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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 재난심리지원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재난심리지원 체계의 실효성 있는 정비와 지속적인 트라우마 관리 대책은 부족한 상태다. 안산온마음센터장인 고영훈(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재난심리지원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적합한 시스템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며 “다시 재난이 일어난다면 이전과 비슷한 결과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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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고대신문 DB

 

현실적인 매뉴얼 만들어야
  세월호 사고 이후 재난심리관리 체계 등을 재정비하고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현재도 컨트롤타워가 명확하지 않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정신보건사회복지학회가 국내 재난심리지원체계의 한계와 개선방안을 다룬 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당시에도 이미 법적으로 재난심리지원체계와 심리지원 매뉴얼이 구축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보건복지부나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 등 몇 개의 행정 부처가 스스로 의사결정과 통솔의 최고 주체가 되려 하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각 부처 간에 집행체계를 지원하는 방식과 지원의 우선순위도 달랐다. 권정혜(문과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재난심리지원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컨트롤타워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여러 부처가 사건 현장에 모여들어도 대처 방법에 대한 일관된 체계가 없어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난 현장에서 심리 전문가들이 재량권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은지 단원고 마음건강센터장은 “심리지원을 하는 과정에서도 상급자의 결재가 필요하다”며 “무리하게 재량권을 발휘해 어떤 결정을 했을 때도, 공을 치하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통해 평가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심리지원자들은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조치를 곧바로 취할 수 없고,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권정혜 교수는 “우리나라는 응급상황에서 유연하게 재량권을 행사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이같이 경직된 행정적 절차가 재난심리지원의 취약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난 발생 시 사용되는 통합적인 심리지원 매뉴얼의 재정비, 그리고 그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영훈 교수는 “심리지원을 위해 파견할 인력은 부족하지 않지만 막상 사고가 발생하면 적합한 인력을 공급하는 것이 어렵다”며 “역할 분담을 위한 매뉴얼의 재정비와 매뉴얼에 대한 실질적인 훈련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 관리 계획 없어
  재난 발생 이후의 트라우마에 대한 장기적인 관리 계획도 없는 상태다. 세월호 사건 이후 피해자들의 심리지원을 위해 설치된 안산온마음센터는 2020년 3월까지 운영된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 치료 및 연구 등의 목적을 수행할 국립트라우마센터의 건립은 아직 소식이 없다. 최남희 서울내러티브연구소장은 “평소에 체계적으로 재난에 대비해야 하지만, 재난이 일어나지 않으면 지원을 안 해주고 단순히 몇 명이 우울하냐를 따져 예산을 분배하니 지역사회에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은지 센터장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후 몇 개월 뒤에 일어날 수 있고, 회복 과정도 오래 걸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며 “국가적으로 행정절차를 마련해 피해자들이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심리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PTSD와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9년 국립 PTSD를 설립했고, 군 복무 시 모든 정신 의학적 정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이들을 추적·관찰하고 있다. 또 2001년 9·11테러 이후 부상자와 희생자 가족, 정신적 외상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코호트 연구를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도 1995년 고베지진 이후 재난스트레스 연구, 훈련과 협진 등 재난 및 범죄분야 지원을 위해 고베시 효고현에 재난트라우마 센터를 설립해 지속적 교육과 훈련, 재활을 제공하고 있다. 김지훈(양산부산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정신건강클리닉) 교수는 “세월호 사건 후 조금씩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보다 전문성을 가져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행정적인 편의를 넘어 전문가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치료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전문가들은 심리상담이나 정신치료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비롯해 심리상담이나 정신치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신보건 서비스 이용률은 15.3%로 39.2%인 미국보다 훨씬 낮다. 치료받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결함이 있다고 보일 수 있어 치료를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고영훈 교수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것이 개인이 심리적으로 나약하고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은지 센터장도 “우리나라는 정신과 치료 자체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존재한다”며 “심리적 외상을 의지나 개인의 성격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주변의 몰이해는 트라우마 경험자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트라우마 경험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사람마다 겪는 사건이 모두 다르며, 같은 사건이라도 개인의 감수성이나 자라온 환경, 체질적 부분에 따라 심리적 반응이 달라진다. 게다가 트라우마는 단순히 심경적 변화만이 아니라 뇌의 생리적 변화도 유발시키기에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김지훈 교수는 “트라우마 회복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라는 말”이라며 “트라우마를 단순히 본인의 의지로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 기자  june@kukey.com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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