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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들, 근거없이 입원 거부
정부는 간병 지원까지 중단
"공공요양병원 설립돼야"

  

“빨리 짐 빼셔야 해요.” 그녀는 “알겠다”고 말했다. 의료진이 나가자, 이제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한숨을 쉰다. 장기간 입원할 수 있는 요양병원은 받아주질 않지, 다른 병원에는 오래 머무를 수 없지…. 집으로 가서 간병을 하자니 의료 시설이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오늘도 그녀는 병원 눈치를 보며, 하루만 더 버티자고 다짐한다.

  보건의료법 제10조엔 모든 국민은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한 권리가 침해받아선 안 된다고 명시돼있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의료진의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환자임에도 머무를 수 있는 병동이 없다. 이 순간에도 그들은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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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즈 환자를 거부하는 요양병원에 대한 HIV/AIDS 단체의 저항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진제공 |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의료난민, 에이즈 환자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따르면 국내 HIV/AIDS 환자 수는 9615명이며, 그중 요양병원 입원이 필요한 중증환자는 150~200명에 이른다. 중증환자는 이미 면역력이 많이 낮아진 상태에서 확진을 받아 거동이 불가능해 와상인 경우가 많다. 응급 질병은 급성기 병원에서 빨리 수술을 마치면 되지만, 에이즈의 경우 이미 일어난 신체적 손상이 더 커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손장욱 안암병원 감염내과 의사는 “에이즈도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매일 약을 복용하는 등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며 “급성 합병증이 치유돼 적극적인 수술 및 치료가 불필요한 환자는 급성기 병원보단 요양병원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에이즈 단체들이 파악한 150~200명의 HIV/AIDS 중증환자 중 현재 병원에 머무는 환자는 68명이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병원을 찾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방황 중이다. 이런 상황은 2013년 12월, 질병관리본부가 본래 입원해있던 수동연세요양병원과 계약을 해지하면서 시작됐다. 다른 민간요양병원들은 에이즈 환자를 쉽게 수용하지 않았고,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국립의료원과 국립경찰병원 등으로 환자를 이송했다. 그 외 장기요양환자들은 서울의료원, 샘물호스피스병원 등 지정되지 않은 병원에 머물거나 가택에서 개인적인 치료를 하고 있다. 현재 머물고 있는 위 병원들 또한 장기입원이 불가능한 급성기병원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여전히 병동을 옮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1월, 질병관리본부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환자들은 간병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중증환자의 가족은 “다른 대체병상을 마련하지도 않고 계약해지를 해버린 상태에다 요양병원은 받아주질 않고, 정부에서도 더는 손쓰지 않고 있어 오갈 곳이 없다”며 “그런데 지원도 불안정해 큰돈을 마련하느라 버거웠다”고 말했다.

  편견에 기인한 거절
  요양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를 거부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이다. 격리병실이 없으며, 병실에는 면역력 낮은 노인들이 많고, 거부할 수 있는 법이 있다는 것이다.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측은 “에이즈 요양환자는 전염병인 결핵 등 합병증을 갖고 있어 면역력이 약한 노인환자들이 감염될 우려가 있다”며 “일반 요양환자들의 건강과 정신적 안정도 중요한데, 에이즈, 동성애 단체들의 악성 민원 시, 병원 운영과 요양환자들을 불안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대희 인천성모병원 응급전문의는 “결핵, 폐렴이 있는 환자의 경우엔 급성기 병원에서 회복된 후에 요양병원으로 이송될뿐더러, 아직 발생한 적 없는 악성 민원은 미래에 대한 걱정일 뿐”이라며 “에이즈에 대한 왜곡된 시각 때문에 지레 격리하는 것보단 차별을 막도록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양병원 측에서 내세우는 다른 이유인 ‘거부할 법’은 ‘전염성질환자는 요양병원 입원대상이 아니다’는 의료법 시행규칙을 말한다. 그러나 이 시행규칙은 2011년 복지부가 “HIV/AIDS는 일상생활, 공동생활을 통해 감염되지 않기 때문에 요양병원 입원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시작으로 2015년 12월에 전면 개정됐다. 권미란 에이즈환자대책위 활동가는 “법을 개정하고 진료수가를 인상하는 등 제도적인 보완은 됐지만, 현실은 여전히 문턱이 높다”며 “의료법시행규칙을 원상태로 돌리자는 TFT도 만들어지는 등 요양병원 측은 물론 사회적으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민영화된 의료계 속 수익성 없는 환자
  법적인 구성이 완비됐음에도 국가는 에이즈 환자를 수용하지 않는 요양병원을 강제하지 못한다. 한국의 의료계는 민간 중심으로 운영되며, 요양병원은 민간위탁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372개의 전체 요양병원 중 5.6%인 78개소만이 공공소유의 요양병원이다. 그러나 78개 중 3~5개를 제외한 나머지도 공공‘소유’일 뿐, 독립채산제로 인해 요양병원의 운영권이 모두 민간에 있다.

  민간요양병원이 에이즈 환자를 거부하는 이면엔 ‘에이즈 환자를 수용하면, 병원에 다른 환자들이 올 수 없다’는 이유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요양병원의 관계자는 “아직 환자들 내에서도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있어 병원 측에서 에이즈 환자를 받아버리면 다른 환자들이 입원을 꺼리게 된다”며 “수익을 따질 수밖에 없는 병원으로서 이런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플러스 손문수 대표는 “국가 차원에선 민간요양병원에 ‘전염성 질환에 에이즈는 포함되지 않으니 수용하라’는 권고 공문을 보낸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현실은 아직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며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국가와 병원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핑퐁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요양병원에 대해선 환자가 직접 고소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넣는 2가지 방법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2014년 7월 여러 에이즈 단체들이 요양병원의 입원거부에 관해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지만, 결과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대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한 행위는 의료법에 따라 형사고발, 민사상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이제까지 적극적인 법적 대응 사례는 별로 없었다”며 “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입원을 거부하는 경우에 위법한 것으로 평가될 여지는 있으나 승소할 가능성은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국립공공요양병원 마련이 시급해
  에이즈 단체들은 국가 직영의 국립공공요양병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요양병원이란 큰 틀 아래 에이즈 환자를 수용해주는 대체 가능한 선택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요양병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이즈건강권대책위 측은 “에이즈 전문 병원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에이즈 환자를 포함한 홈리스나 치매 환자 등 요양병원에서 배제되고 있는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요양병원이 설립돼야 할 것”이라며 “정부 정책이 의료민영화로 방향 설정돼있어 어렵겠지만, 모델이 될 만한 병원이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양병원 내 의료와 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많은 병원이 에이즈 환자 진료경험이 부족하며, 약물치료 및 환자의 인권보호에 관한 교육이 없다. 실제로 작년 10월, 수동연세병원의 대체병상으로 경기도 양주에 있는 신안요양병원이 발탁됐지만, 의료 환경이 적합하지 않아 취소됐다. 병원은 진료 장비 부족과 더불어 8인실 1실에 간병인이 1명밖에 배치되지 않는 등 요양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권미란 에이즈환자대책위 활동가는 “이런 상황을 보면 모든 요양병원 측이 흑심을 품고 우리를 받아주지 않는 것을 아닐 터”라며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이 없는 것은 에이즈 환자들이 차별받는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므로 더더욱 국가의 감시와 책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igword@kukey.com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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