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아시안게임이 올림픽 예선의 역할을 한다면...
―‘군면제’ 말고는 혜택 없는 AG 축구, 뭐하러 이렇게까지 열광하나
성남이 저번 주 토요일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이란 챔피언 좁아한을 꺾고 아시아의 챔피언으로 우뚝 섰다. 아시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 획득과 함께 성남은 수십억에 달하는 상금과 더불어 12월에 있을 FIFA 클럽월드컵에 나서며 세계무대에 ‘아시아의 깡패’ K리그, 나아가 ‘아시아의 맹주’ 한국축구 자체의 역량을 과시할 기세다. 성남이 클럽월드컵 준결승에서 유럽 트레블의 주인공 ‘국제적인’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붙을 것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나는 샤다라빠처럼 성남의 열혈팬도 아니고 사실 성남시에 가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다만 듀어든 씨와 김현회 씨를 제외한 우리나라 언론들은 모두 광저우로 떠나 있나보다. FIFA 홈페이지 메인에 성남이 떠 있는 마당에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아시안게임 야구와 축구가 메인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고 지금도 인터넷 축구 면은 ‘홍명보 호’가 위에 있고 ‘신태용 호’는 저 아래에 위치해 있다. 물론 국가대표라는 네 글자만 들어도 환장하는 이 세상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태극마크를 달아야 국가대표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김현회 씨의 말마따나 성남시는 “초호화 청사보다 성남일화가 가져다 준 홍보 효과가 훨씬 더 크고 대단하다.” 이들이 성남의 대표이고 곧 한국축구의 이름으로 챔피언이 되었다. G20으로 세계가 우리나라를 주목했을지는 모르지만 성남으로 확실히 세계가 한국축구를 주목하고 있다.
'아시아의 챔피언' 성남의 업적은 더욱 주목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 스포탈코리아
뻘소리가 길었다. 본론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의 아시안게임은, 특히 축구는 이렇게까지 우리가 폭주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올림픽 다음가는 아시아의 축제라고 하지만 축구만 놓고 보자면 어떤 메리트도 없는 대회다. 아시안컵보다 과연 이 대회가 중요할까. 이를 알기 때문에 중동의 강호로 손꼽히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애초에 이 대회에 출전하지도 않잖은가. 물론 선수들 입장에서는 군면제라는 당근이 당근 중요하다. 그 때문에 박주영도 모나코가 강등권에 허덕이고 있음에도 광저우로 온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만 유독 아시안게임과 축구 금메달에 목숨을 거는 느낌이다.
물론 24년 만에 아시아 챔피언 자리를 되찾는 일은 중요하다. 한국축구의 자존심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는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강의 이미지를 굳건히 다지고 있고 AFC 챔피언스리그도 K리그가 최다 우승을 차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클럽의 우승횟수와 일본 클럽의 우승 횟수를 합치면 K리그의 우승 횟수가 나온다. 참 쉽죠?) 아시안컵만 우승해서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괜찮은 성적을 낸다면 그 위치는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다만 아시안게임 축구는 어떤가? 도하 아시안게임 때 개최국 카타르가 금메달을 땄지만 이를 두고 카타르가 아시아의 강자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시안게임 자체의 인지도도 없다. 박주영이 아시안게임을 뛰어야겠다고 할 때 기 라콩브 모나코 감독이 뭐라고 말했던가? “아시안게임? 그게 뭐야?” 아니었던가. 사실 이는 우리나라가 영연방 국가들이 하는 커먼웰스 대회에 관심이 없는 것과 똑같다. 인지도를 가질 필요가 없는 대회니까 말이다.
이렇다보니 군면제 정도밖에 득이 없는 아시안게임 축구경기에 굳이 우리나라 23세 이하 대표팀이 뛰어야 하는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한국축구로서 가장 중요한 K리그 챔피언십을 뒤로 하면서까지 말이다. 실제로 경남과 제주 성남 등 20대 초반 어린 선수들이 주축인 클럽들은 당장 다음 플레이오프 경기를 어떻게 치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암만 대표팀이 중요하다지만 이건 아니다. 금메달 하나를 따는 것 자체가 소중한 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종합대회에서 축구 금메달 하나 따는 것은 유도 70kg 이하 체급에서 선수 한 명이 금메달을 따는 것과 똑같다. 아마추어 개인 종목을 폄하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대회에서 축구를 우승해 금메달을 따는 일이 그만큼 아시안게임 전체를 놓고 보면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말이다.
이 어린 선수들은 군면제보다 많은 것을 얻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성장한다. 물론 나도 군면제 받고 싶다. ⓒ 뉴시스
이왕 아시안게임에 축구가 계속 정규시즌 중 진행이 될 것이라면 아시안게임 축구 종목 자체에 별도의 메리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예를 들면 대회 자체를 21세 이하 선수들만 뛰는 대회로 하고 이 대회를 2년 뒤 열릴 올림픽을 위한 예선전으로 하는 것이다. 지금 아시아 정도만 올림픽 예선전을 프리시즌과 시즌 초에 따로 운영하고 있다. 유럽은 2년마다 U-21 챔피언십을 열고 있다. 특히 올림픽 2년 전에 열릴 때는 챔피언십을 올림픽 예선과 겸해 치른다. 즉 이 때 U-21 챔피언십에서 좋은 성적을 차지하면 별도의 예선전 없이 올림픽에 나서는 것이다. 지금 아시아에서 프로리그까지 날리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예선을 동시에 치르는 일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클럽과 선수 모두에게 좋을 수 없다. 때문에 청소년 월드컵 전에 아시아 청소년 챔피언십을 치르듯 아시안게임도 그렇게 한다면 아시안게임 축구대회가 그나마 있어야 할 이유를 찾으리라 여겨진다.
물론 지금 잘나가는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금메달을 목에 건다면 그것만큼 축구팬들에게 기억에 남는 마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냥 넘어가기는 아까운 메달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정말 한국축구를 상징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태극마크를 달았다고 무조건 신성시하고 애국심에 불타 광적으로 타오를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잘못으로 받는 피해는 결국 나라를 대표한다는 짐을 가득 지고 뛰는 선수들의 몫이다. 응원도 생각을 하며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미 세 번의 월드컵 거리응원으로 응원에는 도가 튼 사람들 아니던가. 국격은 다른 데서 오지 않는다. 아무튼, 대표팀이 오늘 16강에서 홈팀 중국을 상대한다. 이왕 광저우까지 갔는데 좋은 경기 펼치길 바란다.
p.s. 참고 칼럼 :
'아시아의 깡패', 이게 성남이고 이게 K-리그다 (김현회) http://news.nate.com/view/20101114n01226
AG 때문에 왜 K리그가 피해를 입어야 하나 (존 듀어든) http://news.nate.com/view/20101109n15360?mid=s1001&isq=3129