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도 우리를 대표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내 주관대로 뽑아본 ‘대표팀에 없지만 실력이 국가대표급인 젊은 축구선수’
이제 내일이면 대한민국 대 이란의 국가대표팀 친선 축구경기가 열린다. 나는 이번 경기가 내가 군대에 들어가기 전 직접 볼 수 있는 마지막 A매치 경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덜컥 친구들을 꼬드겨 각 3만원에 달하는 입장권을 세 장이나 예매하고 말았다. 그래서 내일 전공수업이 끝나자마자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다. 이렇게까지 가는데 만약에 대한민국 대표팀이 진다면? 상암벌에서 나 무슨 짓할지 모른다. 부디 스스로에게 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조광래호가 2기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다는 선수들이 또 늘어났다. 아약스에서 아직은 후보지만 축구를 향한 잠재력만큼은 인정받고 있는 석현준, 그리고 윤빛가람에 이어 조광래 유치원 멤버 중 하나로 경남의 수비를 이끌고 있는 김주영이 그들이다. 이렇게 새로운 인물들이 대표팀에 오른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만큼 한국축구가 정체되지 않고 계속 대가 이어지며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없지만 국내에서 톱클래스를 달리고 있는 젊고 좋은 선수들이 정말 많다. 전 국민의 응원을 받지는 못해도 자신이 뛰고 있는 클럽에서 뛰어난 능력으로 엄청난 사랑을 차지하는 선수가 꼭 어디든 있단 말이다. 그 중에서도 내 생각에 ‘이 선수는 당장 대표팀 베스트 일레븐으로 뛰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선수들을 다섯 명만 꼽아봤다.
이 선수, 괜히 '최투지'가 아니다 ⓒ 엑스포츠뉴스
5위. 최철순 (전북 모터스)
허정무호에 국내파 대표로 몇 차례 승선했으나 태극마크를 제대로 달아본 기억은 없는 선수지만 전북에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측면 수비수다. 최강희 감독의 지휘 하에 전북은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2009 K리그 우승을 따내며 강팀의 면모를 갖춘 클럽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이 상승세의 숨은 공신이 최철순이라고 할 수 있다. 최철순은 특유의 뚝심과 강인한 전투력으로 상대팀의 측면을 꽁꽁 묶는 역할을 한다. 최철순의 투지와 수비력은 상대방을 힘들게 할 수밖에 없다. 수비력 하나만은 정말 대단한 풀백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최철순보다 좋은 풀백이 워낙 많다. 때문에 태극마크가 가까이하기엔 너무도 먼, 안타까운 운명에 놓인 선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보라. 가시마 응원단이 그 앞에서 절망하는 모습을 ⓒ 뉴시스
4위. 신화용 (포항 스틸러스)
국가대표 부동의 넘버 원 이운재 선수가 은퇴하면서 대한민국 골키퍼는 이제 정성룡이 1인자, 김영광이 2인자가 되었다. ‘이제 넘버 쓰리 골키퍼는 과연 누가 될까?’ 하는 궁금증도 이에 따라 생겨났는데, 나는 신화용 골키퍼에 주목하고 싶다. 그는 파리아스 전 포항 감독이 한창 ‘파리아스 매직’으로 스틸러스 웨이를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을 때 K리그 최고급 센터백 듀오였던 황재원-김형일과 함께 최후방을 거뜬히 지켜냈던 선수다. 2009년에는 0점대에 가까운 실점율로 리그컵 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밑거름이 되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운재를 제치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도 뽑힌 바 있다. 비록 올해는 20경기에 35실점을 거두며 저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포항의 조직력만 살아난다면 신화용의 개인 능력을 다시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다만 조광래 감독이 제 3의 골키퍼로 일본 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 유망주 골키퍼를 주시하고 있다는 설이 있어 아직 두고 봐야 할 듯하다.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폭삭 늙었다. 하지만 ⓒ 엑스포츠뉴스
3위. 신영록 (수원 블루윙즈)
2007 청소년월드컵 때 ‘이보다 축구를 재미있게 하는 대표팀이 있었나?’ 할 만큼 화려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이 뛰었다. 이 대회 이후 떠오른 선수가 바로 ‘쌍용’ 기성용과 이청용 선수인데, 신영록은 이들만큼 주목을 계속 받지는 못했다. 청대가 16강에 진출할 결정적인 골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터키 부르사스포르로 이적해 해외진출을 하긴 했지만 금전적 문제 등으로 마음에 상처만 입고 돌아와 ‘이제 영록바의 시대는 간 것일까?’ 하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수원에 돌아온 이후 다카하라 호세모따 등과 함께 윤성효호를 대표하는 대포로 자리매김하며 슬슬 그의 본능을 폭발시킬 채비를 하고 있다. 당장 아시안컵 무대에서 뛰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대로라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제주에 이들이 없었다면? ⓒ 엑스포츠뉴스
