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부터 가족까지
AIDS 환자 주변인들의 이야기
‘에이즈’ 단 3글자의 단어가 눈에 거슬리고 가슴에 꽂히는 사람들이 있다. 병실에 누워있는 당사자는 아니다. 장기간 병에 걸린 줄도 모른 채 살다가, 뒤늦게 에이즈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면역기능이 상실돼 몸을 가눌 수 없다. 그런 그들 옆을 묵묵히 지키는 사람들.
에이즈가 더 이상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돼버린 간병인과 가족들. 이들에게 에이즈는 흘려보내려 해도 귓가에 맴도는 단어다.
▲ 간병인 박 모(남·62) 씨가 석션 장치로 환자의 분비물을 제거하고 있다. 사진 | 조현제 기자 aleph@ |
4년째 간병인 생활 중인 박 모(남·62) 씨는 에이즈 환자를 보면서 자신을 본다. 그도 에이즈 환자이기 때문이다. “저는 2005년도에 감염 사실을 알았어요. 죽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몸에 불을 붙였죠. 그 일로 병원에 실려 갔고 약 7개월 정도 간병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 처지가 아니면 이해 못 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요.”
에이즈 환자의 간병인은 대부분 같은 에이즈 환자거나 HIV 감염인이다. 간병인 사업은 질병관리본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로, 환자가 간병지원을 신청하면 간병인을 파견하는 사업이다. 이는 동료 감염인들이 직업을 잃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시작된 사업이기도 하다. “환자 한 명에 2명의 간병인이 붙어 수족을 거들고 있죠. 총 13~15명 정도가 있는데, 올해 정부 측에서 간병인 사업에 투자한 지원액이 줄어 간병인을 늘릴 여력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최저 시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박 모 씨는 혼자 생활하는 데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다만 그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희망 없이 사는 환자를 보는 것이다. 이는 반에이즈 집단이 HIV 검사 자체를 터부시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HIV 검사를 희망하면 언제든지 검사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서울시의 경우 작년 3월부터 서울 시내 전 보건소에서 무료로 익명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이건 죽는 병이 아니니까 빨리 진료를 받고 치료하면 나을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하는데, 반에이즈 집단이 자꾸만 모욕적인 발언을 하니 환자 자체가 자포자기할 수 있어요. 정부와 매스컴은 물론 주변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주변인은 언제나 영향을 주고, 그만큼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가장 가까운 주변인, 가족들의 제2의 삶은 에이즈라는 질병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시작된다. 한순간에 ‘환자의 배우자’가 된 이 모(여·50) 씨는 7년 전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을 실감했다. 보호자들도 에이즈에 관한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이미 의식저하 상태였고, 선생님 입에선 ‘에이즈’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땐 그 단어만 알고 있었지 더 이상의 정보는 없었어요. 에이즈면 ‘옆에만 있어도 옮는 병’, ‘죽는 병’이란 생각에 식구들이 전부 걸린 게 아닌가···.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어요.” 그랬던 그였기에, 에이즈 환자를 피하는 의료진을 보면 서러우면서도 그들의 입장이 이해된다고 했다.
가계는 악화됐다. 남편의 수입은 없어졌는데 병원비는 만만찮았다. 머무는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 달에 들어가는 환자의 간병비는 150~180만 원이다. 올해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HIV/AIDS 감염인 장기요양지원비는 월 30만 원씩이었지만 1월 22일부턴 간병비 지원이 끊기기도 했다.
에이즈 감염인의 생활 및 지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HIV 감염인 중 38.3%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이 씨도 그들 중 한 명으로 현재 기초생활수급비 50여만 원을 지원받고 있지만, 병원비를 마련하기엔 충분치 않다. “부산에 애가 둘이 있어요. 제가 남편 간병만 하고 있으면 나머지 생활이 전혀 안 됩니다. 그렇다고 집에서 치료하기엔 어려움이 많죠. 위급상황이 생길 때마다 병원과 집을 오가야 하는데….”
그는 생활비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트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직업을 갖게 되면 소득이 잡혀 기초생활 수급비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편법을 쓰는 그를 우리는 질책할 수 있을까. 힘든 현실에 환자 곁을 떠난 가족을 나무랄 수 있을까. 그 책임을 주변인들에게 전가하기엔 현실은 아직 마땅치 않다.
김태언 기자 bigword@kuke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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