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축구팬은 마냥 X줄 타게 신났다!
―국내축구 빅3 경기 돌아보기
시험이 끝났다. 물론 대체과제라는 복병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간고사는 끝이 났다. 그런데 시험 기간에 맞춰 축구팀들도 큰 시험을 치렀다. 성남은 도쿄로 갈 자격증을 얻기 위해 AFC 챔피언스리그를, 여자축구대표팀은 아시안게임을 위한 모의고사로 피스퀸컵을 치렀다. 부산과 수원도 AFC 챔피언스리그를 치르기 위해 FA컵 결승에서 만났다. 일주일에 준결승 이상의 경기들이 무려 세 경기나 치러진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본인의 중간고사보다 남의 자격증 시험에 더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숨겨왔던 나의...! ⓒ 뉴시스
중간고사가 말 그대로 한창이던 지난 수요일, 필자는 생활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선후배들의 눈치를 보며 한구석에서 텔레비전을 켜고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보았다. 소리를 작게 하고 (음소거는 하지 않았다. 죄송하다.) 최대한 정적을 지키며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지나갈 때마다 소파에 얹힌 내 몸은 자꾸만 들썩거렸다. 그만큼 재미있는 경기였다. 간만에 탄천종합운동장도 만원으로 가득 차 준결승다운 분위기가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물씬 풍겨났다. 성일여고 학생들도 많이 왔다는데, SBS스포츠 중계진이 관중석을 많이 찍어주지 않아서 아쉬웠다.
재미있는 경기였던 만큼 극적인 순간도 많이 드러난 경기였다. 전반전은 조동건의 멋진 골과 함께 거의 성남이 얄샤밥을 가지고 노는 양상이었지만 후반 들어서 알샤밥의 공세가 거세지며 보는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거기에 ‘송메시’라 불리는 송호영이 결정적인 골 찬스를 두 개나 놓치면서 웬만한 드라마 뺨치게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았다. 원정 다득점으로 앞서고 있었지만 한 골만 먹으면 합계 4-5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불과 몇 주 전에 결정적인 골찬스를 날려 조바한에게 승리를 내준 설기현이 오버랩되기까지 했다.
그래도 성남은 정성룡의 선방과 홍철-조병국-사샤-고재성 라인의 짠물수비에 힘입어 도쿄에서 열리는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당당히 진출했다. 준결승 경기를 위해 특별히 대표팀을 상징하는 빨간 바지를 걸친 것이 효과를 맛본 순간이었다. 역시 성남은 예능축구다. 경고누적으로 결승진출에 실패한 라돈치치의 눈물과 성남의 결승진출에도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만을 주로 다룬 스포츠뉴스들은 왠지 모를 허함을 안겨줬다.
그 날, 내 곁을 참 많이 스쳐지나간 그녀... 박희영 +_+ ⓒ 조이뉴스24
토요일에 열린 피스퀸컵 결승전은 특별히 수원월드컵경기장(이하 빅버드)으로 직접 가서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이벤트 하나에 당첨되어서 공짜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가자고 했던 친구는 지난 날 술을 먹고 잠들어버려서 나 혼자 누룩이 숙성되듯 북적거리는 조치원역에서 무궁화호 입석 티켓을 끊고 빅버드까지 가야 했다. 11시에 출발했음에도 빅버드에 도착한 시각은 1시. 그 와중에 이벤트 당첨자들을 위한 매표소를 찾지 못해 거의 경기장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빅버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운 좋게 E석 맨 앞에서 두 번째 줄 가운데 자리에 앉은 나는 수원의 동네 아저씨들과 뚱뚱한 초등학생들 틈에 끼어 진지하게 경기를 지켜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호주 선수들의 외모였다. 세상에. 어찌나 다들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던지.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한국 선수들이 더 멋지고 예뻐 보였다. 모델같은 신체를 자랑하지만 막상 개인기량은 부족했던 호주에 비해 한국은 빠른 스피드와 아기자기한 개인기로 상대를 농락했다. 특히 이번 경기에서 공격의 선봉에 선 전가을과 박희영은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빅버드를 찾은 만여 명의 관중들에게 최고의 플레이를 선사했다. 결국 경기는 김나래와 전가을의 골로 2-1 승리.