2위. 구자철 (제주 유나이티드)
내 개인적인 생각, ‘대체 왜 이 선수가 안 뽑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선수는 사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그 첫 번째로 제주의 중심을 굳건히 다스리고 있는 구자철이다. 2009년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이 8강까지 오르면서 주가를 제대로 높인 선수가 김민우, 김보경, 구자철, 박주호, 이승렬 등이었다. 이 중 구자철은 청소년 대표팀의 팀플레이를 이끈 대표적인 선수였다. 그의 넓은 시야와 경기를 주도하는 능력은 제주도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며, 캡틴 김은중과 함께 평균관중 4000명에 중하위권만 오가던 제주를 무려 리그 선두권으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막상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청소년대표는 김보경과 이승렬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국가대표의 또 다른 옵션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구자철이 태극마크를 달고 패스를 뿌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제 호랑이도 좀 물어야지! ⓒ 스포탈코리아
1위. 유병수 (인천 유나이티드)
나뿐만 아니라 듀어든까지도, 그 외 다수 국내축구팬들이 ‘왜 이 선수가 안 뽑히지?’ 라는 의문을 남기게 만드는 가장 큰 선수가 바로 유병수다. ‘인천의 호날두’라 불리며 데뷔하자마자 인천의 공격을 책임지며 모든 방법으로 골을 넣었던 선수다. ‘내셔널리그의 괴물’ 중고신인 김영후만 없었다면 지난해 K리그 신인왕은 당연히 유병수의 독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는 국내파 공격수 중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으며 스스로 강력한 화포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대표팀 경력은 지난 허정무호 때 오만과 붙은 경기에서 잠깐 뛴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공식 A매치로 기록되지 못해 그의 국가대표 경력은 없다. K리그 최고의 공격수가 왜 국가대표가 되지 못할까? 최근 인천 감독으로 취임한 허정무 감독이 “유병수는 몰아치기에는 능할지 몰라도 매 경기마다 상대에게 위협을 주는 공격수가 아니다.” 라고 말하며 아직 보완해야 할 단점이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조금만 더 성장한다면 분명 유병수는 K리그에서뿐만 아니라 국가대표로서도 유니폼의 엠블럼을 입에 무는 골 뒤풀이를 펼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이 이야기를 축구카페가 아니라 대학교 커뮤니티 쿠플존에다 하는 이유,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나?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여러분 앞에서 축구에 관해 아는 척하고 싶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둘째, 이 세상에는 국가대표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다. 꼭 나라를 대표해야만 최고라는 법 없다. 시험을 잘 쳤지만 상대평가 때문에 B+를 받는 아픔을 겪더라도 공부 잘 했다는 사실이 어딘가로 휑하니 날아가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그 가치마저 사라지지는 않는단 말이다.
아, 나의 생각만 가득 들어간 베스트 5 선정이기에 다른 팬 입장에서는 ‘왜 쟤를 뽑았지? 쟤보다는 걔가 훨씬 나은데!’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견, 그런 댓글, 열렬히 환영한다. 사실 나도 K리그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결코 아니고 나의 고향에는 K리그 클럽이 없는 탓에 매주 경기를 보지 못하는 한계가 따르는 인간이다. 혹시 K리그를 사랑하는 쿠플러가 있다면 댓글로 선수 자랑 좀 해줘라. 이 글이 K리그의 뛰어난 축구선수들을 더 알고 함께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등만 고집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에게 먼저 박수를 보내는 건 어떨까? (그러니까 총학생회는 프리컬쳐 캠페인의 일환으로 FA컵 결승전 티켓을 쿠플존 식구들에게 촥촥 뿌려 달라! 뿌려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