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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지하도에는 노숙인이 있다. 팔 하나가 채 되지 않는 간격으로 빽빽이 놓여있는 박스 위에선 저마다의 세상이 펼쳐진다. 일본어로 된 책을 읽는 사람, 신문 넘기는 사람,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사람까지. 바닥에는 먹지 않은 채 남아있는 빵과 우유가 있다. 오랜 영양부족과 치과질환에 시달리다 보면 먹을 것이 앞에 있어도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노란 조끼나 수녀복을 입은 봉사자들이 곁에 다가가 필요한 물건은 없는지 물어보고, 먹을 것도 나눠준다. 

  서울역 구 역사 앞에 위치한 서울시 다시서기센터에서는 서울역과 용산역을 중심으로 아웃리치를 진행하고 있다. 아웃리치란 거리 현장에서 상담사가 노숙인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노숙인의 욕구와 실태를 파악하는 활동이다. 총 6차례, 12시간에 거친 야간 아웃리치를 동행하며 거리 노숙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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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역 뒤편에 있는 텐트촌에선 노숙인들이 각자 집을 짓고 살아간다. 사진 | 조현제 기자 aleph@

 

노숙인도 인권이 있다
  아웃리치에 동행한 첫 날, 서울역 광장 중앙에서 만난 노숙인은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모으고 있었다. 그는 밝게 웃으며 상담사를 맞이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불편하신 데는 없으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몸은 괜찮습니다.”

  상담을 하는 데 있어서는 노숙인과 상담사가 장기간에 걸쳐 서로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숙인을 만나면 곧바로 입소나 치료를 권하기보다는 먼저 일상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형성한다. 친해지기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상담 과정에서 노숙인과 상담사는 서로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데, 이는 상대방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데서 시작된다.

  노숙인도 자신의 사적인 공간과 사생활을 인정받고, 보호받기를 원한다. 용산역 구름다리 아래 공원 끝자락에는 키 큰 나무들이 어우러져 만든 작은 숲에 가려진 노숙인촌이 있다. 여기엔 텐트나 박스를 여러 겹 덧대어 만든 집이 20채 정도 있다. 노숙인들은 여기서 빨래도 널고, 간단한 취사도 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텐트와 박스는 진짜 ‘집’이다. 사적이고 배타적인 주거공간이다. 그래서 상담사가 허락 없이 텐트 문을 열거나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 함께한 아웃리치 상담사가 노숙인촌의 입구 쪽에 위치한 텐트의 문을 열자,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한 노숙인이 손을 내젓는다. 

  “선생님, 텐트 문 함부로 여시면 안돼요. 아파트에서도 문 열고 들어오면 난리 치며 뛰어나올 텐데, 똑같죠. 볼 일이 있으면 밖에서 먼저 얘기하셔요.”

  상담사는 조심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지난 해 겨울에 이 곳 용산역 텐트촌에서 동사한 노숙인 두 명이 뒤늦게 발견됐다. 누군가 주기적으로 텐트나 상자 속에 들어가 생사를 확인해보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욕구에 맞는 지원 이뤄져야
  노숙인에게 거리는 떠나고 싶은 암울한 공간일 수 있지만, 도피처일 수도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 ‘노숙인을 거리에서 구제해야 한다’, ‘시설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제된 접근은 상대방 노숙자의 반감을 살 수 있다. 

  거리에서 지내는 이들은 몸이 아프지 않으면 대부분 일용직 근로, 아르바이트, 자활근로 등으로 돈을 모은다. 자활근로란 노숙인이 월 50만원 정도를 벌어 주거비와 생활비에 쓰도록 돕는 특별근로제도로, 복지시설에서 급식보조를 하거나 녹지, 공원 등을 청소하는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번 돈으로 방을 구하거나 복지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거리를 택하는 노숙인도 있다. 쪽방, 고시원, 시설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피해 드넓은 거리가 주는 자유를 즐기는 것이다. 특히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풀리면 많은 노숙인들이 시설이나 쪽방을 마다하고 거리를 찾는다. 서울역 외곽에서 아웃리치를 함께한 배상열 상담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노숙인도 자유를 원한다고 했다.

  “시설에 들어가면 마음대로 먹고 마실 수 없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생활해야 하잖아요. 술은 단번에 끊기 힘드니까 노숙인에게 시설에서 살아간다는 건 현실적이지 못하죠.” 

  하지만 모든 노숙인에게 거리가 자유의 공간인 것은 아니다. 특히 장애를 가진 노숙인이 그렇다. 서울시 다시서기센터의 2015년도 통계에 따르면 거리노숙인의 약 12%는 장애를 겪고 있다. 이들 중 절반에 가까운 41%는 비등록장애인으로 장애인수급도 받지 못한다. 용산역 뒤편을 따라 길게 나 있는 통로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김한수 씨는 수급자이지만 작년 4월부터 1년 째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시력을 잃기 전에는 무료급식도 받고 시설도 이용하곤 했는데, 지금은 멀리 나갈 수가 없으니까 남들 받는 도움도 못 받아요.”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그는 용산역 대합실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파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선생님, 눈 꼭 감고 딱 5분만 걸어 봐요. 지금 일어나서 해 보세요 정말. 5분이면 시각장애인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장난 섞인 말을 던지고는 답답했던지 그는 박스가 겹겹이 깔려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한 창가에 멈춰서더니, 고개를 내밀어 보이지 않는 바깥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창가가 그의 자리에서 가까워 다행이었다.

 

지속적이고 섬세한 상담으로 해법 찾아야
  각각의 노숙인의 상황에 적합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상담을 나누며 많은 사례를 관리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또한 아웃리치 활동가는 상담하는 동안 작은 정보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노숙인의 상황과 욕구를 파악하도록 예리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용산역 내부에 들어서서 아웃리치 팀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역 중앙의 대합실에서 커피를 나눠주는 것이다. 쌀쌀한 봄 추위에 굳은 몸을 녹이기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커피 한 잔은 거리의 노숙인이 자신만의 사연을 풀어내는 시작이 된다. 강민수 상담사는 A(남·82) 씨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옆에 서서 조심스레 말은 건낸다. 

  “선생님, 아직 추운데 시설 같은 곳에 들어가 계시는 건 어떠세요?”

  A 씨는 고개를 젓는다. 가족과 자녀가 있으니 곧 집에 들어갈 거라고 한다. 집이 있다는 말에 안심하고 이동하려던 순간, 함께 온 상담사 강민수 씨가 다시 묻는다.

  “나온 지 얼마나 되셨는데요?”
  “3년 쯤 됐나...”

  그제서야 그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빚 문제로 시작된 가정불화가 커지자 A 씨는 집을 나왔다고 하자, 강 상담사는 파산절차와 법률상담 절차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2시간 이상을 걸어 다니며 매일 약 20명의 노숙인과 상담을 하는 작업은 쉽지만은 않다. 아웃리치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밤 10시, 용산역 뒤편 통로의 입구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한 노숙인은 작업 현장에서 당한 부상으로 척추가 손상된 상태였다. 월급으로 월세 내면서 고시원에서 살았는데, 일을 못하니 거리로 나왔다고 한다. 김진숙 상담사는 주거지원에 대해 설명하며 다시서기센터의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담당자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꼭 여기로 찾아갈게요.”

  오래 간의 만남과 기다림 끝에 노숙에서 벗어나는 이들을 보면 벅찬 감동이 밀려든다. 오늘도 아웃리치 상담사들의 발걸음은 계속된다.

 

이요세피나 기자  kur@kukey.com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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