다만 75분쯤 들어 승기를 굳힌 한국 선수들 몇몇이 대놓고 시간을 끄는 플레이를 펼친 점은 옥의 티로 남았다. 공이 나가 던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류지은 선수는 공을 가지러 뛰어가지도 않았고 공을 들고도 한참을 있다가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화가 난 호주 선수는 직접 공을 가져다주며 빨리 던지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중동의 침대축구를 욕하던 것들이 생각나 잠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튼 ‘예쁜’ 여자축구경기를 처음으로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역시 우승은 팬들과 함께 나누는 것 ⓒ 골닷컴
성남과 수원에 이어 일요일에는 부산에서 큰 경기가 열렸다. 바로 부산과 수원의 하나은행 FA컵 2010 결승전. 오늘 서울에서 열리는 언니네이발관 월요병콘서트 때문에 직관을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지지난 주 세종인 님의 진심어린 충고(!)로 텔레비전 중계를 보기로 마음을 먹고 생활도서관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KBS1TV는 경기가 시작할 4시가 다 되어서까지 ‘명작 스캔들’이라는 프로그램을 계속 방영하고 있었다. 이거 이러다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방송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라고 하지는 않을까, 살짝 불안했다. 이것 때문만이라도 연장전으로 결코 가서는 안 될 승부였다. (실제로 KBS1TV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급하게 중계방송을 끊어버렸다.)
축구 보기에는 최악의 경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무려 3만여 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가변좌석은 물론 저 멀리 있는 원래 좌석 2층에도 사람들이 경기를 보기 위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다 수원 서포터즈들은 코레일에서 특별히 마련해준 KTX를 타고 천 명 가까이 내려와 응원했다.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팀을 가리는 대회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뉴스에는 거의 F1 코리아 그랑프리만 메인으로 붕 떠 있었다. 필자도 하프타임에 5시뉴스를 보여주는 KBS1TV를 뒤로하고 잠깐 F1을 봤는데, 재미있더라.
그곳에서 부산과 수원은 그들대로 팬들을 위해 치열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비가 온 탓인지 자잘한 실수가 조금씩 있기는 했지만 두 팀 모두 공격적인 플레이로 경기에 임했다. 90분 동안 전반전은 수원이, 후반전은 부산이 가져가는 양상이었다. 전반에는 리웨이펑과 염기훈, 신영록이 위협적이었다. 특히 김두현과 신영록이 부산의 골문을 쉼 없이 두드렸다. 반면 후반에는 부산이 무서웠다. 캡틴 박진섭은 터프한 모습을 뽐내며 부산에게 힘을 북돋았고 후반에 교체되어 들어온 한상운의 킥도 놀라웠다. 이렇게 경기를 양분한 두 팀이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부산에게는 골이 없었다. 25분에 터진 염기훈의 왼발 결승골 단 하나로 수원은 FA컵 2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내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대시만 많이 하기보다는 확실하게 고백을 해야 사랑을 차지할 수 있나보다.
여기에 나는 심심하던 차에 덤으로 저녁에 열린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도 시청했다. 무시무시한 올드펌 더비, 셀틱과 레인저스의 경기였다. 말 그대로 두 팀의 경기는 한 눈에 보기에도 ‘지면 죽는다.’ 라는 말이 떠오를 만한 경기였다. 화끈한 플레이로 관중들을 흥분시켰고 살인태클도 자주 나왔다. 기성용도 벌써 셀틱맨이 다 된 듯 레인저스 선수와 서로 밀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원정팀 레인저스의 3-1 승리로 경기는 끝났지만 왠지 모를 살벌한 아우라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더비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축구같이 구수하고 훈훈한 맛은 떨어져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