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왜 4년에 한 번씩 하나요?”
― 국내축구를 통해 보는 ‘기억되지 못하는 법’
2010 남아공월드컵이 1승 1무 2패의 성적으로 끝나고 2010 여자청소년월드컵이 4승 2패의 성적으로 마무리되며 한동안 축구 때문에 ‘대~한민국!’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특히 여자청소년대표 선수들은 역대 FIFA 공인대회 네 번째로 준결승까지 올랐고 FIFA 공인대회 두 번째로 3위를 기록하는 저력을 보였다. (FIFA 공인대회 첫 3위는 2009 클럽월드컵에서 포항 스틸러스가 해냈다) 정말 예뻤다. 염치불구하고 달려가 무작정 사랑한다고 프러포즈하고픈 선수도 있었다.
허정무 감독의 선수기용 문제 등으로 원정 16강의 목표치는 이뤘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남아공월드컵과는 달리 여자청소년월드컵은 2002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놀라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소연 선수는 ‘지메시’라 불리며 대회 6경기에서 8골을 퍼부었고 김나래 이현영 권은솜 서현숙 문소리 등 무명 선수들이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여자축구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가득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 훈훈한 분위기를 타며 특히 지소연 ․ 문소리 선수는 각종 매스컴을 타며 스타로 올라섰고 축구계에는 이 열기가 등록선수 1404명에 불과한 여자축구 발전에 한몫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쁜 생각으로 가득 찼었다.
WK리그의 여자축구단 수원 FMC의 경우는 '블랙로즈'라는 서포터즈도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뿐이라는 것이다. ⓒ 문화일보
하지만 역시 괜한 생각이었나 보다. 지역연고제 없이 월요일 밤 고양 ․ 당진 ․ 화천에서만 열리는 WK리그는 입장료가 무료임에도 1천여 명이 안 되는 관중들만이 경기장을 찾는다. 또 현재 지소연이 한양여대 소속으로 경기장에 나서고 있는 통일대기 여자축구대회도 머나먼 강원도에서 열린다는 이유로 쓸쓸한 분위기만 연출되고 있다. 여자축구팬이 되기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있어도 접근하기에 워낙 머나먼 존재가 여자축구이기에, 여자축구는 주인공이 결코 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여전히 아파하는 중이다. 지소연은 지‘메시’라는 이름을 좋든 싫든 늘 달아야 하고 문소리는 경기에 계속 주전으로 나서든 말든 ‘얼짱 골키퍼’라는 칭호만으로 사람들의 인식이 멈춰 설 태세다.
비단 여자축구만 이런 건 아니다. K리그도 그렇다. 사실 K리그는 여자축구에 비해서는 백 배 나은 상황이다. 야구에 치중된 언론들의 끊임없는 K리그 위기설 살포에도 불구하고 경기장마다 관중이 평균 1만여 명 정도는 기본으로 몰리고 있고 고정 팬들은 경기당 3골이나 터지는 K리그의 재미에 잔뜩 들떠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K리그는 국가대표 축구팀과 프로야구, 그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거의 가려진 상태다. 언론이 흥미롭게 물고 늘어질 K리그의 스타와 이야기를 캐지 않는 탓이다. K리그에 스타가 생겨도 그 선수가 국가대표로 뽑히면 얼마 안 가 그는 국가대표팀 선수로 기억되지 K리그를 이끄는 스타로 여겨지지 못한다. 윤빛가람을 대표팀의 황태자라고 부르지, 아무도 그를 경남의 황태자라고 부르지는 않잖은가. 선수는 주목받아도 그 선수를 키운 밥줄, 터전은 외면당한다.
지난 경남 대 전남의 K리그 경기가 열린 진주종합경기장에는 무려 25980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만원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언론은 아무도 없었다. ⓒ 다음 카페 아이러브사커 Footballism
세상에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만 한 차례 대박을 쳐서 자기 이름을 잠깐 세상에 확 알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잊히는 존재도 꽤 있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우리 국내축구가 딱 후자의 입장이다. 아쉽고 안타깝다. 사람들도 보면 하나의 이미지가 어느 순간 그대로 고정되어버려서 돌이키지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미지 회복에 실패하면 결국 고정된 생각을 지닌 다른 이들과 멀어지는 일을 택할 수밖에 없고 말이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상실감을 겪고 우울을 느낀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 꼴이 났을까 하며 좌절하며 아예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더욱 슬퍼지는 것이다. 이는 암만 마음이 약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스스로 누군가를 잊는 방법은 어려울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잊히는 방법은 너무 쉽다. 그 중 하나가 뭐냐면, 소위 ‘잠수를 타면’ 된다. 어디를 가도 당신을 볼 수 없고 당신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면 된다. 그리고 멈춰서면 된다. 옛날에 암만 뛰어난 성과를 거둬 이름을 날렸다 해도 그 기억을 지속시킬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스스로 내놓지 못하거나 내놓고 싶어도 누가 찾아서 떠벌려주지 않으면 빨리 잊힐 수 있다. 애석하지만 그렇다. 이것이 ‘망각의 동물’이라 하는 인간의 세계다. 기억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출이 필요하다. 그래서 월요일을 빼고 매일 하는 프로야구가 유리한 거고 경기 며칠 전부터 집중적으로 선수들의 훈련 모습이 늘 방송에 나오는 국가대표팀이 유리한 것이다. 그러니까 몇몇 연예인들이 꼭 월드컵 때 나와서 “왜 축구는 4년에 한 번 하는 걸까요?” 라며 안타까워한단 말이다.
여자축구도 그렇고 남자축구도 그렇고 여러분도 사실 다, 주인공이 될 가치는 충분하다. 뭐든 간에 자리를 비집고 오르는 것이 중요하고 힘들게 오른 자리를 지키는 일이 문제가 아닐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도움 없이는 스스로 능력이 된다 해도 주인공의 자리에 결코 오를 수가 없다. 주인공이 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지만 주인공을 만드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 오늘부로 '저니스의 산책끝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언니네이발관이 만든 동명 노래에서 이 코너 이름을 따왔는데요. ㅋㅋ 이 노래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 가사를 인용해서 설명하자면 '미안하지만 이번엔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가급적) 월요일마다요. 다양한 얘기 함께 추격해보아요. >_<
월요일마다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