인터넷 의료 서비스는 면담, 진찰, 검사, 시술로 이어지는 의료행위 중 면담에만 머무르는 데 한계가 있다”며 “한 증상에도 여러 원인이 있어 전문의가 제공하는 답변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임상적 판단을 요구할 때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은 우리나라의 산부인과 출입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김선행 이사장은 “한국 평균 초혼 연령이 31세인데 기혼자만 산부인과에 오고 20대 환자는 안 오는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의 경우 초등학생이든 노인이든 산부인과를 자유롭게 드나든다”며 “잠깐의 생리통에도 산부인과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산부인과
하지만 마음먹고 산부인과를 가려 해도 산부인과를 찾기는 쉽지 않다. 올해 정부가 분만취약지구를 선정해 산부인과가 없는 밀양시, 고흥군 등에 산부인과를 개원할 정도로 산부인과 부족은 심화되고 있다. 홍순철 교수는 “지금은 20대가 불편을 느끼지 못해도 출산을 앞둔 30대가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산부인과 부족 현상은 10년 이상의 장기적 시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북구청 고시에 따르면 본교가 위치한 성북구 내 산부인과 진료를 보는 병원은 38곳으로, 안암동에는 ‘고운숨결내과의원’과 ‘서울의원’, 본교 안암 병동 3곳이 산부인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명시됐으나 사실은 달랐다. 취재 결과 본교 안암 병동만 산부인과 일반진료가 가능했다. 여학생위원회 장주리 회장은 “일반 학생이 대학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의원에 가는 것보다 부담될 것”이라며 “산부인과가 적은 것은 안암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운숨결내과의원’과 ‘서울의원’은 산부인과 진료를 아예 실시하지 않는다. 고시된 38곳 중 산부인과 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은 22곳인데 이 중 일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14곳에 그쳤다. 이에 성북구 보건소 건강정책과 나선호 팀장은 “긴급한 상황에서 출산이 가능한 곳을 기준으로 해 38곳으로 고시했다”고 답했다.
비 임산부의 산부인과 출입을 부끄러워하는 사회 분위기도 넘어야 할 장벽이다. 산부인과의사회가 15세에서 45세의 여성 15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3%의 여성이 산부인과 전문의를 통해 얻은 정보를 신뢰하는데도 18%의 여성이 ‘부끄러워서’ 산부인과를 찾지 않았다.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여경씨는 “‘부끄럽다’는 답변은 단순히 감정적인 부끄러움을 넘어 성생활을 이야기 하고 성기를 드러내는 데 미숙한 사회문화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산부인과에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완화하고자 7월부터 ‘똑톡캠페인(Tok·Talk Campaign)’을 시작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마련된 똑톡캠페인은 산부인과 방문 경험이 없는 10대·20대를 대상으로 한다. 공식홈페이지(www.toktalkcampaign.com)에서 상담을 신청하면 근처 병원에서 무료로 최대 두 번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산부인과’라는 명칭을 ‘여성의학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도 진행됐다. 산부인과학회 김선행 이사장은 “기존의 산부인과라는 이름이 여성에게 ‘출산’을 위한 곳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며 “여성의학과라는 명칭으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박영일 기자 nulleins@kukey.com
일러스트| 홍유리 전문기자
기사원문 고대신문 1729호(9월2일자)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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