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 그러나 숙주를 만나는 순간 모든 존재하는 것을 무너트릴 수도 있는 절대 권력자!
선과 악의 구별 없이 무자비하게 칼날을 휘두르는 이 절대 권력자의 지속적인 출현으로 지금 인류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 1. 에볼라 바이러스, 2. 메르스, 3. 지카바이러스. 인류를 위협할 다음 바이러스는 무엇일까 사진출처 | 미국질병관리본부 |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작아 현미경으로도 관찰되지 않는 매우 작은 감염성 입자로 유전정보는 DNA나 RNA에 담겨있다. 특히 최근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에볼라, 메르스, 조류 인플루엔자, 지카 바이러스는 모두 RNA 바이러스이다. RNA 유전자는 DNA와 달리 유전자가 복제될 때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이를 원래대로 교정하지 않고 자손 RNA 유전자에 그대로 남겨진다. 이로 인해 선대 바이러스가 수십억 년간 지구 상에 존재하며 숙주와의 끊임없는 공생진화 및 투쟁 속에 쟁취한 중요 생존전략 메시지를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바보 같은 RNA 바이러스의 유전적 속성이 위기 상황 시에는 오히려 빛을 발하는 스마트한 전략이 되곤 한다. 부모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반항아와 같은 이런 유전적 속성이 생존을 위협하는 변화무쌍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상황에 맞게 변신시키는 능력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이 “어디서 저런 돌연변이가 나와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는가” 하시는 푸념을 듣고 자란 경험이 있다. 부모 세대와 다른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자식을 생각한다면 RNA 바이러스의 속성을 알아두는 것도 부모에겐 하나의 현명한 자녀교육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생존을 위해서 바이러스는 반드시 숙주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숙주의 종류에 따라 바이러스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고, 숙주의 서식지 환경에 따라 바이러스의 지역적 분포가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전 세계는 글로벌화에 의한 국가 간 교통량의 증대로 교류의 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어, 2015년 국내에 발생, 국가적 위기사태를 유발한 메르스 바이러스처럼 국내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바이러스가 해외로부터 국내로 유입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WHO는 최근 인류 위협 8대 바이러스 전염병(크림-콩고 출혈열(Crimean-Congo hemorrhagic fever), 에볼라(Ebola), 마버그(Marburg), 사스(SARS), 메르스(MERS), 니파(Nipah), 라사열(Lassa fever), 리프트밸리열(Rift Valley fever))을 선정하여 이들 감염병에 대한 진단기술,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진단기술,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시기에 이런 바이러스가 국내로 유입된다면 메르스 사태와 같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최근 남미지역 신생아 소두증 발생과 관련성이 높다고 알려진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국제보건기구(WHO)는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이란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특히 지카 바이러스 감염이 주로 발생하고 있는 브라질은 매개 모기가 번성하는 시기인 올해 8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올림픽이 열려 더욱 지카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림픽 참가 선수와 관련 인원들이 올림픽 기간 동안 브라질에 체류할 예정이기 때문에 관련 정부부처들은 지카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에 대비하고, 올림픽이 끝난 후 이들의 귀국 대응책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는 지카 바이러스용 신속 현장 진단키트와 확진용 진단제품이 개발되지 않아,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지카 바이러스 항원/항체 및 유전자 기반의 진단키트 개발에 연구비를 투자했다. 이 연구사업을 통해 올림픽 이전에 유전자 기반 진단시스템이라도 구축되어 귀국자 중 감염자를 선별해내는 시스템이 갖춰지길 희망한다.
인플루엔자, 메르스 등은 호흡기 경로로 전파되어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 반면, 지카 바이러스는 이집트숲모기에 의해 바이러스가 매개되는 것으로 이 숲모기의 서식 여부가 바이러스 감염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지카 바이러스 매개 숲모기는 온도조절 능력이 없고 기후변화에 매우 민감해 아직 국내에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이와 유사한 흰줄숲모기의 서식은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국내 남해안은 아열대성 기후 특성을 보이고 있어 지카 바이러스의 매개 모기인 이집트숲모기의 유입 가능성에 대비 모기의 서식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상시 감시체계는 반드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작년 메르스 사태 이전에는 국내에 발생하지 않은 바이러스 감염병 분야에 대한 R&D를 장려하고 국가방역체계를 마련하자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메르스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 이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며 신, 변종 바이러스의 유입에 대비 효과적으로 확산을 저지할 수 있는 정부주도 정책과 이를 보완할 법령들이 사전에 철저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부처별로 진행되고 있는 감염병 정책들을 하나로 통합한 ‘국가 R&D 역량을 활용한 감염병 대응체계 강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방안에는 ‘국가 감염병 관련 R&D 컨트롤 타워’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이 구성되어 현재 각 부처별로 진행되고 있는 감염병 관련 R&D 투자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R&D 투자 효율화 방안을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신속한 감염병 대응, 관리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이 메르스 사태에서 나타났던 국가방역체계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신종감염병 대응 국가방역체계’를 새로이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이 두 개의 컨트롤 타워는 정보공유를 통해 서로 연계·협력할 수 있는 추진체계를 갖도록 구성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컨트롤 타워 조직을 전문적으로 관리, 운영할 수 있는 감염병 전문인력들이 국내에 많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해 우선적으로 이 분야 전문인력을 많이 양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감염병 전문인력을 효율적으로 양성할 민간 주도의 ‘감염병 전문대학원’ 설립 또는 정부 주도의 감염병 전문인력 양성기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각 부처에서 개별로 진행하고 있는 감염병 R&D 정책을 하나로 통합하여 이들 모두를 총괄하는 조직 구성, 메르스 사태에서 보인 방역 관련 문제점을 보완한 국가방역체계 개편, 그리고 감염병 전문인력 양성기관의 구축은 결국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감염병 걱정 없는 안전한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는데 많은 기여를 할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박만성 본교 교수 의과대 미생물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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