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올챙이를 생각하자
―청소년 문제, 우리도 해결사가 되어야
이번 '산책끝추격전'에는 그동안 다뤄왔던 주제들과는 좀 다른 이야기를 들고 나와봤어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가을방학 때 간만에 모교를 방문했거든요. 그리고 제가 몸담고 있는 청소년 단체 후배들도 만났어요. 아이들은 저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큰형처럼 친밀하게 저를 대해줬지요. (정말이에요. 적어도 대학교 후배보다 훨씬 귀여워요.) 모교를 방문하고 청소년 단체 일을 도우면서 ‘참 내가 다니던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아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케이블을 통해 인디아나 존스 4를 시청했어요. 정주행을 해버릴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막상 그러자니 눈에 무리가 갈 듯 해서요. 아무튼 영화를 보면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와 머트 윌리엄스(샤이아 라보프)가 대화를 나눌 때 존스가 처음에는 그럽니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되지 뭐.” 하지만 머트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자 태도가 180도 바뀌죠. “대학 복학해서 무조건 졸업해!” 흠. 우리도 이렇지는 않은지요? 물론 우리에게는 자식이 없지만, 자식 말고 동생들, 다른 청소년들에게 말이죠.
쉬는 시간만 되면 자는 모습, 우리나라 청소년의 상징이 되어야 할까
우리 모두 청소년기를 겪었어요. 초등학교까지 무려 12년 동안 주입식 제도권 교육 아래 가득 인내하고 수많은 줄 세우기 시험들을 이겨내며 이 자리까지(?) 올랐지요. 대한민국의 제도권 중고등교육에서 해방된 우리들은 그것을 충분히 즐길 자격이 됩니다. 그러니까 마음껏 사발식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동생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통계를 내보고 싶군요.
실상이 그러합니다. 다들 대학교에서 벌어지는 더욱 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고 생각을 실천한다는 대학생들도 주로 대학교 등록금 문제나 사회의 문제에 시선을 두고 고생을 하지요. 지금 와서 청소년 문제를 보라 하면 ‘에이, 저거 다 내가 왕년에 겪었던 것들인데 뭐.’ 이렇게 말하고 돌아설 뿐입니다. 조금 더 감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들도 위에서부터 제도를 어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어찌할 줄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리죠.
교육 현실이 날로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교과부는 말만 뻔지르르하면서 결국 과거처럼 국영수만 늘릴 계획이 눈에 빤히 보이고요. 학교에서의 학생 통제도 다시금 심해진다고 합니다. 어느 곳에서는 당분간 사회 과목 교사를 충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녔던 모교에서는 이제 교복을 갖추지 않으면 급식소에도 못 들어가게 한다더군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도 보였습니다. 여전히 ‘복장 단정=학습 능력 향상’의 공식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교 밖의 청소년 단체는 자유로울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교실에 담임선생님이 있듯이 청소년 단체마다 담당선생님들이 따로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계발하는 단체라면 그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도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청소년단체에 몸을 담음으로써 느낀 바에 따르면, 안 그렇습니다. 담당선생님들은 담임선생님만큼, 아니 그 이상의 강제성을 지니고 있고요. 청소년들이 활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담당선생님들의 사업에 청소년들을 유치하는 것만 같은 경향이 계속됩니다. 단체 내에서 회의는 청소년들 스스로 하더라도 그 맨 꼭대기에 담당선생님이 떡 하니 앉아서 노려보는 꼴이죠.
왜일까요?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여 올바른 결과를 만들 줄 아는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그렇게 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바로 여태껏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내버려두지 않고 이처럼 일방적인 교육을 계속해와서입니다. 청소년들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생각으로, ‘우리가 더 많이 알기 때문에 저 아이들을 계몽하여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이런 허황된 생각 때문에 악순환은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 고리를 끊어야 청소년들은 진짜 인격체가 될 수 있습니다.
시청 관계자들과 정치인들이 청소년들의 축제에서까지 앞자리를 차지할 이유가 있나 ⓒ 동북아청소년협의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그 지옥 같은 세계에서 빠져나온 후 마냥 즐거워만 하며 술을 마시며 놀러 다니고 때로는 토론을 했습니다. 학창시절은 그저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음주가무와 함께 회포를 풀 추억에 불과하죠. ‘그 땐 그랬지. 걔네들도 힘들겠지만 나중에 오면 우리처럼 이럴 거야.’ 이렇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마냥 수동적인 청소년들의 세상은 안타까운 현실이고 바꿔야 할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앞만 보지 말고 좌우를 고루 볼 줄 아는 대학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래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학교에서 청소년 단체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대학생들이 나서야 합니다. 입시 과외에 팔을 걷어붙이는 대신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고픈 청소년들을 위해 우리가 대학에서 배운 바를 총동원해야 합니다. 대학생들이 청소년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청소년들이 존엄한 인격체로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는 겁니다. 이것은 좁게 보자면 ‘더욱 생각 깊은 후배들’을 보기 위한 방편이며, 크게 보자면 지금의 주입식 제도권 교육 체계를 과감히 바꾸는 연대로 나아가고 이것은 곧 사회 전체에도 젊은 바람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 일은 어쩌면 대학생이 사회에 나가서 위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때는 대학생밖에 투쟁할 사람들이 없어서 대학생이 중심이 되어 꽃을 피웠습니다. 지금은 민주노조와 시민단체가 많이 활성화되어 있지요. 그렇지만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키는 조금이라도 먼저 그런 시절을 겪어본 대학생들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성적의 지배를 받는 청소년들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개방적인 선생님들도 결국은 성적을 올리라는 윗사람들의 압박에 자유롭지 못하지요. 이들에게 가장 꿀릴 것 없이 뜻을 드높일 수 있는 이들은 대학생입니다. 조금이라도 여유 있고 힘이 되는 사람들이 뒤에서 받쳐줄 때 더욱 기를 얻고 강해질 수 있습니다.
올해 여자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은 여자 U-20 월드컵 3위에 이어 여자 U-17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990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여자축구가 시작되었을 때 아픔을 겪은 선배들이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생각의 틀을 깨고 20년간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실행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지금 나타난 황금세대는 앞으로 여자축구에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라고 ‘황금세대’를 못 키우리란 법 없습니다. 우리, 올챙이를 생각할 줄 아는 개구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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